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마지막날, 고요한 동네의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에서 일주일 전의 짧은 여행을 기억해본다. 내게 있어서 여행의 목적이라 함은, 거창하게 말한다면 삶에의 입지(뜻을 세움)을 의미한다. 일상에 찌들어서 내 본질을 망각해온 시간들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 넌 어떻게 살꺼야? 라고 또다른 자아의 내가 다그치듯 물어보는 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혼란속에서 어떤 끄트머리를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수긍하고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고자하는 다짐에 기반되었다. 씩씩한 발걸음의 즐거운 의지였다.

 여행의 진정한 백미는 짐을 꾸려 대문밖을 나서는 순간인가? 돌아올 기약없이 떠난다면 출가 이겠지만 몇일 후 다시 이 대문으로 들어올 나는 여행의 백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1년만에 메는 대형배낭은 무게가 적응이 안되어 가슴을 조였지만 탄탄한 다리는 내가 걸을 길의 즐거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역곡역에서 중고 전자사전을 거래하고 공항으로 바로 향했다. 덕분에 배낭의 무게는 조금 증가했지만, 왠지 전자사전 절반의 내용을 이미 안 듯한 즐거운 착각에 기분이 좋았다. 나와 코드로 연결돼 데이터 전송하듯이 쭉 정보가 금새 흘러들어올 우수운 상상을 하면서 공항에 도착해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2년전 MT로 제주도를 갈때, 엊그제 같은 기억에, 그 때 가지못해 아쉬웠던 한라산 등산을 목표로하는 여행이었다. 누구나 다 등산을 좋아하지않기에, 오히려 혼자가는 여행이 편하다. 제주도의 일반적인 관광지는 필요없었다. 제주도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햇살만이 내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그리고 애들같이 비행기를 타는 설레임만이..

 이스타항공의 비행기는 보잉 767-700 2발 제트 비행기 였다. 제주항공, 한성항공의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 보다가 우람한 제트 엔진을 보니 감격스러웠다. 이륙시에도 출력이 남아도는듯한 충분한 파워를 보여줬다. 비행기 이륙시, 활주로 출발선에 잠시 대기했다 관제탑의 이륙승인이 떨어진후 바로 엔진의 출력을 높여 양력에 의해 확 뜨는 그 순간이 너무 맘에 든다.
비행기에 있어선 최고의 노력의 순간인 것이다. 그 굉음과 바퀴가 지상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 인류역사의 경이의 순간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 육중한 쇳덩이가 하늘을 날다니..참 신기하다.

 앞에서 2번째줄 창가 좌석이었기 때문에 비행 한시간내내 창에 코를 박고 밖을 들여다 보았다. 오후의 맑은 날씨 였기 때문에 목동을 거쳐 신도림. 그리고 우리동네, 우리집까지 다 보였다. 완전 라이브 구글 어쓰 였다. 거대한 화석도시 속에서 관악산은 애처로워 보였다. 그래도 몇일전에 갔었던 관악산은 꽤 포근했었다. 하늘에서본 내 삶의 공간은 앙증맞았다. 후~ 하고 입바람을 불면 사라질것같은, 신기루같아 보였다. 지상에 발 닿아 있는 것들의 경이로움도 하늘에서 보기엔 다 헛되 보였다. 수원을 지나면서 구름속을 관통하는 비행기는 거친 망각의 호홉으로 몇번 덜컹되다가, 이내 구름위, 파란하늘을 부드러이 활공하고 있었다. 
 
이 비행기안에서의 실존은 나와 음료를 갖다주는 이쁜 스튜디어스였다. 기억은 안 나지만 올 때, 갈 때, 이스타 항공의 승무원들의 미모는 매우 괜찮았고, 또 친절했다. 역시 소비자 평가도 1위 다웠다. 사실 승무원들의 외모를 평가하는것은, 매우 외모지상주의의 남성적인 편협한 시각일수 있곘지만, 좁은공간에서 한정된 시간을 버티는 것은 그들의 밝고 이쁜 외모와 청량한 목소리일 뿐이다. 예전에 AA (어메리칸 에어라인)의 백인 아줌마, 혹은 할머니 스튜어디스의 씩씩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는 것은 적지않게 흐믓하다..ㅋ

 한 시간도 채 안 걸려 바다위에 제주도 땅이 보이니, 참 우리나라 국토가 작다는걸 다시 한번 느낀다. 그 거대하게 느껴졌던 지리산 산 자락도 두 주먹처럼 느껴진다. 착륙에 앞서 잠깐의 불온한 생각들이 스쳐간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부딪힌 비행기안의 사람들도 생각나고,삶과 죽음에 대한 가벼운 묵상속에 어느덧 덜컹 하며 지상에 발을 내린다. 역시 공기가 틀리다. 대한민국의 공기가 아니라 탐라국의 공기인듯, 마치 외국에 온 듯 하다. 배가 매우 고파, 바로 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를 타고 다시 월정리행 버스를 탔다. 50분간의 버스속에서 역시나 제주도민의 가족과의 전화통화를 들었는데, 한국말이 아닌것 같았다.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 다음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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