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계 올림픽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그래도 쇼트트랙 여자 계주 금메달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심석희가 첫 은메달을 땄을 때만 해도, 나는 쇼트트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마음에 있어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그건 꼼수트랙 이고, 스케이팅의 진수, 아니 동계 올림픽의 진정한 꽃은 스피드 스케이팅 이라고 말이다. 


 대회 초반에 역시나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 선수가 올림픽 2연패의 금자탑을 세웠고, 4년전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이상화 선수의 터질듯한 허벅지의 힘찬 질주에 감탄해 어떤 글을 썼던 기억이 났다. 피니쉬 라인을 통과한 후, 허리 굽혀 상체를 떨구고 가쁜 숨을 고르는 스케이트 선수들의 모습엔, 우리가 바람을 볼 수 없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어린 아름다운 순간인지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동계 올림픽의 도박판 같은 짜릿함은 쇼트트랙에서 나온다. 이런 경쟁의 쥐어짜듯 아슬아슬함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대다수 겠지만, 나는 현실의 아둥바둥함을 꼭 빼다 닮은듯한 쇼트트랙 경기가 내심 불안감을 심어 주었다. 좁은 곳에서의 자리싸움, 교묘한 방해 동작, 실력 만이 아닌 운의 작용. 전략 혹은 계략의 치열함이 난무하는 쇼트트랙 경기는 진정한 스포츠맨쉽 보다는 현실사회의 반영이란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든 것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처럼 자기를 극해서 얻은 실력만이 다가 아닌 점.이 특히나 우리나라 사회의 반영인 것 같고, 그런 변수와 아둥바둥함에서 우리나라가 쇼트트랙 강국이고, 코치진을 수출하는 나라이자, 그 안으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리라 본다.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수두룩 따는 효자 종목인 만큼, 선수 주변에서 극심하게 횡횡 하는 이기심 들이, 겉잡을수 없는 파행으로 치달아 결국, 뛰어난 선수들과 스포츠의 본질을 망각하여 투전판으로 전락한 소식들을 스포츠 뉴스의 짦막한 단신 뉴스로 우리는 접해야 했다. 일반인들에겐 금메달을 아무리 딴다 해도, 스포츠 정신보다는 더러운 정치판과 다름 없이 느껴질 뿐이었다. 불쌍한 것은 그럼에도 땀흘리며 연습을 하고 어찌됐던 세계 대회에서 꾸준히 메달을 따내는 선수들이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못된 구석이 많다는. 민족의 특성에 장점도 많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속담이 있듯이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봐준다. 그렇게 세기의 쇼트트랙 천재 안현수 와 진선유는 파벌, 왕따의 피해로 다른나라로 귀화했거나 이른 은퇴의 길을 갔다.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있는 선수를 경계하고 깍아내리는 온갖 행위들이 난무했을 정치적 이기심은 안현수의 일로 도마위에 올랐다. 예전에 스포츠 뉴스에서 짧게 안현수 아버지와 다른이들이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가 러시아 대표로 금메달 3개를 따면서 빙산연맹과 쇼트트랙의 파벌문제에 성토가 빗발친다. 나 또한 그런 일환에서 알게된 안현수의 귀화 배경의 몇몇 다큐멘터리와 인터뷰를 찾아 보면서 너무도 안쓰럽고 답답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가장 나쁜 기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 금메달 경기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김연아나 이상화의 경기 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단체전의 총력은 그야말로 국가를 대표하는 희열이 있었다. 사실 이 경기를 보기 이전과 이후로 올림픽 대회와 쇼트트랙 경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가장한 현대 정치, 국가 체제의 교묘한 속내는 히틀러 시대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나 전두환 시대에 결정된 1988 서울 올림픽의 경우를 보더라도 알 수 있고, 냉전시대의 미.소 양국의 올림픽은 또 어땠는가. 더 앞으로 나아가서, 근대 스포츠는 잃어버린 자연. 육체에 대한 복고주의 향수 아닌가. 국가의 미명아래 행해지는 개인 육체에 대한 초탈. 

 스포츠에 대한 비판적 식견은 사실, 내가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 얻은 경험과 '달리기와 존재하기' 란 책을 읽고 인식이 바뀌었다. 이 책을 쓴 조지 쉬언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운동 철학자란 말 그대로 운동의 의미를 몸이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게 했다. 그리고 계속 말하게 되는 여자 계주 금메달 경기. 

 사실 이 글의 요지는 '조해리 선수 너무 예뻐요'가 본래 의도다. 경기후 방송 인터뷰에서 잠시 감정에 북받혀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에 왠지 가슴이 아렸다. 진정성. 선한 인상에 숨겨진 고생의 흔적들이 비춰졌다. 이런 호기심은 조해리 선수의 여러 인터뷰와 글들을 보면서 첫인상에 직감했던 그대로였다. 금메달의 감동은 맏언니 조혜리 선수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수록 더욱 뭉클해졌다. 

 

 아주 간략히 이야기 하자면, 10대 때부터 기량이 탑 이었는데, 첫 올림픽은 바뀐 나이 규정 때문에 28일 차이로 출전이 무산됐고, 다음 올림픽은 20대 초반이었는데, 부상 때문에 출전 못했다. 이때, 슬럼프와 우울증에 자살 사이트 까지 가입해 봤다고 한다. 조해리 선수에 대해선 파벌 문제가 언급되지 않는데, 안현수와 같은 코치 밑에서 있었다고 하니, 왠지 의구심이 들긴 한다. 다른 동료들이 메달을 따고 돌아오면서 내심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다음 대회인 밴쿠버 올림픽에선 계주 금메달을 따고도 이해못할 판정으로 실격당했다. 이 때 분통한 기억이 나는데, 결국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선수들의 면면을 볼 수 없었고, 김연아의 피겨 금메달의 환호에 묻혀 곧 잊혀져 갔다. 그렇게 해서 이번 대회,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환갑의 나이라는 29살에 드디어 금메달을 딴 것이다. 심석희를 비롯한 나이 어린 선수들이 잘 했기도 하지만, 최고참인 조해리의 역할이 제일 눈에 띈다. 개인전에서도 후배를 위해 커버해 주는 모습이나, 눈물 지으며 격려하는 장면들. 정말 아름답다. 그녀가 개인전에도 욕심을 내서 메달을 하나 더 땄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인터뷰를 보고 들으면서 쇼트트랙에 대한 표피적인 선입견이 없어졌다. 예리한 칼날 위에 속도와 지구력 싸움은 첨예한 위험 속에 부상을 달고 사는 것 이었다. 그렇게 앳되고 이쁜 선수들의 몸은 훈련의 고통으로 매일 만신창이가 되는 모양이다. 운동에만 매진하기에도 벅찰텐데 꼭 당사자가 아니라도, 파벌로 인한 근심과 이미지 추락은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안현수의 인터뷰를 보면 조심스레 기죽어 말하는 모양새가 안쓰럽다.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더라도 그의 표정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심적 고통이 많았을지 느껴진다. 그렇게 8년만에 다시 3관왕이 됐다는게 정말 기쁘다. 국적을 떠나서, 한 인간 승리의 감동 이었다. 안현수에서 빅토르 안으로 바뀌는, 마지막 공항 출국장에서 가족과 헤어지는 의미 심장한 영상이 뇌리에 남는다. 그가 금메달을 따고 환호할 때나, 조해리가 눈물을 지을 때, 다시 봐도 뭉클 하다. 


 이규혁 선수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평창에선 빅토르 안이나, 조해리, 이상화를 볼 수 있을까. 이상화는 나이가 그래도 어리니 3연패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 감동을 이어서 꼭 쇼트트랙 경기장을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실업팀 경기도 있고, 빙상 경기 대회를 관람해 보리라. 조해리 선수에게 싸인 받고 싶다..ㅎㅎ 


 조해리 선수 트위터 에서 나머지 사진은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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