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는 마음이고 성격이다. 기분이 울적할 땐 기타도 울적하고 기쁠 땐 기타도 노래를 한다. 자기의 마음 기분을 잘 반영할 줄 아는 연주인이 결국은 끝까지 남는 법이다." _ 로이 부캐넌


 내가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언가 가슴을 후벼파는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그 무언가의 공허한 가시같은 찔림. 뭐, 한의 정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삶의 고달픔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찬가라고 할까. 


 이 사람. 로이 부캐넌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비운의 천재의 전형이다. 비참하게 죽어서야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되는, 생전에 화려한 성공을 이뤘다면, 그러니까 삶이 넉넉했더라면, 이발사의 세컨드 잡 을 갖지도 않았을 거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 부인과 대판 싸우다 폭행도 안 했을 테고, 유치장에 갇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지 않았을 거란, 뻔한 추측. 마빈 게이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 보단 덜 하지만, 이 사람 참 안 됐다 싶다.. 그래서 이런 예술이 나오나 싶기도 하고,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마치 소설가로 치면,, 딱.. 레이먼드 카버가 생각난다. 현실의 퍽퍽한 삶에서 깃어올린. 예술.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과.. 로이 부캐넌의 기타 톤과 연주는 닮아있다. 짧고 간결하며 투박한 스타일. 그러나 비수와 같은 울림. 무뚝뚝한 채, 아무렇지 않은 채, 진실에 닿는 느낌..

 

  한번도 그래본적이 없지만. 로이 부캐넌의 음악을 들으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을 읽으면..어떨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삶의 비밀을 알아버려 모든게 시시해 질지도..



  







   요근래 걸출한 블루스 뮤지션에 푹 빠져 있다. 그 이름은 게리 클락 주니어. 느무느무 멋지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도 크다. 간간히 유투브에서 라이브를 감상하다가. 몇몇 풀 공연 영상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블루스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너무 잘한다. 잘생기고 스타일도 좋다. 그는 텍사스 오스틴 출신인데, 정말 오리지날 블루스의 메카에서 태어나 성장한 인물이다. 1984년 생이고, 2010년 에릭 클랩튼이 주관하는 크로스로드 기타페스티발에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현역 최고의 흑인 블루스 뮤지션 로버트 크레이의 명백을 잇는, 그런 기대를 충족한다. 


  백인 블루스 쪽에서는 77년생 존 메이어와. 동갑인 조 보나마사가 있지만, 그 둘은 분명 걸출한 실력을 겸비했지만 왠지 손이 안 간다. 특히 존 메이어는 그 인기와 유명세가 얼굴값의 거품(머리가 꽤 크다 함. 키가 커서 그나마 커버)도 껴 있고 캐나디언 부잣집 도련님의 블루스 워너비 카피 같아 보인다. 존 메이어의 음악은 생긴것 만큼 너무 느글느글 하다. 반면, 조 보나마사는 차가운 블루스 같이 느껴지는데, 테크닉이 너무 감성을 앞서가지 않았나 싶다. 그가 77년생 이라니 다들 깜짝 놀랐을 거다. 그 둘 보단. 좀 더 나이가 어린 데렉 트럭스 가 훌륭하다고 본다. 엄청 순하게 생겼고, 슬라이드 기타 연주는 그의 전매특허처럼 굳어져 갔다. 


존 메이어랑 키가 비슷함. 


  빨간색 에피폰 카지노 모델 기타를 제일 많이 쓰고, 80퍼센트 이상이 에피폰을 쓴다. 같은 컨셉의 깁슨 ES-330을 쓰는건 몇 번 못 봤다. 한국산 에피폰을 쓴다는 말이 있던데, 성공해서 부자가 됐는데도. 저렴한 에피폰을 쓴다는 건, 유독 한국산 카지노 모델이 좋다는 것일게다. 잠깐 검은색 에피폰 카지노를 소유했었는데, 가격이 무색하리만큼 소리 정말 좋았다. 풀 할로우 바디에 P90 픽업의 매력은 엄청나다. 거기에 펜더 앰프와 퍼즈 이펙터와의 조합.. 그리고 훌륭한 블루스 맨..


  






천재 잭 화이트. 그 옆 지미 페이지 옹.             게리 클락 주니어는 21세기 지미 헨드릭스가 될 것인가..


  미국은 유색 인종이 성공하면 백인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게 일반적인 상징인것 같다. 뉴욕의 성공한 인도남자들(아마도 IT쪽 인재?)을 봐도. 백인여자와 사귀더라. 난 요즘 취향이 바뀌어서 좀 까만게 좋던데...ㅎㅎ 



  http://www.youtube.com/watch?v=z5LzfWDqknw


 

 

  후지 록 페스티발 연주인데,, 52텔레캐스터로 정말 멋드러진 연주를 펼쳐 보인다.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Roy Buchanan 로이 부캐넌  (0) 2014.08.30
레드 제플린  (0) 2014.06.15
Nirvana _ In Utero (1993) <The 90's Howl No.6>  (0) 2014.05.04
커트 코베인 20주년  (0) 2014.04.07
R.E.M. _ Automatic for the people (1992) <The 90's Howl No.5>  (6) 2014.01.22


 몇년전부터 레드 제플린을 무척 열심히 듣고 있다. 예전엔,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의 쇳소리의 고음이 듣기에 거슬려 여러 차례 들었다가 내려 놓았다. 하드록 기타 리프의 완성이자 헤비메탈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연 지미 페이지의 기타와. 존 본햄의 파워풀한 드럼, 로버트 플랜트의 샤우팅 창법, 다재다능한 악기 연주의 존 폴 존스 이렇게 네 명의 슈퍼 세션 실력파 들이 지미 페이지의 감독하에 모여 십여년만 활동하고 드러머 존 본햄이 죽자 그대로 해체 했는데,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나이든 이들을 모셔다 놓고 케네디 센터에 모인 명사들 뿐 만 아니라 후배들이 공연하는 모습은 진짜 명예가 뭔지 보여준다. 이런 문화적 풍토. 세대간의 연결고리로서의 로큰롤. 그건 사회적 유산이다.  


  일요일에 레드 제플린을 들으면 나른한 시간들에 열정어린 에너지를 심어준다. 불끈거리게 하는 그루브의 기타 리프. 위 영상에서 레니 크레비츠가 부르는 ' 홀 로타 러브 ' 야 말로 단단한 심장을 깨부시는 것 같다. ' 천국으로 가는 계단 ' 은 심연속으로 전력 질주하는 후반부의 격정으로 미세 혈관을 요동치게 한다. 드러머는 존 본햄의 아들. 눈시울이 붉어지는 레드 제플린 멤버들.. 후렴구의 코러스를 넣는 합창, 소름 돋는다. 보면 알겠지만 레드 제플린은 진짜 위대한 록 밴드다. 


  



  요즘 커트 코베인 사후 20년이 된 해라 유투브에서 너바나의 공연을 틈틈히 감상하고 있었다. 유투브는 대단하다. 개인 소장의 비디오 테잎 영상이라도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역시 네버마인드 앨범이 뜨기 전과 바로 그 해 (1991)년 까지의 공연이 더 열정적이고 커트의 보컬 상태도 더 좋은 거 같다. 그 후로는 급격하게 마약으로 무너져 갔지만, 그래도 커트의 보컬은 경이롭다. 노래를 한다기 보다 온몸으로 절규한다가 맞다. 너바나의 곡을 카피하기는 쉽지만 절대 커트 코베인의 늬앙스를 흉내내기란 불가하다. 어찌 이렇게 순수하고 절박한 자의 영혼을 따라 할 수 있겠는가. 


 요즘 세월호 사건의 슬픔과 맞물려 너바나의 정규 3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인 유테로(자궁 속) 음반은 묘하게도 격정의 위로를 건넨다. 절규와 자조섞인 음률이 뒤섞인 이 앨범은 고등학생때 내내 꽉막힌 욕구의 분출구 였다. 커트의 처절한 외침은 대리 경험으로 기능했다. 불안한 자의 심리가 이 음반의 노래와 함께 상호 투영 되었다. 20년전. 이 음반이 나왔을때, 종로 3가의 YBM시사 영어사 지하층의 뮤직랜드란 대형 음반 가게에 너바나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던게 생각난다. 여전히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이 흘러 나왔지만, 내 마음은 송두리채 너바나의 모든 것에 쏠려 있었다.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너바나의 음악은 또다시 슬픔과 불안의 자조에 뒤섞여 내게 말을 건넨다. 노랫말은 의미심장하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역설이 분명한 그의 노랫말은 삶에 대한 푸념과 분노가 뜨겁게 타오른다. 첫 번째 곡인 serve the servants (하인을 섬겨라) 부터 예사롭지 않은 정서가 흐른다. 역시나 미묘한 멜로디 진행은 싱글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이 앨범의 첫 노래로 딱이다. 히트곡 '하트 모양인 상자' 와 '날 강간해.' '멍청한.' '페니로얄 티.' '모든 사과' 의 가사는 충격적으로 요절한 커트와 세월호의 참혹함에 맞물려 감동을 자아냈다. 


 좌절감 속의 한낱의 위로로 슬픔을 집어 삼킨다. 볼륨을 높여 자궁속으로..


 


 93년 어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rape me (날 강간해)를 연주하려다 주최측의 반대로 처음 기타 부분만 연주하다가 리튬을 연주했던. 

 그러고 보니, 올해가 커트 코베인 사망 20주기이고, 4월 5일이 기일이었다. 1994년 4월 8일날 시신이 발견되었고, 사망 추정일이 3일전 이었다. 20년 이라니,, 커트가 죽었을 때, 중앙일보 사회 문화란,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며 안타까워 했던 개기름 번질번질 고등학생인 나. 20년은 정말 세월이란 걸 실감케 한다. 가지고 있는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씨디도 20년을 훌쩍 넘은 물건이 됐네. 유투브에서 너바나나 커트 코베인 이름만 치면, 언제든 멋지고 잘생긴, 묘한 울림을 주는 스물 몇살의 커트를 만날 수 있다. 퍼블리싱 되지 않았던, 미공개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미디어 세계에서 영원히 봉인된 젊은 커트는 영생하고 있는 듯 하다. 


 파라마운트 극장 공연이 디비디로 발매된걸 보았다. 여러대의 16미리 필름으로 촬영되었고, 사운드 녹음이 훌륭했다. 요즘에는 유투브에 풀 공연 영상이 통째로 다 올라와 있어, 그냥 이름만 치고 누르면 귀한 공연 영상들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크림 또는 블라인드 페이스나 롤링 스톤스의 60년대 후반 하이드 파크 공연 같은건 너무나 설레였다. 젊디 젊은 에릭 클랩튼, 믹 재거, 키스 리차드를 보는 즐거움. 지금의 할아버지와 왕년의 청년의 모습 그 사이를 빼곡히 채운 삶의 드라마와 음악, 지미 헨드릭스와 커트 코베인에게선 보질 못하는 살아있는 자의 향연 이었다. 


 폴 매카트니 경이 한국 공연을 한다던데, 그런 의미에서 반세기 대중 음악의 역사를 일구었던 마지막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다시는 못 볼 공연이지만, 비틀즈 해산 이후 폴의 솔로 앨범, 노래를 거의 모르는 나로써는 그다지 갈 마음이 안 생긴다. 비틀즈 팬 이지만,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을 폴 보다는 더욱 좋아했다. 수려한 멜로디 이상의 어떤 아픔 같은 것들이 그들에게서 느끼는 감동 이었다. 

 폴 매카트니가 온다면, U2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티켓 가격이 어마어마 하겠지..아마도 그들의 개런티가 엄청나서 불러올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폴의 공연 성과가 어떠한지에 따라 가늠이 될 것이다. 라디오헤드와 블러가 왔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밴드야 많지만, 그래도 한번 다녀갔던 밴드니까, 현실적으로 더 가능하지 않을까. 







 알이엠의 음반은 90년대의 수많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의 명반에 밀려 자주 듣지 못했다. 명반은 그 예술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 법인데, 미세 먼지가 휩쓴 어느 겨울날 주말, 무심코 먼지 털어 들어본 이 앨범은 감동이었다.  

 알이엠은 80년대 초부터 활동해온 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겐 대 선배 같은 존재다. 

 70년대 후반의 디스코 열풍과 MTV의 시작으로 대형 팝스타의 등장. 헤비메탈 밴드들의 득세 등, 80년대의 음악씬은 정치의 우익 보수화에 맞물려 뮤지션들도 재벌이상의 돈과 지위를 가졌다. 대형 스타디움 공연과 초대형 리무진, 마약과 섹스는 그러한 천한 자본주의의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런 화려한 뮤직 비즈니스 세계의 이면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수많은 지방 대학 축제며 동네 파티며,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소박하게 포크,컨트리,록 풍의 음악을 연주한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이 R.E.M. 이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자기들의 음악을 하는 그들에겐 오랜 무명 생활은 당연지사. 그당시 뜰려고 음악을 했다면 강력한 꽃단장 헤비메탈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가고  90년대 들어 일련의 신세대 음악군이 등장하면서, 알이엠은 새로운 음악군의 선구자적인 존재가 되었다. 세상이 뭔가에 홀려 있어도 묵묵히 자기들만의 토양을 일군 탓이다. 



  R.E.M.이란 밴드명은 (래피드 아이 무브먼트)의 약자이다. 램 수면 상태(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얕은 수면 상태에서의 빠른 안구 운동)를 말한다. 수능 시험 볼 때, 영어과목 문항 중에 R.E.M.을 설명하는 지문이 나왔었다. 나는 이 밴드 때문에 그 뜻을 알고 있어서 지문을 독해하지도 않고 대번에 정답을 알 수 있었다. 매우 귀중한 시간 절약 이었다. 또 중학교 땐, 동네 조그만 음반 가게에서 알이엠 테잎 있냐니까 R.ef 테이프를 줬던 기억도 난다. 


 이 음반의 제목인 '오토매틱 포 더 피플'은 그들의 고향에 있는 한 레스토랑 주인장의 표어 였다고 한다. 누구나 무엇을 주문하던 '오토매틱'이라고 외쳤다는데, 뭔가 근면하고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 드러나는 삶의 해학이 엿보인다. 알이엠의 음악도 그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을 천명하는 것일 게다. 


 이 음반은 그들의 여덟번째 음반인데, 바로 전작 '아웃 오브 타임'을 통해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나 존재가 급부상했었다. '루징 마이 릴리전''샤이니 해피 피플'같은 히트곡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앨범이었는데, 그 후속작인 이 음반은 그런 성공의 축포를 터트리는 대신, 차분한 발라드의 성찰적인 분위기가 다분하다. 


 동시대 다른 밴드 들에 비해 그들은 꾸밈이 없다. 음악적으로나 외향적 스타일 면에서도 너무나 담담하고 소박하다. 너무 심심할 정도여서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해 세계 최고의 록밴드 위치에 오른 U2를 더 좋아했었다. 그들 다 헤비메탈시기에 모던록의 텃밭을 일군 얼터너티브의 선구자라고 말 할 수 있다. 


 알이엠의 음악을 종종 들어왔지만 유독 요즘에서야 또다른 발견을 한 기분이다. 특히 이 음반은 동양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폭의 여백미학이 일품인 동양화를 보는 듯한 감흥이다. 높은 성량과 화려한 기교가 없어서 더욱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U2 같이 화려한 색채의 마술을 부리듯한 소리와 보노의 드라마틱한 보컬은 즉각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알이엠의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은 모든 집착을 내려놓은 고승의 경지 인 것 같다. 비음섞인 음이탈스러운 보이스는 오히려 그만의 개성이다. 알이엠과 U2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재밌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한의 정서와 미국 시골의 소박한 감성들이 어떻게 소리의 스타일로 구현되는지..엿 볼 수 있다.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는 가장 아름다운 게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동성연애자들이 탐탁지 않지만 당시 보수적인 록 씬에서 그의 커밍 아웃은 참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왼쪽 - 마이클 스타이프 

 지금 R.E.M.은 해체한 상태다. 드러머가 중간에 탈퇴하고 오랬동안 삼인조로 활동했는데, 기어코 밴드는 와해되었다. u2가 태양이었다면 알이엠은 달같은 존재였는데, 그 은은한 달빛의 여운이 너무나 아쉽다. 생전 커트 코베인도 알이엠을 매우 좋아했고, 자살하기전까지 마이클 스타이프와 공동작업 말이 오가며 전화 통화도 오래 했다고 한다. 그가 자살한 화실 안의 CD 플레이어엔 이 '오토매틱 포 더 피플' 음반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들에서 위로를 느꼈을까. 많은 이들이 음반의 수록곡 '에브리바디 허츠'를 들으며 위안을 가졌을 것이다. 당시 음악성 있는 밴드들은 뮤직비디오도 예술이었다. 

유투브 everybody hurts 검색 제일 처음 공식 뮤직 비디오. 

http://www.youtube.com/watch?v=ijZRCIrTgQc

 희대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 에 대한 노래 '맨 오브 더 문'은 가장 좋아하는 알이엠 노래다. 짐 캐리 주연의 동명의 영화도 생각난다.


 겨울밤 차를 마시며 앉아 이 음반을 듣다보면 의식이 고양되는것 같다. 너는 나에게 차분한 떨림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아주 훌륭한 라이브 공연을 감상했다. 써드 스톤을 알게 된건 그들의 두번째 앨범(2009)을 통해서 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지미 헨드릭스나 스티비 레이 본, 존 프루시안테의 기타톤과 연주에 흠뻑 빠져있었다. 소문으로 국내에도 제대로 블루스 록을 하는 밴드가 있다고 들었다. 오리지날 62 스트라토캐스터와 빈티지 펜더 앰프 사진의 표지는 강한 직감이 왔다. 정통 블루스 록에서 한국말 가사가 나오는게 신기했다. 그래서 더욱 정감있게 공감됐다. 역시 빈티지 기타의 투명한 기타톤도 훌륭했다. 
 이번 공감 공연은 세번째 앨범 발표를 위한 것이고, 아마도 첫번째 방송 출연이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써드 스톤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역사적 무대가 되질 않을까 싶다. 


 이제 까지 국내에서 정통 블루스를 하는 음악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김목경, 로다운 30의 윤병주가 명맥을 이어왔다면, 요근래 들어서 은근히 블루스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 같다. 김대중 이란 걸출한 불루스 맨을 알게 되었고, 찰리 정의 기타 연주와 하현진의 델타 블루스도 인상 깊었다.이런 분위기에 내공이 탄탄한 써드 스톤이 그 흐름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 

 블루스, 블루스 록은 대중음악의 뿌리이지만 국내에서는 유독 인기가 없었다. 비틀즈 팬은 많아도 롤링 스톤스 팬은 그리 없다는 것도 이땅의 블루스 인지도가 얼마나 형편없다는 걸 말한다. 신중현씨가 지미 헨드릭스를 흠모하며 미8군 클럽에서 연주하며 가요계의 초석을 일구며, 블루스와 록 음악을 통해 삶의 회한과 자유 정신을 호소했다. 블루스-포크-록 으로 이어지며 자유와 낭만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는 곧,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나이트 클럽의 음지로 숨어들었다. 우리나라의 밴드 음악 문화는 유흥업소의 슬픈 딴따라로 치부되었고, 청소년기에 기타에 관심을 가졌다간 부모와 의절할 각오를 했어야 했다. 그래서 기타라는 악기는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것이자 미래의 폐인으로 가는 관문이란 인식이 기성세대에겐 다분했다. 따지고 보면 밴드 음악의 몰락은 군바리 독재하의 문화 말살 정책의 폐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지금도 언더그라운드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많은 기타 키드? 들을 응원한다. 

 써드 스톤의 기타겸 보컬 박상도씨의 외모는 고독한 블루스 맨의 영혼과 70년대 초 브리티쉬 록 기타리스트의 아우라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2집 활동하고 나서,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미국을 여행하며 느낀 것들을 3집에 담았다고 했다. 블루스의 본고장 미국에서 깨달은 바는 힘들게 일하는 한국인을 위해서가 아닌 미국인을 위한 블루스를 연주하는것에 의문과 회한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깨달음은 한국에 돌아와서의 활동에 자극제가 된 것 같다. 곡 중간에 담담한 짧은 멘트 속에는 블루스 맨의 삶의 고행이 느껴졌다. 뜨기 위해서가 아닌, 진정한 자기 음악을 하려는 진지함이 보기 좋았다. 이 공연을 위해서 얼마나 실력을 닦고 갈았을지. 초반부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번 앨범은 싸이키델릭 블루스 록이다. 포스트 록의 냄새도 나기도 한다. 전작에 비해 다소 어둡고 무거워졌다. 미국에서 느낀바가 그리 밝지만은 않았던 듯 하다. 노래는 더욱 원숙해져 있었다. 혼신을 다해 무아지경에 초대하는 그들의 노력에 열띤 박수를 보냈다. 아직은 대중들에게 생소한 밴드 이지만 그들은 게이트 플라워즈 정도의 인기와 평단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연에서 다만 아쉬었던 점은 퍼즈 먹인 기타톤에 딜레이나 리버브 등의 공간계 이펙트를 많이 먹여 부유하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내고 있는데, 어떤 부분은 기타 솔로가 훌륭한데도 명료하지 않게 들렸다. 보컬의 이펙트도 조금 많은것 같았다.요즘 밴드들의 라이브를 보면 전반적으로 기타의 음량이 적은듯한데, 써드 스톤도 좀 더 강렬하게 기타가 튀어나와도 좋을 것 같다. 앰프를 스테레오 효과로 사용해도 좋을 듯 하다. 하나는 다이렉트 톤 다른 하나는 공간계 이펙트 물린것을 무대 양쪽으로 벌려서. 스티비 레이 본 도 클린톤과 드라이브톤을 이렇게 각각의 앰프로 나눠 스테레오로 했다고 하던데.. 
 공연이 끝나고 바로 로비에서 음반 판매와 사인회를 가졌다. 우리 일행 셋이 가장 먼저 사인을 받았다. 좋은 공연을 보았고 답례와 응원을 보내며..  
 공연표를 양도해 주신 얼굴 모를 두 분에게도 매우 감사한다.


치킨 과 맥주를 마시며 공연의 감흥을 나눴다. 세속의 성공을 떠나서 자신의 길에 올인 하는 모습에, 우리는 진정 멋있는 자 라고 동의 했다. 내 인생을 걸 수 있는 것.. 과연 우리는 그것을 찾았을까. 찾고나 있을까.



사진 출처 : http://daru7893.blog.me/80201454237




  

 핑크 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은 영원한 고전이다. 1973년에 발표된 이후로 팝음악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빌보드 앨범 차트에 올랐었다고 한다.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의 범주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의 밴드다. 이젠 그런 장르 구분없이, 그냥 전설이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등등.. 영국의 찬란한 문화 유산이다. 

 처음 이 음반을 들었을 때도 충격이었고, 간간히 꺼내 들을때 마다 역시나 감탄하게 된다. 여전히 소름돋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음반을 들으며 인류의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진보의 힘을 느낀다. 

 단지, 멜로디와 리듬으로 마음을 사로잡는게 아니다. 소리의 구성으로 오묘한 세계를 탐험하는듯 빠져들게 만들고 묵직한 메시지들을 전달한다. 70년대 초 신디사이저, 스튜디오 레코딩 기술의 발전과 발 맞추어 지금 들어도 여전히 신선한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음반을 만들어 냈다. 천재 집단이 만들어 낸 최상의 결과물이다.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보컬겸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의 솔로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펜타토닉 스케일의 단순한 솔로 주법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다니.. 초창기 멤버인 시드 배럿이나. 길모어와 분리되어 핑크 플로이드의 또다른 축 로저 워터스에 대해선 잘 모르고, 핑크 플로이드의 다른 음반도 많이 들어보지 않았지만, 이 음반만은 특별하다. 


맨 오른쪽. 데이비드 길모어


 우선 앨범의 표지 자켓 이미지 부터가 남다르지 않나. 단순하면서도 오묘하고 심오한 표현. 디자인 그룹 힙그노시스의 작품이다. 언젠가 내집의 거실엔 저 작품이 걸려 있을 것이다. 고해상도로 프린트 하던지, 내가 모사 작품을 만들던지 해서.. 리히터의 촛불 그림과.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이우환의 작품도 모사 해서 걸어놔야 겠다. ㅋㅋ


 이 음반은 음악의 벡터를 넓힌 경이로운 작품이다. 일상의 소리가 음악의 질료가 되고 우주적 차원의 몽환적 신디사이저 소리부터, 일상의 소리 감각이 음악의 리듬에 녹아든다. 대표적으로 모니 의 금전출납기 소리의 리듬은 모든 소리가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를 깨닫게 한다. 샘플러 기기의 대표적 예시다. 

 단지 듣기 좋은 노래들의 나열이 아닌, 뭔가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달의 어두운 이면으로의 초대 같다. 고전은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한다란 말이 있는데, 딱 이 음반이 그렇다. 일상의 경계를 찔러 지루하고 무료한 삶에 표현하기 힘든 자극을 준다. 핑크 플로이드는 위대한 밴드이고 이 음반은 실로 경이롭다. 


멋진 패러디 작품.




 



저번주 토요일에, 롤링홀에서 게이트 플라워즈 라이브 공연을 처음 보았다. 단독 공연은 아니고 여러팀이 나오는 공연이었는데, 탑밴드 출신의 실력파 밴드 톡식,해리빅버튼,게이트 플라워즈가 순차적으로 나왔다. 사실상 게이트 플라워즈의 라이브를 보러 간 건데, 덤으로 다른 팀들도 보게 된 것이다.  

이 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본 세곡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처음부터 뻑갔고, 충격이었다. 진짜 로큰롤. 제대로된 록을 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기타리스트의 실력이 해외 어느 록 밴드에 견줘도 손색없었다. 그들의 실력과 방송에 힘입어 곧 게이트 플라워즈의 앨범이 나왔다. 바로 이 앨범.



단언하건데, 국내 대중음악사에 실로 역사적인 앨범이 될 것이다. 노래와 연주의 훌륭함은 물론이고, 녹음의 질과 전체적인 음반 제작의 결과가 너무 훌륭하다. 어차피 서양의 음악이 원조이고 나의 경우 무수히 많은 록 명반들을 들어봐와서 비교하자면, 게이트 플라워즈의 앨범은 명반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없다. 우리나라의 모던록 밴드의 시작인 델리 스파이스의 데뷔앨범 같은 경우, 기타 녹음의 질이 무척 조악했었던 느낌이라면, 이 앨범의 기타 연주와 녹음은 너무나 완벽하다. 

록의 전성기 였던 시대 70년대와 90년대의 장점만을 수혈해 게이트 플라워즈 만의 화학작용을 이룬다. 보컬의 박근홍씨는 처음 들었을땐. 펄잼의 에디 베더와 흡사한 창법이라고 느꼈으나, 자주 듣다보니 그건 박근홍만의 색깔이었다. 물론 90년대 얼터,그런지 록의 유산이 그에게 많이 깔려 있는듯 하다. 

특히 기타리스트 염승식군은 1기타의 4인조 밴드에서의 기타 플레이를 무척 맛깔나게 들려주고, 기타연주의 몽롱한듯 빈티지한 톤은 게이트 플라워즈 사운드의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짧게 맨 왼손잡이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연주하는 모습은 되게 새침하고 도도한 모습이다. 공연할때도 되게 시니컬해 보이던데 원래 스타일이 그런듯하다. 외모에서 풍기듯이 록 기타리스트지만 마초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선이 고운 여성적인 풍모가 눈에 띈다. 

라이브 공연의 실력은 앨범에서 듣던 그대로였다. 다만 롤링홀의 특성인지 베이스 출력이 너무 과도해 뭉개진다는 것만 빼곤, 앨범의 베이스 연주는 라인이 명확하다. 레드핫칠리페퍼스의 플리 스러운 독보적 베이스 라인을 가졌다. 

아무튼 뭐 하나 빠지는게 없다. 대부분 장점만이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을 이룬다. 지미 헨드릭스부터 화이트 스트라입스 까지의 찬란한 록의 유산의 핵심을 잘 계승했다. 그들이 세번째 앨범을 발표했을때, 한국을 대표하는 록밴드로써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으면 좋겠다. 연예가 아닌 음악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음반을 좀 더 낸다면.. 

이게 진짜 록이야..!!!




 메탈리카 란 현존의 전설적인 위대한 밴드는 내가 완전한 팬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헤비메탈, 정확히 말하면 트래쉬메탈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탈리카는 음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밴드이고 음악 역사에 아로새길 경력을 30년 넘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올해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행사에 초대된 메탈리카의 공연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주오는 기회도 아니고, 이제 그들도 나이가 들어 전성기때의 퍼포먼스를 더 이상 보기 어렵겠단 판단하에. 대중음악역사에 남을 그들의 라이브를 봤다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지나쳤고, 이 콘서트 영화 또한 거의 끝물에 남은 상영관을 찾아서 보고 왔다. 


 이수역에 위치한 아트나인이란 독립 상영관인데, CGV의 무비꼴라쥬처럼 메가박스의 예술관 같은 개념인데,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독립적인 극장이었다. 극장의 내외부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외부의 테라스 공간은 한 여름에 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영관 안도 작지만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3D 콘서트 영화인데, 화면이 작은편이라 쓰리디의 효과가 아이맥스처럼 크지 않다는 아쉬움과. 심야 시간이래서 그런지. 음량이 작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빠방한 기타 톤과 베이스 드럼의 댐핑을 기대했건만,, 예전에 용산 CGV에서 본 마틴스코시즈가 만든 롤링 스톤스 콘서트 영화 '샤인 어 라이트'와 아니 비교할 수 없었다. 그 때 세번이나 봤는데, 진짜 공연 보다 더 너무 활홀했었다. 여전히 섹시한 할배들에게 그렇게 감동을 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있어도 재밌는 관람이었다. 크로니클에 나왔던 배우 데인 드한 이란 얘가 나오고 딱히 주된 이야기는 없지만 몽롱하게 메탈리카 공연에 빠져들게 되있다. 공연의 무대 연출이 어마어마 했다. 정말 아이맥스 상영관이었다면. 정말 콘서트 현장에 와 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제임스 햇필드 가 눈 앞 무대위에서 다운 피킹을 빡시게 하는 장면등등, 기묘한 가상체험 이었다.. 워낙 유명한 그들의 노래 '마스터 오브 퍼펫''낫씽 엘스 매터''엔터 샌드맨' 을 연주할 때 압권이었다. 


 몇일전 종로 3가의 굴보쌈집을 갔다가, 종각으로 걸어가면서 YBM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추억에 잠겼다. 1991년 메탈리카 5집이 나왔고. 그 건물 지하의 대형 음반 매장서 끊임없이 울려퍼지던 '엔터 샌드맨' 이 생각났다. 내가 중1때 였던가. 무려 2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80년대의 밴드 스미스를 듣고 있지만 바로 전에 오랬만에 메탈리카의 단 한장 소장한 5집 앨범을 먼지털어 들어봤다. 역시 라이브가 더 좋다. 음반으로 듣기엔. 스미스의 음악 같이 모던록의 정형이 좋다. 그러고 보니 80년대의 록 음악의 극과 극이. 메탈리카와 스미스로 비교할 수 있겠다. 제임스 햇필드의 묵직한 다운 피킹과. 자니 마의 징글쟁글 피킹 아르페지오 톤. 무료한 일요일의 오후에 스미스의 음악은 묘한 기분을 불러온다. 모리세이의 낭랑한 목소리는 슬프면서 아름답다. 


 언젠가 소개받은 여성분중에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데프 레파드를 좋아한다고 했고, 메탈리카나 판테라 같은 쓰래쉬메탈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좀 색다르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음악취향을 숨기려고만 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도 했던것 같다. 헤비메탈이던 클래식이던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이 중요한거지. 생각해보니 스콜피언스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번다, 헤어지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음악 취향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취향은 다르고 삶의 지향점이 같은게 좋은 것 같다. 의외로 혼자 보러 온 여성들이 좀 있어서 든 추억이었다. 


 



 얼마전에 네이버 일면에서 루 리드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다. 다른 예술가들보다 뮤지션이 죽으면 가슴이 철렁내려앉고 스산해지는건 음악이 감성적으로 바로 와닿고 오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것이다. 


 오래된 CD플레이어가 고장나서, 음반을 못 듣고 있다가, 이제서야 고치고 루 리드의 노래들을 다시금 듣고 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의 존 레논이라 불러도 무방할, 뉴욕을 중심으로한 인디 음악의 거물이었다. 1967년 팝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음반이라는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스~~' 음반이 있었다면 같은 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은 오랫동안 비주류의 감성을 대변했고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서 루 리드를 중심으로 결성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그들의 데뷔 앨범은 표지 이미지 뿐만 아니라 전위적 음악으로도 명반의 대열에 끊임없이 화자된다. 60,70년대 미국 팝문화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우리에겐 영화 '접속'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앨범.


 

그들의 세번째 앨범인데, 영화속에서 이 앨범의 수록곡, '페일 블루 아이즈'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LP가 직접 나오기도 한다. 


 루 리드의 최고의 노래는 자신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퍼펙트 데이'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에 삽입되어 더욱 인기를 끌었던 노래인데, 내 인생. 최고의 노래 탑5안에 들만한 노래이다. 그 자조적인 우울감. 너무 기쁘거나 슬플때, 이 노래는 평정심을 찾게 만든다. 





 



아름다운 음악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영면하시길..



앞에 글에 이어서..


 바닥에 풀들이 깔려있지만, 배수가 원할하지 않아 진흙 뻘의 거대한 야외 클럽이 되어 있었다. 작년 펜타포트와 아니 비교할수 없었는데, 전반적인 환경은 펜타가 심플하고 깔끔했던거 같다. 무대가 더 크고 소리도 여기가 더 우렁차지만 왠지 공기가 탁하고 모기도 엄청 많았다. 그 많은 관중들 중에서 유독 나만 무는거 같은 억울한 기분. 경망스런 서양애들의 행동거지도 간혹 눈쌀이 가지만, 더욱 짜증나는건, 가끔 한국애들의 경망스런 영어 사용같은거, 뮤지션 빨리 등장하라고 "퍽킹 컴온"을 외친다거나..뭐 그러한 자잘한 것들. 힙합 좋아라 하는 한국 애들이 흑인인양 건들먹거리며 요 왔쓰업 맨..하는 꼴쌍사나운 장면과 별 다를게 없다. 여기에 온 서양인들은 아마도 80퍼센트 이상은 전국 초중고 학교의 원어민 교사이거나 학원 선생 일텐데, 취해서 노는 꼬락서니가 참 한심한 놈들을 보다보니 저런것들한테 울며겨자먹기로 영어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성조기를 망토 마냥 두루고 다니는 한국 여자애를 사진 찍었어야 하는데, 자전거 타고 오면서 얼굴에 바른 썬크림이 땀과 비에 씻겨 자꾸 눈으로 들어와서, 뭔가를 집중해서 보는거를 포기했다. 

 

 간혹 내가 이런식으로 생각을 피력하면, '보수적이시네요' 란 반응을 보이는데, 나는 정치적 의미의 보수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상식선.을 추구하는 보수는 당연히 지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상념하에 잔디 뻘을 거닐다. 옆 무대에서 자정 넘어 시작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공연을 기다렸다. 거의 맨 앞에서 셋팅 된 장비를 보아하니. 입이 떡 벌어졌다. 



 드럼 오른쪽으로 보이는 리더 케빈 쉴즈의 앰프 들의 종류와 가짓수가 기타 가게의 한쪽벽을 통째로 가져온듯 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이 좋아한다고 해서 찾아 듣게 된 밴드 인데, 91년작 러브리스 란 앨범과 바로 전 앨범으로 일약 슈게이징 장르의 거물이 되었다. 노이즈의 미학을 여실히 보여주는 음악인데, 무대위에서 고개숙여 신발만 응시하며 연주하는 스타일에서 비롯한 장르 이름에서 유추하다싶이 대중적이기 보단 노이즈의 아방가르드한 예술 실험 같은 음악이다. 자주 듣진 않지만 이 음반의 오묘한 매력을 동경하던 차에, 올초 내한공연에 가고 싶었으나 놓치고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던 것 이었다. 


 라이브 위주로 감상평을 쓰자면, 음반과는 달리, 훨씬 매니악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사전 경고로 음량이 무척이나 클 것이며, 청각이나 심장에 무리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올초 내한공연에선 사전에 귀마개를 나눠주었다고 하니, 얼마나 소리가 크길래란 의문의 와중에,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걱정할 정도로 크진 않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더 커진것 같다.  


 앞에 있어서 뒤 쪽 반응을 잘 몰랐는데 처음에 관중들이 많이 몰렸다가. 이들의 노이즈의 예술에 식겁하고? 절반 이상이 빠졌다고 한다. 물론 내가 피아를 싫어하는 것 보다 더 크게 실망하고 경악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노래를 한다기 보다, 소리로 추상 미술을 하는 듯, 마치 잭슨 폴록이나 마크 로스코, 드쿠닝의 추상 회화를 음악으로 구현하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심상이 든다. 그러니 보컬의 멜로디나 가사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음반에서 보다 보컬이 거대한 기타 사운드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살짝 그 늬앙스만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부유하는 악기가 되어 미세하리 만치 영향을 준 것이다. 


 대부분,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진짜..이게 뭥미?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소리의 예술 체험은 공연 중간에, 노이즈의 끝판왕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3~4분 이상,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계속 냈다. 거대한 우주선이 내는듯한 소리랄까. 일렉기타가 내는 노이즈의 진수성찬을 경험했다. 매번 곡이 끝날때마다 기타를 바꿨는데, 죄다. 펜더 재즈마스터나.재규어,간혹 머스탱. 아마도 곡마다, 변칙 튜닝이 많아서 그렇게 기타 쇼핑몰 진용을 보여준것 같다. 

 이들의 공연은 기타를 좋아하는 내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데, 음악을 더 큰 차원의 소리의 예술로 인식하게 되었다. 존 케이지의 혁신적 사고 방식도 떠올라 지고, 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그들의 무대는 결코 뻔하디 뻔한 심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다채로운 마음의 반향을 거대하고 부유하는듯 반복적인 노이즈를 통해 느끼게 했다. 



 그 후 세번째 크기의 무대에서 국내 밴드 로만티카 란 밴드의 공연을 보았다. 관객이 거의 없었지만, 연주는 열심이 했다. 대부분 모과이 같은 보컬이 없는 연주 음악이었는데, 자연스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경우와 비교가 됐다. 로만티카는 그들만의 색깔을 좀 더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음악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다시 두번째 무대에서 홀로그램 필름 이란 국내 밴드의 공연을 보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 관객이 정말 없었다. 난 멀찌감치 뒤에서 낚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 팀이 애처로워 보였다. 자기들한테는 이 무대에 선다는게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며 꽤나 상기돼있었는데, 비가 오는 와중에 관객은 처량할 정도로 없었고, 열심히는 했으나 뭐랄까. 실력 혹은 경험 부족이 드러나 보였다. 특히 보컬이 다듬어지지 않았다. 고음에서 저음으로 급격한 음정 변화때, 저음 소리가 발성이 안 되거나..하던데, 라이브 경험 부족 같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대학 동아리 밴드 같았다. 


 새벽이고 비도 부슬부슬 오는 와중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철 첫 차를 타기 위해 3시 반에 자전에 올랐다. 자전거 타고 올 때를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졸음 때문에 휘청거리기도 하고, 어둠이 깔린 까마득한 시화 방조제는 막막함만 심어 주었다. 가로등이 꺼져있는 구간을 지날땐, 꽤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그걸 달래기 위해 말도 안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동이 트고 가로등이 훅 꺼질때, 오이도 역에 도착했다. 다리를 보니 무수히 모기에게 흡혈당한 흔적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엄청난 소리를 몸으로 느끼는 와중, 내 다리는 모기들의 만찬이 되었던 것이다. 거긴 모기들의 적십자 였다.ㅜ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올 여름, 여러 록 페스티발이 열리는 가운데 일찌감치 안산 밸리 2번째날(27일 토요일) 표 를 예매했다. 대망의 스테레오포닉스를 보기 위해, 또한 그날. 덤으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bv) 까지, 작년에 이어서 난 확실한 헤드라이너 타겟만 본다. 다른 페스티발에서 하는 위저,스웨이드,펫샵 보이스, 어쓰 윈드 앤 파이어, 메탈리카 도 보고 싶긴 한데, 올해는 스테레오포닉스,mbv 만으로 만족하련다. (사실 다 가기엔 돈이.ㅜㅜ) 이렇게 해외 대중 음악의 거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반갑긴 한데,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하다. 거물급 출연자들을 섭외하기 위한 경쟁으로 과도한 개런티 인상은, 결국 무슨 제로썸 게임 처럼, 제살 깍아먹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한때, 광주 비엔날레를 효시로 전국에 유행처럼 퍼진 미술 비엔날레는 전세계에서 비엔날레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된. 웃지못할 해프닝 꼴. 이처럼 이런 음악 축제도 현재 과포화 상태가 아닌가 싶다. 사실, 가장 성공적인 국제 행사인 부산 영화제를 본받아, 이런 록 페스티발도 2개 정도 국제적인 행사로 키워나가야 한다.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발과, 슈퍼소닉 처럼. 그래서 말인데, 이런 록 페스티발의 효시 였던, 인천 펜타포트 와 지산 밸리 이 두개를 정책적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전에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 의 티켓 파워의 사례에서 이문에 눈이 돌아가는 대기업들이 나도나도 하는거 아닌가. 펜타포트의 취지가 가장 좋지만, 재벌들이 손을 대면서 별 특징없고, 혼탁한 진흙탕 꼴이 되가는거 아닌가 싶다. 

 여하튼 토요일날 기쁜 마음으로 대부도를 향해 길을 나섰다. 이날 다저스의 에이스 커쇼 경기를 다 보았는데, 팽팽한 투수전 너무 재밌었다. 요즘 다저스 경기는 믿을수없는 경기의 연속이다. 난 이미 다저스 (열혈)팬이 된 듯, 커쇼가 추신수와 대결할 때도, 커쇼를 응원하고 있으니.. 
 3시에 나와 자전거를 끌고 전철에 싣고 4호선 끝 오이도..아니 전철에 문제가 생겨 안산역에서 내려, 대부도로 들어가는 시화방조제를 향했다. 난 전철 1시간. 자전거 1시간 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도착해보니 도합 세시간이 걸렸다. 몇달전 주말에 대부도 넘어를 차로 가다가 무지막지한 교통체증에 혼쭐이 나서 전철과 자전거를 선택했지만, 돌아올때는 막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전철역에서 방조제 까지 가기위해선 공장 단지들을 지나야 하는데, 어떤 공장에선 심한 악취가 났다. 시화 방조제의 길이는 12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자전거로 체감 거리는 두 배는 되는 듯. 일직선 길 이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단조로움. 방조제에 갇힌 바닷물은 적막하게 잔잔하고, 그래도 스테레오포닉스를 본다는 설레임으로 간간히 비를 맞고 묵묵히 페달질..하며 하이네켄 한캔하며, 대부도 입성. 

 티켓을 수령하고 자전거 파킹하고, 한참이나 걸어서 입장하니, 멀리서 점점 크게 들려오는 소리는 밴드 피아의 고래고래 살쾡이 멱따는 소리..솔직히 ㅈ나 짜증. (혹시 피아 팬이거나 그들이라면 이 글 읽지 마시라.)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밴드는 왜이리 자주 마주치는 걸까. 언젠가 우연히 어느 한강 공원에서 열린 록 공연에서 보구, 비호감으로 낙인 찍혔는데, 그 후 계속 보기 싫어도 보게 되서 진절머리가 났던. 90년대 중,후반의 하드코어 음악에 맥이 닿아있는 밴드인데, 린킨 파크의 시원한 청량감도 아니고 림프 비즈킷의 라임이 살아있는 그루브 감도 아니고, 개성 없는 기타 리프에 거북한 고음만 꽥꽥 질러대는 보컬. 별볼일없는 연주에 록밴드의 후까시, 밴드가 인정한 밴드라는데, 개븅신들이나 인정하라지. 다른 분야에 대해선 편견을 안 가지려 노력하나, 음악에 대해선 나의 호불호에 대해서, 편견과. 독설을 절제없이 발휘하련다. 난 노엘 갤러거 횽아의 독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록 페스티발에 오면서, 어느 정도의 관용이나 열린 마음이 있으련만, 불행하게도 초장부터 피아의 소리를 들으니, 몸매 좋은 여자들의 활보에도 불구하고 흥이 깨졌다. 음악은 대체적으로 행복감을 주지만, 화를 돋구기도 한다는 점을 피아를 통해 깨닫는다. 록 페스티발에 와서 너무 심한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어떤 분야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회색인은 가당치 않다. 음악을 두루두루 편견없이 다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은 음악에 별 관심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부지 내의 위치를 파악하며 돌아댕기다가 메인 무대에서 넬 의 공연이 시작했다. 사운드가 좋은 편인데, 신디사이저 소리가 너무 컸다. 그들의 음악적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4인조 밴드의 기타 두명임에도 신디가 장악하는 밴드 사운드는 촌시럽게 들렸다. 킬러스를 흠모하나.. 무대에 키보드 연주자가 없었는데, 샘플을 튼 모양. 그리고 보컬의 전달력이 불명확하다. 보컬이 있는 밴드 음악에서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나중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공연평에서의 경우만 제외하고) 어느 악기 파트 보다 보컬이 가장 중요한 음원이고, 가사의 전달력과 수려한 멜로디는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점일 것이다. 거물급들의 공연과 그 여타의 차이는 이 점이 큰 것 같다. 라이브 믹싱의 기술이나, 보컬의 노련함.등등등 많은 점들이 있겠다. 작년에 펜타에서 본 데이브레이크 란 국내밴드는 정말 잘 하더라. 넬의 보컬은 좀 칭얼대는 보컬이라..더 그런 느낌인지도. 모던록 기타의 전설적 기타리스트인 조니 마 도 기본적으로 기타는 보컬을 위한 반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인터뷰에서 피력한 걸 읽으며 감탄했었다. 그런 기타의 대가도 대중 음악에서 뭐가 중요한지 명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넬의 공연이 끝나고 40~50분 후에 스테레오포닉스. 옆, 무대에선 박정현의 공연이나, 스테레오포닉스에 설레이며 집중하기 위해 이동하지 않고. 정중앙 메인 콘솔 바로 앞에서 낚시 의자 펼치고 앉아 기다렸다. 소리를 듣기 에는 가장 중립적인 위치이고. 어짜피 대형 스크린으로 얼굴이 다 보이니,  앞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를 고수했지만, 나중엔 좀 후회했다. 작년 스노우 패트롤 때 처럼 앞에서 사람들과 같이 떼창하고 동화됐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뒤 쪽에선 해브 어 나이스 데이 나 메이비 투마로우, 다코타 등등의 대표적인 싱얼롱하는 노래들은 나만 열심히 따라 부르더라. 그러나 앞쪽에선 관객들이 호응도가 장난 아니었던 듯. 



 8시 20분 등장할 때 부터, 비가 내렸다. 3년전 그들이 펜타포트에서 공연할때도, 비가 내렸고, 관객들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유독 여타 브리티쉬 록 밴드들에 비해 스테레오포닉스는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는 터무니없이 빈약하다. 하지만 이날은 사람도 많았고, 잘 몰랐던 관객들도 그들의 출중한 라이브 실력과, 멋진 노래에 흠뻑 빠진듯 하다. 마지막 곡 다코타가 끝나고 대부분의 관객들의 반응은 "스테레오포닉스 랬지? 개 쩐다!!!." " 보컬 졸라 잘 생겼다" " 목소리 쩐다." 그런 분위기.. 데뷔때 부터 그들의 팬으로써.. 이제야 그들의 진가가 알려져서 내심 뿌듯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워낙 유명한 노래인 해브 어 나이스 데이는 들어봤어도. 그 노랠 부른 밴드의 음악엔 전혀 몰랐었던, 아쉬움. 라이브를 워낙 잘하기로 유명한 보컬 켈리 존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위에 곡은 공연 중간쯤에 부른 블루지 한 노래인데. 나도 처음 들어본 노래인듯, 처음 켈리 존스의 목소리를 들으면, 쇳소리..심하게 쉰소리, 누구는 썩은 목소리 라고도..에 거부감이 들수도 있는데, 어느 순간 그 매력에 빠지면, 엄청 섹시한 목소리의 보컬이구나란 걸 느낄수 있을 것이다. 원래 쉰소리니까. 아무리 열창해도 공연의 처음과 끝이 같고, 뒤로 갈수록. 그 목소리의 매력이 더욱 물씬 나온다. 우리나라 오기전 호주 투어에서 목에 문제가 생겨 공연 하나를 취소하고 온다는 거라길래, 공연의 질이 무척 걱정됐지만, 유투브에서 볼 수 있는 다른 공연에서 만큼 열창을 했다. 


 다만 초반부에 컨디션이 안 좋은지,, 아님, 보컬 모니터에 뭔가 불만이 있는지. 무대 사이드의 엔지니어에게 수신호로 올리라는 제스쳐를 자주 했는데, 다른 밴드들도 공연 초반부엔 많이 그러긴 하는데, 신경이 좀 날카로워 보였음. 결국, 새 앨범의 어느 노래 끝나고 마이크 스탠드를 쓰러트렸는데, 새노래 래서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아서 화를 낸 것도 같았다. 그러나 관객의 반응이 열정적이서 점차 판타스틱 크라우드 라는등. 올해 공연중 가장 멋진 관객이라는 둥. 칭찬을 수시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 다코타가 끝나고.. 바로 횡하니 퇴장하지 않고. 환호에 웃으며 답례하며 퇴장. 


 작년 같은 웨일즈 출신의 영웅인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의 감동에 비견되는 멋진 공연이었다. 



 다음 공연은 공동 헤드라이너인 일렉트로닉 DJ 스크릴렉스. 유명하다지만 잘 모름. 사실 그런 클럽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상용 음악이라기 보다 그냥 이런 축제엔 그나마 인정하는. 하지만 록페스티발의 헤드라이너라니,, 이런 음악은 한켠에 마련된 클럽 라운지만으로 족하단 생각인데, 사람들은 되게 좋아한다. 워낙 고 출력의 사운드를 뿜어내서, 습기에 눅눅한 팔뚝의 솜털도 다 털털털 일서설 기세고, 비에 젖은 귓속의 귀지가 다 떨거져 나올정도로 음향적 촉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스트로빙 라이트로 인해서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어서 30분 여만에 공연에서 벗어났다. 나는 확실히 몸으로 즐기기 위한 음악보단 감상용 음악에 맞춰져 있다. 같은 일렉트로닉이래도 DJ 쉐도우 는 무척 좋아하고 공연도 보았지만, 이런 클럽 음악은 도통 모르겠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거겠지. 그나저나 나도 이런데 와서 내가 챙겨줄 여자가 있었음 하는 한숨어린 바램이..


다음에 계속.~~


위사진. 네이버 캐스트


 기타를 좋아하는 내게 지미 헨드릭스는 절대적인 우상일 수 밖에 없다. 문신을 한다면 나의 왼팔엔 지미 헨드릭스의 초상을 새길것이다. 바늘과 피가 무서워 그럴일은 없겠지만, 마음만은 굴뚝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다. 1971년 27살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정규 앨범 3장 외로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지금도 여전히 발굴중이다. 최근에 미발표곡을 모은 앨범이 2차례나 나왔고, 무수한 레코딩 세션 음원이 다양한 편집 음반으로 출시된다. 뭐 별다른 연습도 없이. 녹음실에서 그냥 합주한 것이 너무나 훌륭한 음악으로 탄생되고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일렉트릭 기타의 영원한 교주로 추앙받고 있다. 


 이 앨범은 지미 헨드릭스 밴드의 첫번째 음반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시애틀 출신인데, 당시 미국의 흑인은 인간취급 못받는 상황임에도 천재적 기타 실력으로 백인 뮤지션들 위에 군림했다. 미국사람이지만 먼저 영국에서 이름이 알려지고 미국에 소개 되었는데, 에릭 클랩튼의 자서전에 보면, 지미 헨드릭스가 처음으로 런던의 클럽에서 연주하던 모습을 엄청난 충격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에릭 뿐만 아니라. 피트 타운젠트. 지미 페이지. 제프 벡. 키스 리차드, 조지 해리슨. 등등이..듣도보지 못한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고 입이 쩍 벌어져, 뭐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다 있냐란.. 기타를 물어뜯어 연주하질 않나. 다리사이에서, 머리뒤로 뒤집어서 곡예하듯 연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충 치는 듯한 연주 모습을 넘어, 음악 자체가 너무나 경이로웠다. 흑인들의 한이 담겨있는 영혼의 울림이 마음을 움직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와 연주 모습을 보면.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보다는 그걸 그냥 가지고 논다란 느낌이 든다. 천재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 혁신을 이루거나, 별다른 노력없이, 엄청난 경지의 스킬에 도달하거나..일텐데. 그런 면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천재의 전형이다. 


 기타의 전기 신호를 증폭해서 앰프와 스피커에서 울리는 일렉트릭 기타를 진정한 전기 기타답게 처음 사용한 이가 지미 헨드릭스다. 앰프의 볼륨을 최고로 했을때. 과출력의 찢어지고 일그러진 소리를 이용하고 심지어, 찢어진 스키퍼 콘의 더 괴상한 소리를 가지고 연주한다. 한마디로 소음을 가지고 음악을 만든 처음의 사람이다. 지금의 록음악의 징징,,즁즁 거리는 기타 소리의 효시는 지미 헨드릭스다. 스피커 콘이 찢어진 소리는 퍼즈 이펙트를 만들게 했고, 스피커 앞에 일렉기타를 갖다대어 피드백 소음을 음악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 소리를 가지고 (퍼플 헤이즈 같은)매력적인 리프riff 플레이를 들려주었고, 블루스를 넘어 하드록 헤비메탈 음악이 나아갈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너무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해서 구리다고 느꼈다. 하지만 머지 않아 그의 천재적인 연주와 영혼을 울리는 노래에 끝도 없이 빠져들었다. 모든 기타리스트들에게 지미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이 앨범은 블루스를 넘어 록음악이 가야할 지점을 너무나 혁신적으로 들려주고 보여준다.


 아침에 링크를 타고 유투브에서 펄프의 2011년 레딩 페스티발 공연 영상을 감상했다. 감동에 겨워 심장이 떨렸다. 다시 재결성 공연을 했었구나 라는 뒤늦은 회환의 반가움. 내겐 90년대의 밴드들 음악에서 청춘의 노스탤지어를 너무 진하게 느낀다. 10대와 20대 사이에 들었던 모든 음악은 감성의 8할 이상은 차지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90년대의 브릿팝 장르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열광했던 뮤지션들의 사상과 태도, 감성과 패션에서 많은 부분 이루어진다. 


 90년대의 브릿팝은 제2의 브리티쉬 인베이젼(영국의 침공)이라 불릴정도로 기라성 같은 밴드들의 전성기 였다. 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 버브,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라디오헤드 등등의 음악은 60년대 비틀즈의 영광을 세분화 시켰다. 나는 90년대의 브릿팝을 통해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 뿌리를 찾아 차츰 클래식 록.. 블루스를 듣게 되었다. 이제는 90년대의 음악은 새로운 모던 클래식이 되가고 있는 것 같다. 전성기의 15~20년 후, 중년이 되었지만. 음악의 에너지와 열정만은 여전했다. 레코드. 청춘의 열기를 봉인시키는 작업. 그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 노래들을 연주하는 순간은 젊음의 엑기스를 들이마시는 것일 게다. 



- It, 1983

- Freaks, 1987

- Separations, 1991

- His N Hers, 1994

- Different Class, 1995  <--

- This Is Hardcore, 1998

- We Love Life, 2001


 펄프는 영국 쉐필드에서 보컬 자비스 코커에 의해 결성되었다. 1977년 자비스가 15의 나이에 밴드를 만들었고, 이런저런 멤버 교체후 6년만에 첫 앨범이 나왔다. 스쿨밴드에서 시작해 무명의 시절을 거쳐, 이름을 알리게 된 시점은 1994년 네번째 앨범 부터다. 그리고 한해 후, 이 앨범 디퍼런트 클래스 앨범부터 대박을 치게 된다. 그들이 전국구 스타가 된 계기는 1995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발의 헤드라이너로 성공적인 공연을 하면서다. 원래는 스톤로지스가 그날의 헤드라이너 였는데, 갑작스레 취소되어 그 대타로 섰던 무대에서 그들의 오랜 무명 생활을 극적으로 역전시킨다.  


95년 이래로 자비스는 음악,연예관련 모든 잡지 표지를 도배하다시피 한다. 190 정도의 키에 삐쩍 마른 몸매. 고도 근시의 눈과 돋보기 수준의 뿔테 안경. 좀 찌질해 보이는 듯 하지만. 핸섬하며, 연약한 듯 하지만, 무대에선 미친듯 발광하는 또라이 기질.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의 가사다. 독특한 삶의 궤적과 감성을 위트어린 슬픔으로 버무려, 일상의 숨겨진 비수를 끄집어 낸다. 중얼중얼 이야기 하는 노래 가사는 일상의 보편적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시로 승화시킨다. 실업수당을 타며, 찌질하거나 궁색했던 삶의 경험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찬가 같이 다가온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너무나 다 좋아서 마치 베스트 음반을 듣는 느낌이 든다. 커먼 피플이나 디스코2000이 대표곡이긴 하지만, 소위말하는 명반들은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들었을때, 감동이 밀려온다. 뭔가 경쾌하고 싸구려 디스코의 경박함의 기운아래 보석같은 멜로디와 가사는 펄프만의 개성을 대중 예술로 만들었다. 


 뛰어난 음색과 가창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자비스의 보컬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비음의 저음과, 버거운 고음의 애절함은 삶의 무거움의 아둥버둥을 그 자체로 드러내는듯 하다. 또 무대에서의 제스춰와 모션등은 스타의 그것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풋내와 가까워 보인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자비스의 인터뷰를 통해서 켄 로치 감독을 알게 되었었고, 나는 펄프의 음악과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그들은 나의 우상이다. 




 오늘 이 앨범을 반복 청취하면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본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최상의 결과물이라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펄프는 메가 히트의 이 앨범 다음으로 또다른 명반인 디스 이즈 하드코어를 발표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