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과의 인연은 우연히, 느닷없이 찾아온다. 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로, 우연과 필연의 연속 속에서 우리 삶은 이어간다.. 자신이 평생 만나게 될 수많은 작품에서 현재 내게 마음을 움직이는 이 영화와의 인연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좋은 책과 음악. 영화. 시..특히 사람. 은 특별한 인과가 된다. 그 소중한 인연들을 헛투로 흘려 보내지 말고 가슴속에 잠시나마 품고 자신의 삶을 음미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삶이 충만해지고. 좀 더 나은 인간으로써의 발전 의지가 생긴다.

 새로 알게된 사람들과의 거침없는 수다속에서 '첫키스만 50번째' 라는 영화를 언급하며 코미디 영화 지만 너무 슬픈 영화 라고 내가 말했고, 곧 누가 기억상실증에 연관되는 이 일본 영화를 소개해주었다. 잊지 않으려고 종이에 메모를 해 두었지만, 워낙 글씨가 악필에다 내 손의 영혼이 아랍인 이었는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잉크의 흔적에 해독을 못하고. 기억속의 음성으로 유추해 보고 있었다. 박사가~ 그렇다. 굳이 메모를 하려 했던 노력은 악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반성해야 한다. 내가 쓴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 행위의 인과는 끊어졌다.

 일본 영화는 딱히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접하는 일본 영화들은 대부분이 수작이다. 이 영화와 함께. '굿'바이' 라는 영화가 최근에 본 일본영화중에 정말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영화는 한국영화와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 영화의 수준.작품성 문제가 아니라.. 내밀한 감성.이야기의 밀도.연출의 템포.등등이..한국영화와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영화의 경우.. 보통..이야기가 강렬하고. 쎈편이라면..일본영화는 잔잔한 이야기 속에 아기자기한 감성들이 녹아있다. 영상도. 한국영화는 강한 반면..일본영화는 수수하고 부드러운 면이 있다. 물론 이런 비교가 매우 단편적인 시선에서 비롯됬다는 건 안다. '러브 레터' 이후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일본영화는 대다수 이런 정형을 가진 영화들이니..'배틀 로얄'이나..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들.. 한국계 최홍일 감독의 '삐와 뼈' 등은. 또 그렇지도 않으니..

 위에 말한 영화들 다 좋아하지만.. 현재의 내 취향은 이런 잔잔한 드라마 들이 좋다. 전세계 영화 예술계의 거장중에는 항상 일본 감독들의 이름이 있다. 스필버그나, 루카스 가 좋아하는 구로자와 아키라. 오스 야스지로 등등이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미 거장이고...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음..임권택? 100편의 영화를 감독한.? 아예 허접 영화들만 만든 감독이라고 욕하는게 낫다..이창동, 김기덕..박찬욱, 봉준호 정도가 앞으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되겠지..

 이런 일본 드라마 영화의 전통에는 오스 야스지로의 명작 '동경 이야기' 가 깔려있는것 같다. 본지가 오래 되어서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칭송받는지를 조금은 느꼈었다. 별다른 이야기도 별다른 움직임도 없는 정적인 카메라 속에서 가족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영화 였는데. 묘하게도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다. 일본만의 특유의..미학이 있었다.
그 후 일본영화들을 보면 조금씩은 이 설명하기 힘든..'동경 이야기'의 미학이 숨어 있다고 느낀다. 

 이 영화 또한 단순하고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수에 관한 삶의 철학이 펼쳐진다. 독특한 소재이자. 향수를 자극하는 힘이 있다. 

 루트 라 불리는 수학 선생님의 첫 학기..첫 수업 시간..자신이 왜 루트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영화의 주는 선생의 이야기 즉..플래쉬 백.. 그리고 중간 중간..현재의 수업..  매우 흥미 진진하다. 수학 수업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란, 감탄이 밀려온다. 영화속..박사님이 설명하는. 우애수..완전수..등 수에 닮긴 이야기들이 아름다웠다. 교양으로 다시 수학을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사실 수학을 너무 일찍 포기해서..수학적 논리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이번 기회에 정석 수학책을 다시 봐서..수능을 보고..한의학과에 가서..한의사가 되는 막연한 상상도 해보았다. ㅋ 

  생각해 보면. 교사의 역할이 매우 컷다고 여겨진다. 무사안일한 교사의 작태로 첫 호기심.흥미를 잃게 만드는 것은 치명적이라고 생각된다. (뭐 원래 수리적 두뇌가 발달 안 되었는데 괜한 심통일수도 있다.)  수학과 한문..또 뭐가 있지..고딩때는 스페인어..영어 ..다 아쉽다..

 기억을 매 80분 동안만 유지시킬수 있는 수학박사와 가정부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아들.(현.수학선생) 또 박사의 형수 인데..그들은 사랑하는(했던)사이.. 이 네 인물이 영화속에 얽혀들어간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자의 아픔.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형수)는 그의 삶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서 보는 애잔함이 있다. 그녀는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의 아픔. 그리움 속에서 그를 바라본다. 사고후 10년 동안, 그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고, 나날이 늙어가는 모습만 확인될 뿐이다. 그 사랑의 기억은 사고가 나기전. 일본 전통 공연? 을 본 이후로 멈춰섰다. 영화의 말미. 그 둘이 그 공연을 다시 보면서. 손을 맞잡은 모습은, 매우 아련하다. 과거의 사랑에 사로잡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의 형수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동안 놓지 않던 회상을 흘려 보내버림으로써..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위에 말한 이 부분은 영화의 주요 전개라기 보다. 숨은 감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억. 사랑과 삶에 대한 성찰이. 이 영화의 중심점이라 할수 있다. 영화 중간중간에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석양이 지는 강가에 선 형수의 모습은..삶에 관한 시적인 비유이다..영화 텐 미니츠 첼로 와 트럼펫 에서도..중간 중간 강물의 이미지가 삽입 되는데.. 감독의 의도는 이와도 흡사하다.
 헐리웃 영화 '첫키스만 50번째' 도 겉으로는 해피엔딩 처럼 끝나지만. 사실은 긴 인생으로 봤을땐. 대단한 슬픈 이야기의 영화였다. 매일 하루마다..기억이 완전히 없어지는 사람.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그들이 10년후면. 이 영화에서의 박사와 형수 처럼..되질 않을까 하는 씁슬함이 몰려왔었다. 그 당시에도..

 박사님의 기억은 80분..마다..리셋 된다. 그의 기억은..자신이 수학자.란 사실과..수학 지식.그리고 사랑한는 여인에 대한 기억 외로 다 잃어버리는 설정이다. 영화속 전개는._ 가정부와 그녀의 아들과의 이야기는 이런 개연성,연속성에 맞질 않지만. 이런점은 영화니까..라는 관대한 눈감음 으로, 좋은 이야기. 작품으로써 보상받는다.
 수학의 아름다움..수 로써 소통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시간은 흘러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문제를 잘 들여다 보면 리듬이 보인다..잔잔한 영화의 흐름속에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존재한다.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하기 힘들지만..병원에서 대기 하면서 들려준. 직선의 정의.. 그리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인. 오이러의 공식..글로 설명하긴 힘들지만..철학적인 깊이가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엔 윌리엄 브레이크의 싯구절..봄날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함께..이 영화는 향기롭다..

 역시 나는 수학. 수에 약하다. 이 글 또한 잡설이 많았고. 제대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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