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를 중학생으로 맞이한 동시대인 에겐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기억은 행운이다. 아마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였을 그를 우리는 정말 좋은 시기에 누렸다. 축구 황제 펠레.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골프의 타이거 우즈. 등도 마이클 조던의 위업과 예술적 경지에는 못 미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아마 현재는 바로셀로나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마이클 조던 처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는 농구의 신 이었고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는 교인 이었다. 공간을 휘젓는 전지 전능한 경지. 인간 신체 움직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등은 그 당시 내 인생 처음으로  본 포르노의 충격과 맞먹었다. 단지 마이클 조던의 아름다운 충격은 고등학교때 까지 계속 이어졌었다. 뽀르노는 그 후 야동이란 이름으로 오양 비디오로 다시 한번 충격을 겪게 되었을 거다.

 고 1 때. 한 친구가 기억이 난다. 이름은 현영. 얼굴은 나보다 더 하앻다(?). 그는 여자에는 관심없었고 오직 음악듣기에만 몰두했었다. 그와 나는 팝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친해졌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매일 듣는 애들이 한반에 한 5명 정도 됐었다. 그중에 Guns N' Roses 의 보컬 액슬 로즈 (Axl Rose) 를 유독 좋아했던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공동의 우상을 간직했던 우리는 곧 머지않아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조국이 남 북으로 분열 되더니 6.25가 터지는 비극을 겪게 된다. 적어도 그 친구의 섬세한 내면에선 그랬을 것이다.

 나는 건스 앤 로지스 와 동시에 그 당시 최신 음악인. 그런지 / 얼터너티브 ( 너바나, 라디오헤드. 스매싱 펌킨스 ) 등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고, 그 친구는 메탈리카를 정점으로 헤비메탈 / 트래쉬 메탈 / 데쓰 메탈 ( 슬레이어, 세풀투라..등 ) 에 중독되고  있었다. 그가 자주 들어보라고 건네는 워크맨의 이어폰은 공포였다. 왜냐면 슬레이어나 세풀투라 (기억은 안 나지만  더 한 밴드도 많았다) 의 음악을 들어보시라 록음악 좋아하는 나 로써도 충격과 무서움 이었다. 극단적인 소리로 공포를 자아낼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에게 메탈리카는 신 이었다. 메탈리카도 Trash 메탈의 범주 이지만 그 즈음에 발표한 그들의 5집 음반은 아주 대중적인, 록 음악 역사에 남을 명반이었다. ( 엔터 샌드맨. 넛띵 엘스 매러, 언포기븐 등은 이제는 메탈 음악의 고전이다.)
 메탈리카의 그 음반이 아무리 명반이었다 해도 나는 절대 헤비메탈 키드는 아니었다. 내게 맞는 범주는 펑크, 뉴웨이브, 아방가르드, 얼터너티브 같이 정통에서 어긋난 탐미적인 비주류의 감성이었다. 그 친구에겐 내가 마치 해방 이후 양키 들에 힘없이 겁탈당하는 양공주? 같았을 것이다. 반면 그 친구는 레닌 (메탈리카) 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모시고 스탈린 (슬레이어,세풀투라) 이라는 폭압적 헤비메탈 주체사상에 경도 되었다.
 서서히 음악적 취향의 골이 깊어 질수록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했던 건스 앤 로지스의 예찬이 극에 달했다. 지구상 최고의 밴드라고..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액슬 로즈와 기타리스트 슬래쉬는 우리에게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였다.

 제 2 외국어가 스페인어라 돌구르듯이 R~R~R~R~R~을 재미나게 연습하던 차에 주변의 곳곳에서 마이클 조던 이야기와 고작 비키니 입은 구겨진 사진의 잡지를 헐떡대며 넘기는 소리들. 성경험의 진보주의자가 워크맨으로 녹음한 야릇한 카셋트 테이프가 재생되는 소리. ( 나는 이런 괴짜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미디어 아트, 사운드아트의 선구자이다. 너무 날 것 이었지만 말이다. ) 그 시절 내 책상 속엔 아마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과 소설 여명의 눈동자의 야한 부분만 너덜거리며 있었을 것이다.

 친구 현영이가 메탈리카와 마이클 조던 중에 누가 더 유명하냐 라는 질문을 아해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해들의 답변은 당연히 마이클 조던이었지. 현영이는 속이 상했는지 그 유치한 질문은 더 노골적으로 되었다. "메탈리카와 마이클 조던 누가 더 유명해? 엄창?"  이런! 그래도 내 책상속엔 도서관서 빌린 사람의 아들이 있었는데.. 메탈리카를 신으로 모시는 그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거북이가 토끼보다 빠르다고 우기는 꼴이었다. 결국 그 질문은 나에게 까지 왔다. 현영이의 메탈리카 사랑은 10전 전패였다. 현영이에겐 내가 마지막 보루 였다. 한 명이라도 메탈리카에 손을 들어주면 그의 독실한 신앙심의 상처는 회복되었다. 현영이는 학창시절 빼동 이라 불리는 나의 애칭을 버리고 정색하며 동학이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나랑 생각이 같을 거야 하면서 다시 그 유치한 질문을 했다. 나는 진지한척 정확하게 질문을 되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마이클 조던과 메탈리카 중에 누가 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알까? 이지.." 응!. 열명 정도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내 답변을 들은 그는 원래 하얀 얼굴은 더 하얘졌고 눈에는 분해서 살짝 물방울이 맺혔다. 땀이 아니라 눈물이었겠지. 그 순간 현영이에겐 6.25의 발발이었고,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금방 울것 같은 그 얼굴. 유치하지만 순수했던 열정이 사뭇친다. 여태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결과와 내 주관이 중요한게 아닌데 말이다.

 메탈리카를 인정 안 한 나는 커트 코베인을 지주로 모시고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현영이는 메탈리카는 자장가 였을 정도로 더 극단적인 메탈에 빠져들었다. 그 때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가 어느 대학을 갔는지 모르겠지만 검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액슬 로즈 흉내내며 노래 불렀을거 같은 모습이 눈에 훤하다. 하얀 얼굴에 눈물이 맺혔던 그 모습도.. 

 다음 노래는 다들 보통 대학 축제때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노래 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보컬 액슬 로즈와 정말 아름다운 기타 소리와 연주를 들려주는 슬래쉬. 이것은 난폭한 액슬 로즈가 사랑에 빠져 만든 노래란다.
 Guns N' Roses _Sweet child O' mine 1992 일본 도쿄돔 라이브. 같은 시각 도쿄 어디가에서 너바나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는데. 역사의 변곡점 이었구나. 요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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