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부인을 사랑하게된 기타의 신이라 불리어지던 에릭 클랩튼은 이 앨범을 통하여 한 여인에 대한 애절한 짝사랑의 감정을 자신의 혼신을 다해 통속적 사랑에서 위대한 대중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애걸복통한 절박한 심정이 세월을 넘어서 여전히 감동을 준다. 남자 여자가 존재하는한 이 영원한 테마는 우리의 심금을 울릴것이다. 굳이 가사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그의 기타 연주에는 짝사랑의 블랙홀 속에 절망과 희망의 고통이 애끊게 몸부림친다. 마치 횃불에 달려드는 나방같이 에릭 클랩튼은 음악과 죽음 사이에서 사투를 벌인 것이다. 이 앨범을 만들 무렵 이미 마약 중독에 빠져들었고, 그 후 1974년 솔로 앨범으로 재기 할때까지 그는 사경을 넘나드는 마약중증 환자였다. 친구의 부인에 대한 사랑과 집념 그리고 상실이 이렇게 역사에 남는 위대한 대중예술을 만들었던 반면,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젊은이를 파멸의 지경 까지 몰고 갔던 것이었다.

 에릭 클랩튼이 사랑한 여인은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의 부인 패티 보이드(Patti Boyd)였다. 이 앨범에서 레일라는 페르시아 신화에 나오는 미모의 여성으로 패티 보이드를 비유한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여서 데이트시 음악을 주제로한 작업멘트로도 이미 식상한 이야기 이겠지만 이 앨범의 주제 자체이기 때문에 이 음반이 나오게 된 내막을 알면 더욱 느낌이 올 것이다.
 
 패티 보이드는 19살의 나이에 비틀즈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조지 해리슨의 마음을 빼았고 그녀와의 사랑을 통해 조용한 비틀즈로 불리는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명곡 Something을 만들게 된다. (레논&매카트니의 작곡 재능에 눌려 많은 곡을 쓰지 못한 조지 해리슨은 Someth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에릭 클랩튼은 10대 후반부터 야드버즈Yardbirds(에릭 이후 제프벡 그 다음으로 지미 페이지가 가입함으로써 레드 제플린의 전신이 됨) , 존 메이욜 앤 더 블루스 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 Breakers), 크림(Cream),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거치면서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의 위치에 오른다.  당대 최고의 인기밴드인 비틀즈와 교류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비슷한 조지 해리슨과 친해진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60년대 중반 인도의 동양 철학에 빠지게 된다. 조지에서 비롯한 동양 사상에의 관심은 66년 비틀즈 멤버들이 인도로 가 몇 달간 명상 수행을 하면서 심화된다. 패티 보이드와 결혼한 조지 해리슨이 비틀즈와 동양사상에 심취해 있자 패티는 남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한마디로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남편의 친구인 에릭 클랩튼에게 관심을 보이자 순진한 에릭은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조지 해리슨이 인도에서 돌아와 다시 가정에 충실하게 되자 에릭은 쉬핑 크림 걷어낸 식어빠진 카페라떼 처럼 상실과 공허의 구렁에 빠지게 된다. 히피 정신과 68 혁명의 자유의 공기 속에서 마약은 신문가판대에서 손쉽게 구할정도였고, 프리섹스는 만연했다. 당대의 음악을 선도하고 있는 재능 출중한 잘생긴 젊은 뮤지션인 그들의 여성편력은 당연했지만 패티 보이드에 대한 마음만은 각별했던 것이었다.

 크림과 블라인드 페이스를 거치면서 하드록의 창시자로써 그의 기타 연주는 정점에 올랐고 패티 보이드에 대한 짝사랑과 음악적 욕심은 데렉 앤 더 도미노스란 밴드를 결성하고 이 음반을 만듬으로써 그의 음악 인생에서 최고의 정점을 맞는다. 그녀의 마음을 빼았기 위해 그는 노래를 만들었고 마약으로 상실의 고통을 달래가며 자신의 모든걸 쏫아부었다. 나중에(요즘의 나이든) 에릭 클랩튼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갖춘 친구 조지 해리슨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다고. 그도 그럴것이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로써 명성.인기.최고의 여자. 명상에 의한 고결한 성품. 등등.. 젊은 에릭이 보기에도 배가 아플만 했다. 또 에릭의 자서전에서 보면 하나에 몰두하면 헤어나오질 못하는 천성 또한 친구의 부인에 대한 집착에 한 몫 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성장했겠지만. 반면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오랜 고난의 인생을 걸었다. 


 이 앨범을 발표했을때, 에릭은 패티 보이드의 마음이 넘어오리라는 것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요지부동했고, 에릭은 이미 강력한 마약인 헤로인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헤로인을 할 꺼라고 하며 유치한 협박으로 사랑을 구걸했다. 그는 사랑의 실패와 친구 지미 헨드릭스의 죽음에 의한 상심속에서 마약의 구렁에 빠져 폐인이 되었다. 그의 재능을 아쉬어한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첫 솔로작품 (461  Ocean Boulevard. 1974.)으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이 레일라 음반 만의 정열과 애처러움 충만한 기운 등은 느끼기 어렵고 패배자의 씁쓸한 고독속의 읊조림 이었다.
 그는 라이브 공연시 계속 레일라 를 불렀고 77 년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을 한다. 롤링 스톤스의 세컨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 와 관계를 가지다 결국 79년 에릭 클랩튼과 결혼을 한다. 에릭 입장에선 끝까지 속 태우다 결혼에 골인 하게 된 것이다. 그 결혼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 Wonderful Tonight 이란 명곡을 탄생하게 했다.
 상식으로 이해 하기 힘든 것이 에릭 클랩튼과 패티 보이드의 결혼식에 존을 제외한 비틀즈 멤버들이 참석해서 축가를 불러 주었다. 조지 해리슨은 자기 부인이었던 여인과 결혼하는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던 것이다. 2001년에 50대 후반의 나이로 숨진 조지 해리슨을 되돌아보면 평생 명상 수행과 동양 사상으로 충만했던 그 였기에 이해가 가기도 한다. 또 결혼 생활 10년(권태?) 하고 이혼한 상태였기에, 친구가 그렇게 오래 힘들어하는 모습에, 그는 마음을 비웠을 것이다.

(힘들게 얻은 사랑도 결국 오래가지 않았다. 여인은 늙어 버렸고 사진속의 에릭의 표정은 정말 인생무상이다.^^ 이혼 이후에도 그의 고난은 어린 아들의 추락사로 이어진다. 그래서 명곡 Tears in heaven 이 나오게 되고 마약과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그는 더욱 블루스 음악에 매진한다.)




 그런 아픔이 있고 절실했기 때문에 이 앨범이 주는 감동이 쎄다. 블루스 록의 진면목이다. 고상하게 현학적이지 않고 현실의 삶과 아픔을  진솔하게 토로하는 힘이 있다. 그는 솔직히 말한다. 제발 내게로 와 달라고.. 그의 목소리는 애절함으로 절규하며 진공관 앰프의 볼륨을 최고로 높여 오버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소리는 격정의 고음을 연주할때 그 음의 끝은 갈갈이 찢어지며 그의 마음을 보여준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에서 초빙한 듀안 올맨(Duane Allman)의 슬라이드 기타와의 앙상블은 천상의 기타 연주였다. 애타는 마음의 외줄타기 마냥 조마조마한 그 살떨림. 나는 그것을 2007년 에릭 클랩튼의 내한 공연때 몸으로 느꼈다. 황홀했던 기억은 현실에선 꿈과도 같다.
 또한 친구 지미 헨드릭스의 명곡 Little Wing 을 가슴 절절하게 커버했다. 앨범의 전체는 기승전결의 상승 그래프 처럼 채워졌다.  각각의 곡들은 감정의 절정(Layla)의 폭발을 위해 탄탄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앨범의 후반 부 Little Wing 이 한번 터지고. 잠시 숨고르고 최후의 Layla가 터진다. 한편의 연극처럼 이 앨범 전체의 호홉을 같이 타보면 인간 정신이 만들어낸 음악의 위대함을 여실히 느낄것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보내는 구애의 애끓음속에 우리의 예술 정신을 생각해본다.  


Eric Clapton - Layla live. Shift 버튼을 누루고 클릭하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fX5USg8_1g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