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나는 길거리 음식을 잘 안 먹는 편이다. 이유는 서울의 대기 오염도와 연관이 있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험난한 눈밭을 헤치며, 큰길로 들어서는 모퉁이에 섰다. 눈 밭에 파묻힌듯 보이는 작은 행상이 하나 있었다. 벌어진 비닐 틈으로 보니. 작은 붕어빵 틀과. 바로 밑에 흰 종이위에 천원에 여덟개 라고 쓰여 있었다. 아마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 천 원 어치요." 네개는 이미 틀에 올려져 있었고, 나머지 네개를 만드느랴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의 손이 분주히 움직였다. 천원에 여덞개의 붕어빵은 금새 내 마음을 미안하게 했다. 싸고 양많은 것을 추구하는 경제논리에 입각한 일말의 내 욕심이,  부지런한 그녀의 손놀림앞에 부끄러웠다. ' 남는게 있을까?' 짧은 상념 끝에 나머지 네개의 붕어빵이 다 만들어져, 흰 종이 봉투에 담겨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천원짜리 지폐를 펴서 건네고 봉투를 받으면서 진심으로 " 감사합니다 "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보질 못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 맛있게 드세요 " 였던것 같다. 그 순간의 어렴풋한 인상은, 아주 환하게 웃으며 붕어빵 여덟개가 든 흰 봉투를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갓 구워나온 봉투속 뜨거운 붕어빵은 장갑을 벗은 내 손을 얼지 않게 온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봉투를 든 따스한 손을 타고, 마음속 깊은곳에 뜨거운 감동이 접촉됐다. 식을까봐 재빨리 꺼내 먹어보았다. 그 뜨거움이 내 이기심과. 허영, 마음의 오염을 건드렸다. 고통스러웠다. 서울의 대기 오염이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문제였다. '어떤 가치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문제였다. 나는 어떤 Trade 로 타인에게 감동을 선사할지 더욱 심사숙고해 볼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누군가의 것을 많이 뺏으려는 것,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눠주고, 채워주는 마음으로 충만한, 그래서 무의식적 행동으로 구현되는 삶이다. 지금 우리에겐 연대의식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모든것이 나와 별개가 아닌 끈으로 연결된 나의 일부라는 마음만이 앞으로의 희망이다.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들뢰즈/카타리 가 말한 리좀(나무 뿌리와 같은 구조, 모두 얽히고 섥힌) 과 같은 것이라 한다. 그 시대정신,사조의 사회적,개인적 발현은 연대의식, 연대감으로 정의하고 싶다. '나' 란 것이 고작 이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라는게 우습지 않을까? 우주와도 같은 마음은 만물을 나로 만들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끔직히 여기는 마음은 타인에게도 동등할 것이다.

 내 지적 허영은 추운 겨울날의 삶의 리얼함에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붕어빵은 맛있었다. 나는 충분히 느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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