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랬만에 쓰는 산행일기이다. 지난주에 두번의 산행이 있었다. 화요일에는 아침에 조치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내려간 김에 계룡산 종주를 하고 왔다. 그리고 어제는 가칭 낭만고급산악회의 가벼운 관악산 등산을 했었다.

 예전처럼 산을 가는 횟수가 정기적이지 않아서, 요즘은 자주는 안 가지만 한 번 가면 오래 놀고 오는 편이다. 단순히 한 봉우리 올라갔다 오는 것보단 여러 봉우리를 거쳐서 내려오는 종주 산행 코스를 즐긴다. 코스를 계획하고 그 코스의 지점들을 하나씩 밟아 가면서, 멀리 굽이굽이 보였던 정상 봉우리에 마침내 오르는 것이 등산에서의 더욱 큰 성취감을 준다.

 계룡산은 동학사를 통해서 정상인 관음봉을 오르는 코스가 제일 일반적인데 계룡산의 끝을 볼 요량으로 장군봉에서 관음봉을 연결하는 능선길을 목표로 했다. 처음가는 길은 설레임과 호기심이 충만하지만 약간의 두려움도 같이 따라간다. 그러나 오전에 시작하자 마자 두려움이 앞섰다. 왜냐하면 물을 안 가져왔기 때문이다. 시작하고 40분 만에 첫 봉우리인 장군봉에 올랐을때. 선택했어야 했다. 그냥 능선 종주 포기하느냐, 아직은 목이 마르지 않지만 능선길엔 약수터도 없고, 인적이 드문 길이라 사람도 만나기 어려울텐데 어쨋든 그냥 가느냐를 잠시 동안 고민했다.
 등산이란게 묘한게 처음에 귀찮고 힘들어도 일단 시작만 하면 결국 높은 곳에 올라서게 한다. 중간에 자그만 난관과 포기의 유혹이 있을지라도,결국 높던 낮던간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에 서서,잠시나마 자기 자신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당시 목마름이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그리고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서 흥분된 기분으로 저 멀리 굽이쳐 보이는 관음봉 정상을 보니 그냥 내려갈 수 가 없었다.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긴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길은 예상했던 대로 사람도 없고, 적당히 험난했다. 물 걱정 때문에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이생각 저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내가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이 2009년의 산속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온 듯한 상상에 빠졌다. 내 신발과 티셔츠와 반바지만 빼면 공간과 시간은 내 상상대로의, 마음이었다. 조선시대 첩 10명정도를 둔 선비를 상상하면서..ㅎ 너무 상상이 소박했나..산길을 걷는 것은 역사의 향기를 느끼며 걷는 것이다. 사람이야 고작 80년 살고 오고 가고 하지만 이 산은 이 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인간의 삶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숨결이 내게 미친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직 사람은 안 보이고 해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높아져 갈증이 심해졌다. 내 몸속의 세포들은 물을 달라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느 바위 위에 털퍼덕 주저 앉았다. 숨을 고르다 요 앞 바위에 고인 물이 보였다. 오늘 아침까지,이 충정도 지역에 내린 비였다. 냄새를 맡아보고 먼지와 조그만 날 벌레들을 제거하고, 입을 박고 두 모금 마셨다. 이온음료 광고 그래픽 처럼 물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마자 온 몸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 두 모금의 물은 강렬했다. 그 고인물을 보면서 원효대사의 일화 ( 해골바가지 물 ) 도 생각났고, 무엇보다도 사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 그 바위에 고인물의 사진을 찍는다면 그 사진을 통해서 이 마음이 전달될까. 타인이 보기에 그 사진은 단지 바위에 고인물 뿐일텐데..어떻게 하면 그 마음이 사진을 통해 표현이 될까. 사진은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답은 모른다. 단지 의문만 가질뿐..

 한참을 더 걸었을때 이제는 갈증도 있고 배고픔도 있었다. 새벽에 산 맥도날드  에그멕머핀을 한입 베어 먹었지만 입속에 침이 적어 넘기기가 힘들었다. 다시 꾸깃꾸깃 싸서 집어넣고 다시 걸었다. 다행히도 곧 저 아래 갈림길의 작은 의자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며 보이는 작은 생수통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2/3 정도가 남아있었고 그 75세 정도의 노인은 쉬면서 마시고 있었다. 아 이제 안심이다라고 생각하며, 가서 정중히 부탁했다. 물이 많지 않았기에 딱 한 모금만 마셨다. 그 노인은 내가, 자기가 젊었을때 알던 사람과 너무 닮았다고 했다. 순간 나는 그 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라고 물어볼뻔 했다. 나는 물을 얻었고 그 노인은 내 얼굴을 보면서 회환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내 머리가 삭발하고 그냥 막 자란 새집 지붕같은 촌시런 모양새라 더욱 옛 사람과 닮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산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마치고 다시 갈길을 갔다.

 곧 남매탑이란데에 도착했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며 약숫터를 찾았다. 물을 연거푸 네 바가지를 마시고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암자에 오래된 탑이 두개 세워졌고 아주 고즈넉한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남매탑이란 이름도 궁금해서 게시판의 간단히 적힌 유래를 읽어보았다. 다른 어떤 문화유적지의 게시판 글 보다 월등히 이야기적 이었다. 보통의 문화유적지의 설명글들은 대개 너무 건조한 문체에 짧고 딱딱한 설명글이 전부인데 이 남매탑은 전래동화를 읽고 마음속으로 상상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이 남매탑의 전설은 *이성에 대한 욕망을 넘어서는 구도의 삶이 전해주는 경이, 그리고 그 삶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개재했을 인간적 갈등에 대한 상념이 이 전설의 화두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궁금하시면 더 알아보시길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물을 배불리 먹고 남아있던 에그맥머핀을 먹고나서 기름에 튀긴 동그런 감자 스낵을 먹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주기적으로 배가 살살 아파왔다. 이제는 산길에 사람도 많아졌고, 참 불안했다. 별다른 사색을 할 겨름도 없이 심호홉에 집중하면서 결국 목적지인 관음봉 정상에 올랐다. 정상의 바위에서 신발을 벗고 뜨근히 달아오른 바위에 몸을 뉘였다. 축축한 티셔츠에 젖은 배를 위로 드러내고 누워있으니 배 아픔이 서서히 가셨다. 계룡산은 기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남한 국토의 기가 센 곳으로 삼위안데 든다. 그래서 그런지 도인 점술가. 신내린 무당들 등등.. 기인 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나 또한 나름 기 충전을 했다. 왠지 기분상으로 신선이 된 느낌이다.

 다른 등산객의 커피와 물을 얻어먹고, 잠깐 담소를 나누고나서, 조치원에서의 저녁 약속을 잡고 동학사 쪽으로 내려왔다. 정상에서 말벌이 달려들어 좀 호돌갑을 떨었는데,내려오다 보니까 말벌이 잠자리를 잡아먹는 광경을 봤는데 정말 살벌했다. 자연의 이치라지만 잠자리가 너무 처절해서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말벌의 공격에서 벗어난게 심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느정도 내려오면 동학사가 있다. 이 동학사의 이름은 내 이름과 같다. 東學. 이 동학사는 경전을 배우는 강원으로써 가장 유명하다. 조선 후기 조선의 배불정책으로 불교가 거의 말살되었을때. 다시 이땅에 불교를 부흥시킨 유명한 선사가 있었는데, 그 경허스님이 젊었을때 이 동학사에서 유명한 강사 였다. 경허스님은 신라의 파계승이라 불리우는 원효대사 이후로 가장 독특한 행보의 스님이었고, 근 현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최인호의 소설 [ 길 없는 길 ] 이란 소설이 이 경허스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청 재밌고 유익하다. 그 당시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청계산의 청계사나 수덕사, 동학사 등등 절들이 새롭게 역사의 장으로 느껴질 것이다.
 경허의 숨결을 느끼며 준비해온 100피트 필름 깡통에 동학사의 흙을 담았다. 내 방에 키우는 대구에서 선물받은 산스베리아가 시들시들해지는데 새로운 흙을 보충해줘서 원기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번거로운 수고를 마다했다. 
 동학사의 풍수지리도 공부가 잘 되는 곳이고, 내 이름이 동학이고, 내 팔자또한 공부의 길 이란다. 아버지는 내가 교수가 되었음 하고 배울학 자를 쓰셨단다. 내 화분에 동학사의 흙이 의미심장하다.

밤 늦게 올라오는 조치원 천안간 1번 국도는 미국에서의 운전을 떠올리게 한다. 가로등 없이 한없이 컴컴한 그 먹먹함이..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사라지는듯 하다.

 이렇게 고독한 산행 말고 이제는,  어제처럼 여럿이서 동행하는 산행이 좋다. 가칭 낭만고급산악회인데 계속 수정중이다. 어제는 여성회원이 참여해서 음담이 줄었다 ㅋ . 좋은 발전이다.  입심좋은 선배님이 계셔서 무척 재미있다. 관심있으면 참여바란다.

* 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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