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어느해 여름에 대한 추억이 딱히 없다. 좋던 싫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쥐어짜봐도 여름은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나태한 폭염에 대한 원성이었고,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야 안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미천한 여름 추억은 배제하고, 이 영화속 주인공들의 풋풋한 여름 이야기에 웃음짓고, 가슴아픈 사연에 뭉클해 지는 것이다. 극장 개봉할 때도 그랬었지만, 간만에 한웅큼 그렁그렁 눈물을 움켜지고 가슴으로 꿀컥꿀컥 삼켰다. 아주 좋은 영화임에도 당시 흥행은 별로였던듯. 거의 텅빈 극장에서 왜그리 울음을 참았는지.. 


 아마도 비슷한 시기였을거 같은데,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도 이 영화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안타까운 청춘의 사랑을 그렸던것 같다. 이 영화는 후반부 두 주인공들이 처하게 된 상황을 배제하면 초중반 까지는 일반적인 풋풋하고 순수한 로맨스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농촌에 농활을 간 일군의 대학생중엔, 부유한 집 아들이자 시국상황에는 별 관심없는 주인공(이병헌)이 있었고, 시골에는 너무나도 청초한 수애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풋풋한 감정은 마치 내가 이병헌으로 빙의된듯이..완벽히 수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힐링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녀의 웃음에는 모든게 힐링이 되어 욕망의 억압과 슬픔의 광기는 스르륵 무너졌다. 여자들이여. 수애처럼. 웃어라..그럼 남자가 생길것이다. 이병헌이 수애한테 빠지게 된 계기, 노래, 허벅지?, 환한 미소는 나 또한 설레임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ㅜㅜ 거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압권은 간이 영화 스크린 반대편, 학교 창문에서 단둘이 앉아 영화 보는 장면 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이 서울로 온 그들에겐 시련이 급격히 다가온다. 손을 놓지 않았어야 하는 안타까움. 시대의 아픔은 그들의 사랑을 평생 갈라놓을 운명으로 뒤바꿔 놓는다. 두 배우의 출중한 연기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폭풍감동은 아니었을 거다. 두 배우의 눈물을 머금은 웃음은 연기이지만 아름다움의 비수 같았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편백 나무의 향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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