목요일 추석 마지막 연휴날. 우리 가족들이 모였다. 두 누나들 가족이 모이면. 이제 나름 꽤 대가족이 된다. 애들만 총 셋이니..시끌벅적하다. 이날은 오랬만에 고모와 고모아들이 참석해 푸짐한 점심 만찬을 즐겼다. 이날의 몇몇 단상들이 아직도 떠오르는데. 기억은 이제 글로써 놓아달라고 요구한다. 

 놀랬던것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조카 지윤이의 학습지를 보고 정신이 움찔했었다. 1학년의 학습수준이 꽤 높아서 였는데, 한창 놀아야 할 애들이..뭐 이런걸 풀고 있나 라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어른이 봐도 분명 머리를 써야 하는 문제들이었다. 국어와 수학 문제집을 보았다. 수능때, 국어는 그나마 나름 자신있었던 종목이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문제지의 띄어쓰기에 관한 문제에서..나도 횃갈렸다. 초딩 조카 앞에서 삼촌이 참 위신없게..이건가 저건가..하며..뭐 문제가 이러냐며..투덜거렸다. 수학은 또 어떤가.. 정말 산수 수준이 아니라..수학을 하더라..오매 골치아퍼..한창 뛰어놀 시절에..이렇게 머리(정신)을 혹사시키면..나중에 정작 공부할때..기력이 소진되지 않을까.. 

 또 내가 느낀건 학습지의 편집 수준이 참 안 좋았다. 집중도에 문제가 있을 만큼.. 좀 난잡한 편집 이었는데.. 거대한 학습지 출판 시장의..전형적인..속전속결 팔아먹기 느낌이 다분했다. 

 보통의 부모. (우리 누나들을 포함해서.) 에서의 보통의? 아이들. 은 그렇게 공부.뇌의 노동을 소비하며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사실.. 조카 지윤이는 내 조카 라는 주관을 버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아도..보통의 아이들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적 감수성과, 자기에의 뛰어난 성취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경쟁 능력이나 의식이 아닌, 자기 목표에의 도전과 성취의 쾌감을 이미 알며..두려움을 넘어서 도전하려는 정신이 탁월하다. 그동안 집앞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지윤이와 달리기 시함을 하고..놀이기구와 술래잡기 등을 하며 깨우친 바이다. 목적와 동기의식만 심어주면..자기가 알아서 성취하려는 노력과 집중도가 지윤이의 큰 덕목이다. 그러나 경쟁에만 내몰리는 보통의 부모와 아이들의 현실에서..어떻게 본연의 덕목을 지켜낼지 내심. 걱정된다.

 또 집안을 시끌벅적 산만하게 만드는, 하지만. 가정의 축복인. 네살 짜리 아들놈 조카 둘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말로..지들끼리..웃기는 대화를 한다. 거의 몸으로 뛰어다니는 동질의 교류인데. 간혹..~~그랬니?. 그랬구나.~ 라는 말을 쓸땐..참 보석과도 같다..말의 순수함은..네살짜리 어린애 에게서 나온다. 그 말들은..보석을 쏟아내는 것과도 같다. 
 우당탕탕 집안의 계단을 뛰어다니는 고것들이.. 조용해서..3층의 베란다를 내다 보았더니..그 두 놈이 나란히 서서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화분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하얀 속살과..조그맣고 뽀얀 고추가. 맑은 햇빛에..그 순간 내 눈에서 그 장면은 정지 되었다. 사진적 시간이었다. 좋은 기억. 삶의 아름다움을 놓쳤다. 사진은 이런 휘발되는 기억. 장면을 붙잡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요즘 난 사진을 잘 안 찍는다.. 조카들한테 미안하다..내가 해줄수 있는 선물을 방기하고 있다.

 윤정미 작가가 작업한 사진. 핑크와 블루..어린이들의 색갈에 대한 취향..을 구성한 작업.은 내 조카들에게도 여실히 적용된다. 신기하게도..여아들은 핑크색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남아들은 블루 에 집착을 보인다. 블루에 집착을 안 보여도..남아들은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아마 나도 그랬을듯 싶다. 지금의 나는 모든 색상을 좋아하지만..구지 꼽으라면..녹색과..갈색을 좋아한다..내가 핑크색을 좋아할리는 평생에 없으나. 채도가 빠진 살색에 가까운 핑크는 좋아한다. 색의 표현은 자신의 표현이고 내면의 모습이다. 한때 보라색에 유달리 집착이 강했던 분을 좋아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보라색의 광기에 내가 빠져들지 않았나 싶다. 어쩃든 난 연한 핑크색의 입술이 좋다..

 고모의 아들과는 어릴때부터..나이 차가 별로 없는 또래 여서..친근하게 놀았었다. 2명의 아들이 있는데. 나보다. 2살 4살 어린 동생이다. 우리가 어릴떄. 고모는 이혼을 해서. 광명시 철산동의 주공아파트에 두아들과 살아왔는데. 어릴때 엄마는..누나와 나를 데리고. 예전엔 118번 버스를 타고. 자주 철산동에 가서..놀았다.
 네살 어린 동생만이 우리집에 왔는데, 현재는 중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중국 유학중에 만난. 태국 여자와 사귀고 있는데. 아마도 결혼할 듯 싶다. 우리 아버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여자.(조선족을 의미)와..흑인..전라노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ㅋㅋ

 아버지 형제 중(9남매) 에 아들로썬 우리 아버지. 딸로썬..그 고모가 인물이 가장 좋은데.. 예전에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에서 고모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보게 되었다. 흑백의 참 잘 찍은 인물사진들 이었다. 지금의 디지털 칼라 사진 졸업 앨범 사진에 비해서.. 증명 사진의 깊은 맛이 있었다. 나는. 고모의 미모에 많이 감탄했다. 원래 미인이라고 생각했지만..그 졸업 앨범속 사진은.. 영화배우 탤런트 같았고. 그들보다 더 뛰어난 아우라가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황신혜의 졸업 앨범 사진을 보고..참..아름답다고 느꼇던 기분 이상의 미모였다. 미인은 팔자가 세다더니..두아들을 낳고. 고모부 였던 사람은 바람이 나서..결국 이혼했다. 여자 혼자. 두아들을 키우며 사는 삶은 세월이 무상하게 고모를 늙게 만들었지만.. 그 깊은 미모를 여전히 간직하고 계신다. 고모의 아가씨와도 같지만. 주름진 얼굴을 보면..졸업 앨범속..그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그 생소한 이름과 함께..

 고모에 대한 일화중에 또 하나는. 어릴쩍. 우리 동네 작은 사진관의 쇼윈도에 전시되 있던. 고모의 흑백 증명사진 이었다. 내가 태어나기전..고모가 결혼하기전..우리집에서 살았던 모양인데.. 그 때 근처 사진관에서 찍었던 모양이다. 내가 태어나고..한 참이 지나 기억할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인데도..그 사진은 여전히 그렇게 쇼윈도에 남아 있었던 것이고. 어린 내가 봐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 앞을 지나다..부모님은 " 이 사진 아직도 있네." 엄마 왈." 여기 사진사가 아가씨(고모)를 좋아했나 보다.." 라고 말했던게 기억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이었다. 그 영화를 처음 볼때도..이 기억이 떠올랐는데.. 다시 생각해도 한편의 영화가 유추된다.. 내막이야 모르지만.. 그 사진은..어느 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진사의 마음과. 청초한 젊은 여인의 풋풋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아마도 삶은 그렇게 엇갈리는 것일지도..사랑을 쟁취하기 보단 영원한 기억을 담아 간직하겠다는 심정으로 사진사는 그 사진을 찍었던듯 싶다. 그 기억이 내게 푼크툼이 되어..아름다운 여인을 욕망한다..그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추억이 아닌. 생생한 삶을 원한다.

 고모의 삶이 퍽퍽했을지 몰라도..사랑을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의 아름다움은 가리지 못한다. 나는 진심으로 누굴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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