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서 안경은 신체의 일부 같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안 쓰는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에 고착화되었다. 벤야민이 말한 도구로써의 신체의 연장에 있어서 정확히 들어맞는다. 광학기술의 발달로 나처럼 고 난시인 사람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심지어 라식이다, 라섹이다.. 등등 첨단 기술이 존재하는걸 보면, 안경을 쓴다는 것은 꽤 복고적인 신체의 연장인 셈이다.
 
 그 동안 쓰던 남대문 묻지마 브랜드 안경은 정말 명품이었다.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안경이었을듯 싶다. 착용감과 내구성. 적당히 인정받는 디자인. 저렴한 가격등, 6년을 사용한 지금 시점에서도 하등 바꿀 이유가 전혀 없는, 진정한 의미의 명품이었다. 이걸 구입할때도 남대문 등지의 여러 안경점들을 돌아보다가 예정된 만남처럼 손길이 닿았다. 수많은 안경들 속에서 내가 선택한 유일한 것이니, 또한 내 신체의 일부 이니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내가 맘에 들어하는 안경은 거의 수입품인 비싼 테 인데, 이 녀석은 국산테 중에서 군계일학 같은 것 이었다. 


 눈이 나빠지진 않았지만 계속 책을 많이 보고 시각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새로운 렌즈에 대한 욕구가 일어났다. 그리고 유투브에서 본 내가 매우 좋아하는 뮤지션 스티븐 말크머스(Stephen Malkmus)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 아주 멋진 투 브릿지의 클래식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뮤지션들을 동경하는 나로써는 그들의 음악스타일 뿐만 아니라 패션 스타일도 흠모의 대상이다. 충무로에 현상 맡기로 나간김에 남대문 안경집들에서 그와 똑같거나 비슷한 것을 찾아 보았다. 없다. 비슷한 스타일 조차 없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금속 테 가격이 매우 높았다. 그나마 맘에 드는 수입 브랜드 테들은 20~30 만원 대였다. 국산 테 도 디자인 그나마 좋은것은 10만원 언저리였다. 말 그대로 Eye 쇼핑의 연속이었다.

 6년 전과 비슷하게 운명적으로 저렴한 명품을 만날것인가. 그것을 기대하며 명동쪽으로 넘어왔다. 분명 우리가 흔이 아는 럭셔리 브랜드의 테 들이 멋지긴 하다. 하지만 가격이 정말..아니올시다 이다. 수많은 공산품중에 가격의 거품이 심한 것중에 하나가 안경테 이다. 전자 제품도, 손이 많이 가는 핸드메이드도 아닌것이 참 비싸다. 그러나 어쩌랴..내가 만들어 쓰지 않은 이상 시장상황에 동조할 수밖에.. 

 명동으로 가는 길목에 파란색 간판의 다비치 안경점에 들어갔다. 마음을 비우고 사진을 찍듯이 내 시선에 들어오는 안경테가 있나 찾아보았다. 2층까지 다 구경한 끝에 내 감각의 레이다망에 2개가 올려졌다. 프라다의 제품이었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 18 이었다. 가격을 떠나서 독특하고, 무광 은테가 고급스러웠다. 확 꽂힌건 아니지만 썬그라스가 아닌이상 이런 디자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걸 그동안 안경점들을 다니면서 알고 있었다. 착용감도 좋았고 평범한 내 인상에 조금의 개성을 가미할 수 있었다. 원했던 스티븐 말크머스의 투 브릿지의 클래식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비교적 유일무이한 가치가 있었다. 
 가격협상을 하는데. 자기네는 정찰제라고 도저히 안 깍아줬다. 여러가지로 구슬려 봤지만 쉽지 않았다. 렌즈에서 가격을 깍았고 드럼캣 공연 티켓 2장을 받았다. 장당 4~5만 선이니, 그리 나쁘진 않다고 자위했다. 

 난생 처음 써보는 럭셔리 브랜드 안경테를 어제 받아보고 생각했다. 내 얼굴이 명품이 아닌데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사치로써가 아니라 내면의 기로 현현되는 명품을 만들어가야한다. 그렇다면 내 얼굴과 안경또한 진정한 명품이 될 것이다. 

 아직 내 얼굴에 익숙히 녹아들지 않았지만 곧 신체화 될 것이다. 그리고 기존 안경과 번갈아 가면서 쓸 수 있게 렌즈의 중심이 일치한다. 그것이 꽤 맘에 든다. 기존 안경을, 새 안경을 샀다는 이유로 헌신짝 버리듯 외면하지않아도 되기 때문에.. 명동을 걸으면서 혼탁한 세상을 투명한 눈으로 꿰뚫어 보았다. 앤드류 니콜 감독의 명작영화 ' 가타카 ' 가 생각났다. 내 눈은 분명 우울하게도 열성이다. 하지만 마음의 눈은 우성일듯 싶다 ㅎ .내 안의 열성인자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다짐하며 오늘도 안경을 통해 열심이 본다. 마음으로 체득되고 눈으로 현현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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