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친구가 호프집에서 맥주마시며 한일전 축구를 보자는 제안을 마다하고 퇴근시간 차가 막히기 전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어두워지기 전에 비를 맞으며 달리기를 하고 싶어서 였다. 친구가 이 글을 본다면 몇 번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참 지지리 궁상떠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 할 듯 싶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가 오늘 같이 기온은 낮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바람이 적당이 부는 날씨와, 비에 젖은 운동장의 흙은 폭신거리고 한 명의 사람도 없는 적막함이 최상의 조건이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맑고 시원하며, 풀 냄새와 약간은 비릿한 비내음도 좋다. 폐 깊숙히 호홉은 깊어지고 무릎의 충격은 비에 젖은 폭신한 흙에 완화되어 평소보다 더욱 많이 뛴다. 땀과 비가 엉키고 눈으로 스며드는 빗물과 눈에서 나오는 땀은 비,땀.눈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비오는날 달리기의 즐거움은 흠뻑 젖었을때, 이제는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말리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부정과 긍정의 대비에서 오는 희망이 또 다른 자극을 준다.

 요즘들어 비가 자주 오는데, 이제는 비오는 날이 너무 싫다. 예전과는 정 반대가 되버렸다. 어느새인지도 모르게 비가 오면 마음이 급격히 가라앉는다. 몸이 어딘가 쑤시고 시큰시큰하고 그러진 않지만 마음이 가라앉으니 몸 또한 축축하니 무거운 느낌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비틀즈 보다 비치 보이스가 더 좋아라 한다. 대중음악역사에서 천재중의 천재라는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의 진가를 최근에서야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계속오니, 런던에 산다면 우울한 음악만 듣고, 만들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쪽 음악이 감성적으로 더욱 다운된 것도 날씨 탓이 크리라. 오늘 같은 날 브리스톨 출신의 Potishead 의 음악은 절대금물이다. 비오는날 달리기의 즐거움을 빼면 차라리 사막이 그립다. 

 집으로 들어오는 찻길위에 택배박스 몇개가 떨어져 와해되어 내용물이 널부러져 있는걸 보았다. 운전중이라 짧은 순간 지나쳐 본 것이지만, 왠지 되게 슬퍼보였다. 전달 되지 않은 상품의 운명. 도로위의 위험인자가 되버린 기구함. 수신인의 기다림. 발신인 과의 분쟁. 또다른 사고? 분명. 지방 국도에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사체보다 더 드라마틱 하고 슬펐다. 도로에 널부려진 택배 박스 잠깐 보고 이런 생각 하는 내가 이상한건가.. 되게 사진적이고 시적인 장면이었기에.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또 막히는 서부간선도로 이동가판대의 나이든 노부부의 웃는 모습도 눈을 꿈벅하며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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