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버틀러. 20대 초반 미국의 얼터너티브 음악에 심취해 있던 내게. 영국 음악의 길을 열어준 밴드는 Suede 였다. 그들의 데뷔 앨범(1993)의 첫 곡 So Young 을 들었을 때. 헉..이건 3분 짜리..예술이군..하는 강렬한 미학적 쾌감을 얻었었다. 수려한 기타의 라인과..피아노 선율은..보컬의 멜로디 이상으로 강한 끌림이 작용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2번째 곡. Animal nitrate 를 듣고 나서 이미 중독을 만들어 냈다. 보컬의 주된 선율과..묘하게 어우러지며..배킹도 솔로도 아닌 기타리프는 끈적끈적하게 온몸의 감각에 들어붙었다. 

 스웨이드 란 밴드에 깊이 중독됐고..이 밴드의 기타리스트 버나드 버틀러는 나의 기타 히어로 가 되었다. 기타를 치고 싶다. 란 열망이 들끌었다. 그가 쓰는 기타와 흡사한. 그당시 거금 28만원에 빨간색 에피폰 335(The Dot) 기타를 샀다. 그렇게 버나드 버틀러는 나에게 기타의 열망을 심어준, 첫 기타를 사게 만든 장본인 이다.

 최근에 재결성된 스웨이드가 한국의 록 페스티발에 참가해 공연을 했다. 내게는 초기 기타리스트 였던 버나드 버틀러 가 없는 스웨이드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이제 곧 존 프루시안테가 없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신보가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그닥 관심이 안 간다. 스웨이드 1집 2집은 평범한 팝송을 넘어. 미학적인 차원의 예술로 승화 시켰다. 버나드 버틀러 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2집의 녹음을 마치자 마자 버나드 버틀러는 밴드를 탈퇴한다. 성공한 밴드의 작곡가 이자 기타리스트 였지만. 그는 이당시. 인생의 위기에 봉착했다. 

 14살 때 부터 밴드를 만들어 노래를 만들었던 빼빼마른 소년은 밴드가 와해되고.. 별다른 친구도 없이 학교와 방구석만 오가며 음악과 기타에 빠져지내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때 그의 우상은 the Smith 의 기타리스트 자니 마. 버나드도 에피폰 쉐라톤 모델을 첫 기타로 샀다..자니 마가 쓰는 체리 레드색. 깁슨 ES-355를 동경했을 터는 말할것도 없고..



 NME 잡지의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간 버나드는 스웨이드에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게 되고, 팝 역사상

 위대한 작곡 콤비들 처럼. ( 매카트니&레논, 믹 재거&키스 리차드. 모리씨&자니 마 ) 또 하나의 위대한 작곡 콤비가 된다. 브렛 앤더슨 & 버나드 버틀러. 

 그렇게 스웨이드 초기, 빅스비 암이 달린 체리 레드색 깁슨 ES-355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기타가 된다. 

 내가 처음 90년 초반의 스웨이드의 라이브 영상을 보았을 때. 보컬 브렛 앤더슨의 호모 필 가득한 의상과 쇼맨쉽은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밴드의 초기 전략은 모호한 성 정체성과 퇴폐미를 강조했다. 데이빗 보위의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밴드가 성공해서 투어를 다니고..연일 파티를 벌이는 도중에도..버나드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호텔방에 혼자 쳐박혔다고 한다. 뮤지션과 연예인의 다리에서 그는 고독한 뮤지션의 길로 올인했고. 그러한 음악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브렛 앤더슨과 는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2집 녹음을 할때는 스튜디오에서 다른 멤버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자기 녹음 파트가 끝나고 다음날 악기를 가지러 스튜디오에 갔을땐. 자기 장비가 문 밖에 내 놔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뮤직 비지니스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을때. 스웨이드의 명 싱글곡. Stay together 를 녹음을 해야했다. 밴드를 탈퇴하고. 반년을 집에서 암중모색하다..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한다. 맥알몬트 & 버틀러 듀엣으로 활동했고. 다른 뮤지션들의 피처링을 해오다..드디어 대망의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1998년에 발표한다. 바로 이 앨범.. 서두가 매우 길었다.  


 이 솔로 데뷔 무대를 보면 버나드 버틀러의 스타일이 여실히 보여진다. 기타에 게인을 많이 먹이고. 록킹하고 에너제틱한.. 기타 솔로 할때의 아밍과 함께. 화려한 모션은. 우아한 록 스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가 싱어 송 라이터 면서 기타와 피아노..프로듀서 등 음반의 모든면에 혼신을 다한 흔적이 엿보인다. 유려하고 고혹적인 선율속에 내면의 침잠어린 고독이 스며있다. 하지만..그의 첫 발걸음은 기운차다. 나는 특히나. not alone 을 좋아하는데..오아시스의 whatever 이후로 일렉트릭 기타와 현악 세션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어울러 지는 곡도 드물다.



 버나드는 99년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 깜짝 공연을 펼친다. 일본의 록페스티발을 가는 와중.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에 잠시 왔던. 그는. 홍대앞 스팽글 이란 클럽에서 포커 게임 내기에 져서. 그 벌칙으로 깜짝 공연을 했다. 이 때. 피씨통신 동호회에서 이메일이 왔었는데..나는 설마..장난이겠지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실을 알고 엄청 후회막심했다.  이 때 이 공연을 정말 보았더라면..나는 정말. 기타를 열심히 쳤을 것이다. 



 

 2005년이 되서야 버나드 버틀러의 연주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연세대 강당에서 Tears 의 공연에서 였다. 티어스는 10년만에 스웨이드의 보컬 브렛 앤더슨과 다시 결합해서 나온 밴드 였는데. 결국 단발에 그쳤다. 결코 화해 하지 않을것 같은 그들이지만. 결국 다시 뭉쳤고. 훌륭한 곡을 써냈다. 하지만. 스웨이드 시절의 명곡들은 단 한곡도 연주 하지 않았다. 그만큼 버나드는 그 시절을 기억하기 실은 모양이다. 요즘엔 세월의 간극만큼 꼭 그렇지 만도 않은것 같지만.

 

 솔로 활동과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고. 현재는 프로듀서 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 대박난 뮤지션 더피의 음반을 프로듀스 했다.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로, 그의 음악적 재능은 앞으로 드러나기 보단. 다른 뮤지션의 조력자로 더 치중해 보인다.
하지만. 버나드 버틀러의 퍼포먼스 가득한 기타 연주를 보고 듣다 보면..그렇게 섹시해 보일 수 없다.

 중년이 된 그가 이제 무대위에서 격렬한 기타 연주를 하기 힘들겠지만. 내 눈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수려한 선율과 화려한 기타 아밍질을..미려한 몸놀림을..

 버나드 버틀러의 첫 솔로 앨범은 진취적인 발걸음 이었다. 인생의 위기를 겪고 난 예술가의 진중한 독립선언 과도 같다. 나는 이 앨범을 들을 때마나 여러가지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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