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흥미를 붙인다는 건, 역사에서 재미를 얻었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역사엔 무식하리 만치 모른다. 애써 공교육 탓 보다는 그저 관심이 없었고 공부를 못했다. 태정태세문단세 란 음귀만 입에 맴돌뿐. 

 그래서 광해를 보고나서도 선조,인조,광해군 등을 검색해보며 알아가는 기쁨을 맛봤다. 


 문종. 단종. 세조 시대로 거쳐가는 시대 배경(역사)을 몰랐기에, 나름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것 같다. 누구나처럼,수양대군이 반역에 성공에 세조가 되는 역사를 알았더라면, 결말을 알으니 재미가 반감의 반감이 됐을거 아닌가. 


 광해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위 세명의 왕과, 영화속 중요한 인물들인. 김종서,한명회 등을 검색하며 조선의 역사에 흥미를 붙였다. 또 얼마전에 우연히 들린 노량진 사육신공원이, 이 때의 일들과 관련된 사당이래서, 아~! 착착 궤를 맞춰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인터넷 서점으로 기웃거려 보고 있으니, 평소에 사극을 안 좋아했던 내겐 어쨌거나 이 영화가 좋은 발단이 된 것 같다.  


 일단 2시간이 넘는 영화임에도 재미있게 봤다. 중반 넘으면서 조금 지루한 느낌이 살짝 들었긴 해도, 호화로운 배우진과. 탄탄한 연기, 왠지 포근한 조선시대 배경은 기분좋은 집중을 유발했다. 광해랑 비슷한 느낌이나, 조금 못 미치는 감 이다. 영화적인 허술한 점이 몇몇  눈에 띄긴 해도, 대형스크린을 통해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에, 그런 자잘한 것들은 상쇄되었다. 


 역시. 배우로써 이병헌이 광해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송강호는 꼭 조선,한국인의 초상의 아이콘 같은 친근함 속에 명연기를 선보인다. 초반 조정석과의 연기 호홉은 명콤비 배우를 탄생시켰다. 그 둘의 연기가 초반 영화 감상의 흡인력을 제공했다. 


 잠깐, 미신이라 치부하는 것들에 썰을 풀자면.. (영화 이야기와는 그다지 상관 없는)

 관상. 얼굴의 생김새를 보고 과거와 미래를 알아본다. 서구 과학의 시대를 거쳐 살아오고 있는 우리들에겐 주역이니,명리학이니, 관상, 풍수지리 등을 아주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미신이라 여기고 어리석은 인간들이나 그런걸 믿는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증명할수 있는 것만 믿기엔 세상은 너무 크고 답하지 못한._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서구의 이분법적 체계가 세밀히 나누어 들어가 원자핵을 쪼개고 또 쪼개어 존재의 신비를 풀고자 했다면 동양의 우주적 관점은 현상에 즉답하는 차원이 아닌, 거대한 순환 궤를 통찰하고 그 이치를 터득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닌, 세상을 정확히 그리기 위해선 밑바탕을 그리는 부채꼴 붓과 세밀한 묘사를 하는 세필붓이 필요하듯이, 서양과 동양의 관점과. 그 차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과학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동양의 중추 사상들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미신의 수준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명리학만 해도 사주팔자란 말만 나와도 인생의 노력을 할 생각않고, 미래의 운명론에 깃대 헛된 망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인( 凡人)들은 그렇게 협소한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어리석게 믿지만, 존재의 이치에 대한 탐구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획기적인 것이 된다. 나와 남을 우주적 존재로 여기며 더욱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이치를 터득하는 일일 것이다. 


 오장육부의 우주적 타고난 기운이 천성을 좌우하고, 그 기운의 다양한 배치들이 삶을 조종하고 관상을 움직인다.? 그 밑바탕에는 유전자의 영향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선 신의 창조물이란  절대 믿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미립자 세포들로 구성된 기계(하드웨어)에 불구하고, 태어나는 순간, 그 순간의 우주적 기운이 신체에 스며들어 타고난 팔자를 만든다는(개개인의 소프트웨어 버전)역학의, 증명하기 힘든 점을 조물주 신의 작용으로 환원시키는듯 하다. 분명 우리가 보거나 체감할수 없는 현상들. 즉, 음과 양의 순환, 모든 것은 생성하고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며 그 조화의 균형이 무너졌을때, 변화하게 된다는 원리들은 물리학과도 통한다고 한다. 관상은 내 기운의 배치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 보면 될 듯 싶다. 살아온 흔적과, 살아나갈 흔적을 몸 이라는 현재의 표상을 통해서 예측할 수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본다면, 얼굴은 마음의 도화지일 것이다. 


 사진의 초기 역사를 보면, 빠르게 묘사할 수 있는 사진술을 이용해, 다양한 얼굴의 특징을 분류 도감해, 범죄인의 관상을 밝혀내고자 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이러한 면면들은 우생학으로 이어져 인종학살 같은 전쟁 범죄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심리학 과는 다르게 유사과학으로 평가되었고, 결국 도퇴되었다. 

 그렇다고, 관상을 미신으로만 폄하 하기엔 좀 아쉽다. 동양의 관점은 표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민간의 야매 과학 정도가 된 얼굴의 지도는 좀 더 바르게 살고자 하는 표식의 조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역사적으로 이런 것들은 특권 계층에게만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지금도, 전국의 명당자리는 전부 재벌귀족들의 소유이고 대중들에겐 그런 집착은 우매한 짓거리라고 한다. 토정 이지함의 비결은 한갓 저잣거리의 재미로만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책이라는 주역, 동의보감 등의 혜안을 어쩌면 너무 간과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서구의 과학과 기독교관 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갈등의 축과 긴장의 핵심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란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에 기초에 몰락한 양반가 인물인 천재 관상학자 등장은,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가져오지만 관상의 운명론적 관점과. 사실을 기초로한 권력암투의 장에서의 연관성은 조금은 아쉽다. 전반부의 영화의 톤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중반을 넘어서 부턴, 무겁게 확 변한다. 관상의 운명론에 대한 성찰이, 나중에 파도만 봤을 뿐, 그것을 움직이는 거대한 바람을 보지 못했다란 회심의 깨달음으로 정리가 되지만. 그 과정이, 이 영화의 제목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아쉬움. 권력암투 보단. 몰락한 양반인 자신을 통해서 계급투쟁에 대한 운명론으로 다가섰으면 어땠을까 싶다. 


 수양대군 이마에 점 세개를 만드는 씬은 연출이 너무 아쉽다. 가장 긴장과 스릴을 유발하고 관상에 대한 어떤 관점을 잘 드러낼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 씬은 전개가 너무 쌩뚱맞다. 전체적으로 상영시간을 줄여야 하는게 맞지만. 이 씬에서만큼은 디테일 했어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이정재의 악역이 훌륭하다고 하나. 나는 좀 반대의 생각이다. 신세계에서도 칭찬을 많이 하던데, 물론 잘 하긴 하지만 난 뭔가 좀 부족하단 느낌이 계속 든다. 예전에 '태양은 없다'의 양아치 깜냥이 이정재에겐 가장 알맞은 역할인 것 같다. 이 배우의 목소리나 인상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현이 울릴때 twang 한 공명이 깊지가 않은듯. 뭐 어쨌거나 배우들에 호불호는 당연히 있게 마련. 이병헌은 싫던 좋던. 천상 배우란 각인이 확실히 됐었다. 박해일도 마찬가지고, 이정재는 더 봐야겠음. 

 여하튼, 영화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광해 만큼 흥행은 안 될 것 같다. 


 조선은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 문화의 나라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팔만대장경.등은 얼마나 찬란한가. 하지만 그 수많은 좋은 글귀들이 민중에게 전승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은 당시 지식인의 언어인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갖지 못한 근본적 원인은 무수한 당쟁과 암투의 탁상공론속 부패의 폐단이나, 외세의 침략에 의한 도탄 보다는, 우리의 다채로운 기록문화의 전승 단절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몸속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p s  초반에 송강호가 조정석 보고 너는 목젖이 나와서 욱하는 성질을 조심하라고, 화를 당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후로 계속 내 목젖을 어루만지며 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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