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습기의 끈적거림에 머리가 더이상 어떠한 사고과정에 태업했을때,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은 아주 훌륭한 휴식이 되어준다. 이렇게 아무런 정보 없이, 마음 다 비우고 그저 눈과 귀에 현실의 더위를 잊게 하는 감각의 집중을 제공한다. 좋은 영화는 알게 모르게 마음의 각성을 불러온다. 몰입의 재미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 순간, 오늘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바꾸게 한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인간을 통해 삶을 대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우연찮게도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알라스카 혹은 시베리아의 극한 자연환경의 배경에, 소름끼치도록 무서움을 보여주는 늑대무리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어떠한 좀비, 공포물 보다 더 이러한 자연의 재앙 앞에 진짜 공포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눈보라 치는 설악산의 늦은 오후에 인적드문 곳을 걷고 있자니 막막한 두려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거리는 느낌을 상기해 본다. 또 외계의 땅 같은 화이트샌드 사막에 홀로 선 그 기분, 결국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던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속 같은 지경은 아니어도 대자연의 공포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영화속 추위를 보다보니, 이런 더위쯤이야 라고 읊조리게 된다. 하지만 빤스만 입고 있어도 너무 덥구만..


 주인공 리암 니슨 (오트웨이) 은 극지에서 석유 시추하는 회사에 고용된 안전 요원이다. 저격용 총을 들고 늑대들의 습격으로부터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늑대들이 사람을 향해 전광석화로 달려드는 과감함에 기존의 늑대에 대한 상식보다, 훨씬 더 무섭다. 영화를 보다 보면 늑대들의 그런 용맹함과 끈질김은 자기들의 영역 싸움에도 기인하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그런 오지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에서 오는 듯 하다. 


 영화의 시작, 주인공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성찰적인 자아를 들려준다. 그는 슬픔과 절망에 쉽쌓인채 글을 쓰고 있고, 떠나버린 옛 연인의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사랑하는이에게 버림받은, 혹은 잃은 상처가 지금 이런 극한의 오지에서 철저히 고립된 채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자신의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 소리에 다시 한번 더 삶 속으로, 두려움에 맞서 최고,최후의 전투를 향해 오늘 살고 죽을것이다.라고 읊조린다. 그가 쓴 글은 상처받은 영혼에 신념이 되어주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 어떤 부적 처럼 그에게 힘을 준다. 인생의 위기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념이었다. 


 그를 포함해 노동자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 살벌하게 실감난다. 예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얼라이브'에서 처럼. 눈보라 치는 설원에 갈갈이 뿌려졌다. (영화속 생존자들이 '얼라이브' 영화를 언급하는데, 재미있다.)


 심각한 부상으로 죽어가는 동료에게 주인공이 편히 죽게끔 인도하는 과정이 인상깊다. 리암 니슨의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물씬 느껴지는데, 제목(회색) 처럼 흑과 백, 삶과 죽음의 중간의 찰나에서 사실을 인식시키고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 자연스럽고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들이 생존을 도모할때, 추위와 배고픔 보다 더 큰 위기는 늑대들의 공격이다. 이때 부터 늑대와의 사투가 펼쳐진다. 사운드 디자인으로 연출한 늑대의 소리는 공포를 배가시킨다. 

 한명씩 죽어가는 와중에 그들은 이런 상황이 닥친것에 대해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교환한다. 주인공 오트웨이는 신, 천당을 믿지만 그의 신념은 철저히 실존주의에 입각해 있다. 현실에 처한 이 순간의 진실이 오로지 진리란 신념. 어떤이가 자기 딸에 대한 추억을 체념하며 말하자. 그는 좋던 나쁘던 어떤 기억들이 네가 1분이라도 더 살고 싶게 한다고, 삶을 위해 싸우게 한다고 말한다. 

 어릴적 아버지와의 추억을 말하며. 아버지가 쓴 단 네 줄의 시를 읊는다. 

 " 다시 한번 싸움 속으로

   내가 맞이할 최후, 최고의 전투를 향해

   오늘 살고 또 죽을 것이다. 

   바로 이날을 살고, 또 죽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이 독백투로 쓰던 글의 요지다. 



 마지막 장면, 그는 홀로 늑대굴의 우두머리 늑대를 눈앞에 두고 최후의 싸움을 준비한다. 손에 미니 양주병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테입을 둘둘말아 고정시켜 싸움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네 줄의 시를 읊는다. 처음에 스스로 죽으려 했던 자가, 끝까지 생사의 악전고투에서 포기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엔딩씬 이었다. 이 영화의 감동은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나름 숙고하게 만든다. 지금 현재에 철저히 집중하고 시시각각 당도한 난관을 헤쳐나가는 길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처한 상황에 대해 절망은 할 수 있으나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홀로 남게 될 때 까지 인상깊은 씬들이 많지만, 글이 더 늘어질까봐, 여기서 줄인다. 

 자막이 끝까지 다 올라가고. 마지막 짧은 영상은 강렬한 울림을 준다. 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숙고할 여운을 길게 남겨 놓는다. 대단히 인상깊고 마음을 요동치게한 영화였다. 이렇게 우연한 걸작을 만나다니. 이런 한여름의 폭염에 축복이었다. 개새끼들의 오싹함이란..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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