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70대 후반 나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마지막 연기작 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숙고의 성찰을 보여준다.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 노년에 와서 삶의 철학을 영화 속에 응축한 이 작품은 그의 영화 인생에서 최고의 정점을 이룬다.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이어지는 그의 수두룩한 명작들 ( 퍼펙트 월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스페이스 카우보이,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라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체인질링.. ) 을 넘어 흥행과 비평 모두 최고를 달렸다. 노장 감독의 의례적 대우가 아니라, 진정 깊이 있는 삶의 성찰을 통한 노 감독의 따뜻하며 예리한 메시지를 담은 역작이다.


 작년에 국내 개봉시 처음 봤을때보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니, 좀 더 깊이있는 메시지와 잔잔한 재미를 뱔견하여,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다시보기를 권하는 바이며 처음보시는 분은 나의 감상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물론 영화 감상후에..( 이 글은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그리 상관은 없겠다.)  자 그럼 영화속으로..

 영화의 시작과 끝은 장례식 장면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죽음은 끝인가 시작인가? 27살 애송이 신부의 판에 박힌 설교에서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시작한다. 삶은 무엇인가?. 시작과 끝은 삶과 죽음이라는 굴레를 반복하듯이 사람들의 관계속으로 이동한다.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 부인의 죽음으로써 그는 타인과의 관계의 새로운 국면으로 영화는 전개되며, 삶의 변화를 통해 구원에 이루며, 결국 마지막에 그는 숭고의 죽음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에게 삶의 국면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한다. 영화속에서의 결말을 넘어선 현실의 관객 모두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월트 코왈스키는 한국전 참전용사로써 평생 내면의 상처를 가진, 지극히 보수적인 폴란드계 백인 영감탱이 이다.  그의 부인은 평생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그를  걱정해 죽기전 신부님한테 부탁한다. 그래서 책만 읽은 애송이 신부는 그렇게 냉대를 당하면서도 장례식 이후,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말 뿐인 구원과 참회의 공허한 설교는 그의 인생경험에 비춰볼때 턱도 없이 가소롭기만 하다.

 월트와 신부의 대립을 통해서 타인의 삶에 참여(관계)하는 방식의 문제를 제시한다. 월트는 전쟁체험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 ( 살기 위한 즉각적인 적을 살상하는 반응 ) 을 통해 부질없는 말이 먼저가 아니라 행동으로 삶을 실천하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영화속에서 이러한 계기의 시작은, 월트가 옆집의 몽족 사람들에게 쥐새끼 같은 동양놈들이라고 증오의 시선을 보내던 차에 신부는 월트가 있는 술집에 찾아와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 월트는 죽음에 대한 고통스런 체험은 생생히 말하지만 삶의 문제에 대해선 이렇다할 답변을 못한다. 삶에 대해선 모른다는 신부의 일침에.. ' 그럴지도 모르지 '라고 그는 낮게 읖조린다. 그리곤 영화는 삶의 문제에 월트가 어떻게 참여하는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특히나 이 장면에서 인물에 떨어지는 조명이, 빛 과 어둠으로 극단적인데 삶과 죽음이라는 큰 화두를, 시종일관 영상과 상황속에서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대체적으로 초반과 후반의 월트가 등장하는 씬은 강한 명암대비를 이루어 삶과 죽음의 줄타기 하는 듯한 심리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때로는 인공적인 조명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적인 빛의 상황하에서 인물의 다양한 심리를 표현한다. 얼굴에 드리워지는 음영의 농도와 양이 영화속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고 보면 된다.

 
 영화의 첫 대사가 친구인 듯한 늙은 노인이 월트에게 조문하면서 "부인의 명복을 비네
She's a real Bitch." 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월트의 친구들과의 대화 방식은 이런식이다. 이태리계 이발사, 아일랜드계 공사 감독관 과  대화에서의 재미도 그러하고, 마지막 월트의 유언장에도 여전하다. 타오에게도 그런식의 남자들의 대화법을 교육시키는데 이러한 삶의 태도는 신부의 교과서 읊조리는 공허한 말 과 극명히 대비를 이룬다. 그는 행동이 결여된, 경험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말들은 철저히 배척한다. 자신의 말이 아닌 것들은 죽어 있는 말로써, 그와 친구들과의 말은 죽음을 넘어선 삶을 유희하는 풍류의 자세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과 죽어있는 말의 차이를 통해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가르치고 일깨운다.

 신부는 불쑥 월트의 집, 술집에  찾아와 대뜸 월트라고 부르는데 정작 월트는 미스터 코왈스키 라고 부르라고 정색을 하며 말한다. 관계의 기본인 호칭부터 월트는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끊임없이 소통의 기본인 호칭 문제를 대화 속에서 계속 야기시키고, 관계의 진정한 발전에서 그것은 무마된다.

 이러한 점은 노년의 감독이 미국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잔소리 같은 가르침이다. 실제로 공화당 지지자인 이스트우드 감독은 미국의 보수적인 가치들을 역설한다. 큰아들의 도요타 랜드크루저 SUV 를 타는 것을 마땅치찮은 시선을 보내며 포드를 타면 어디 덧 나나 라고 읊조린다. ( 현재 도요타 자동차 가 말이 많지만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 젊은이들은 도요타가 미국 차 브랜드 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만큼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절대적이었고, 현지화 되었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죽음을 앞두고 신부한테 고해성사 하는 세가지 이야기 ( 젊었을때 다른 여인과 고작 키스한점,(불륜), 세금을 탈세한 점, 자식들에게 정이 없었던 점 ) 는 미국인 에게 고하는 직접적인 메시지 이다.


 월트의 행동 자체가, 이스트우드가 말하려는 미국의 보수적 견지의 가치를 보여주려는 듯 하다. 월트가 초반에 야만인 이라고 불렀던 옆집 몽족 사람들에게 참여하는 계기는, 몽족 갱들이 밤에 타오를 괴롭히는 소란에서, 월트는 한국전에서 썼던 M1 소총을 들이대며 그들을 물리친다. 위압적이고 으스스한 자세로, 그리고 또 타오의 누나 수가 길거리에서 흑인 깡패한테 위험에 처했을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과 대결한다. ( 이스트우드 감독을 유명하게 만든 황야의 무법자. 더티 해리 형사의 냉혹한 인상을 찌푸리며..) 보통 사람들로써는 어려운, 이웃의 위험에 참여함으로써 월트는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며 이웃 ( 타 민족 ) 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수가 몽족 갱들에게 심각하게 폭행을 당했을때, 그는 분노에 치밀며 반격을 행하리라고 다짐한다. 그는 자신과 이웃이 조금이라도 당하는 꼴을 못 보고 어떤식이라도 행동을 취한다. 그의 행동에서 즉각적인 미국의 단면을 보았으나, 마지막 행동은 우리에겐 큰 반전 이었다. 모든 이념, 사상, 종교 를 넘어서는 숭고의 자세 그 자체로써, 60년전 한국전쟁에서의 죄의식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빚진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으로써..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미국인들 이면서 각자 꼬리표가 앞에 붙는다. 결국 백인이던 흑인이던 다 이방인 이라는, 월트 자신은 폴란드계 영감이며 이태리계 이발사, 아일랜드계, 아프리칸 흑인, 멕시칸 갱, 몽족. 그리고 병원내에서 월트는 인도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무슬림 간호사로 부터 코스키 라는 이상한 발음으로 불려지고 중국계 의사한테 상담 받는다. 월트의 인상은 지푸려지지만 결국 이런 인종의 비빔밥화가 된 미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면을 옆집의 몽족 소년 타오와의 관계에서 깨닫는다. 이웃을 돕는 타오의 심성을 발견한 그는 개인주의가 심화된 사회에서 타오에게 노동의 수고를 가지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가르친다. 또한 차고의 평생 모은 공구들, 1972년 포드 그랜 토리노 를 통해 남자가 가져야할 가치, 풍류 들을 가르친다. 영화속의 모든 점들이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훈수 인것 같다.
 이러한 다 인종 국가에서 어떻게 화합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월트의 삶과 변화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월트의 장례식에선 애송이 신부도 깨달은 바가 있어 설교의 내용 자체가 진솔한 말로 바뀐다. 영화 초반에 월트의 부인 장례식 이후 월트의 집과 옆집 타오네 집의  아기의 탄생 파티의 대비 처럼 유언장 앞에선 월트의 자식과 타오는 서로 엇갈린다. 타오의 엺은 미소는 월트의 죽음으로써 또 다른 삶이 전이 되는 것은 암시한다.(1972 포드 그랜 토리노를 통해서)
  영화속에서 여러번 변주되어 들렸던 메인 주제곡은 월트(이스트우드) 감독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 불러진다. 아스라이 울려퍼지는 그랜 토리노..

P.S.
 영화 초반에 월트의 손자 들이 옛날 전쟁 사진을 들고 '한국이 어디야?' 하는 그 어이없어 하는 어감에서 씁슬했었다.

 타오의 엄마와 누나인 수가 월트에게 일을 시키라고 데려왔을때, 그 둘이 타오에게 순간 구박하는 장면이 되게 재밌었다. 여자들의 기세가 장난아니어서 월트도 혀를 쯧쯧 찬다.

 수가 아일랜드 청년하고 걷다가 흑인 깡패를 만났을때, 아일랜드 청년이 흑인 흉내내는 말투와 행동이 어이없이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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