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침상에 누우니 속에서 할배의 끄응~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참고로 산속의 저 세석대피소가 보기에 그럴싸해 산장이나 콘도로 생각하시면 절대 오산입니다. 세면실이나 취사장이 없고..단지 내 몸뚱아리 폭의 잘 공간과.. 재래식 화장실 밖에 없습니다. 땀에 쩔은 몸을 서로 냄새 풍겨가며 그저 누워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에 감지덕지 해야 하는 상황. 귀마개를 가져갔는데 정말 유용했다. 사람들이 부산거리는 9시에 누워 12시까지 내리 잤다. 의식이 드니, 산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고, 귀마개를 빼니 여기저기서 우렁창 코골이 소리. 다시 끼고 눈을 감으니 또 얼마간은 자고, 깜깜한 새벽. 사람들은 일출을 보기 위해. 부산하게 또다시 움직인다. 몸과 정신이 떨 깬 상태에서 옷을 입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길을 나선다. 바로 옆의 촛대봉으로부터 어둠이 깨이고. 나는 서둘러 일출을 맞이 하러 몸이 덜 풀렸음에도 부랴부랴 올랐다. 그 와중에. 뒤돌아 보니 하룻밤 묵은 세석대피소가 벌써 아득하다. 참 아름다운 장소에 있는 집이다. 




 8월 1일의 태양은 이렇게 떠올랐다. 여름의 한복판 태양은 어김없이 뜨거운 더위를 선사할것이다. 지금 이곳은 선선한 가을향취가 나는 바람이 불었지만 저 태양의 힘은 콘크리트의 도시에선 가공할 열기를 뿜어낼 것이다. 일출을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나.. 어떤 다짐이나 소원의 기도보다는 그냥 오늘은 더 이상 가기 싫다. 가 정확했다. 태양이 떠오르는 걸 한참 동안 앉아서 보았다. 시시각각 변화는 만물의 변화는 드라마틱했다. 검푸른 뿌연 띠가 태양에 의해 와해되며 밝은 빛으로 세상을 채우는 그 순간순간을 오롯이 만끽했다. 차가운 바람과 따듯한 태양. 어제의 최악의 자연환경과는 극과 극인. 어제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 했다. 




 햇빛이 쏟아지는 와중에 어느 아마추어 사진가는 잘 찍은 사진한장을 건져야 한다며 위험한 바위 위에 여친내지 여자동료를 위험한 곳에 세워놓고 무수히 셔터를 눌러댔다. 디지털의 폐해라고 생각된다. 막 눌르다. 하나 건진다는 심보.. 필름 시절에는 일단 적정 노출로 찍혔을까. 노심초사하며 셔터의 누름에 심사숙고해 지거늘.. 자신의 사진실력을 탓하기 보단, 모델에게 강압적 강요를 하면서, 사진 한장에 왜 그리 목메는지.. 사진은 이 공간의 느낌. 이 분위기를 기록으로 증거할 뿐이지.. 사진 자체로는 전달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며. 그때의 감각과 감흥을 환기하고, 소환하는 동기로써만 기능할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에 몸과 마음을 완벽히 자연과 동화시키는 자유를 누려보시라고..




 오늘 목적지였던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을 마주보며 사과를 베어 물었다. 그런데 멋들어진 철학적 상념보다는 왜 인사돌이 생각나는 거지.. 스티브 잡스도 아니고 말야. 베어문 사과 속살에 피가 안 묻어나니 내 잇몸은 건강하군..

 5키로만 더 가면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인데, 지금 여기가 너무 완벽히 좋아. 갈 생각이 안 들었다. 사람들이 이 촛대봉에 올라 왔다갔다, 사진찍고..금새 갈길을 가는 것을 보며, 오늘은 이만 그대로 내려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산은 맹목적으로 목표를 기어코 성취할려고 하기 보단. 그냥 즐기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냥 자연속에서 걷는 과정이 좋았다. 어젠 너무 힘들었지만. 오늘은 더 고생하면 정말로 산에 진절머리가 날 것 같다. 바위 위에서 허연 허벅지를 드러내고 뒹굴었다. 이 높은 곳에서의 일광욕은 덥지도 않고..따사로왔다. 




 해는 빠르게 대지를 비추고, 만물은 오늘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산에서 내려가면 오늘은 내게 어떤 선물의 시간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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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하루의 목적지인 세석평전(위사진)을 보기위해서 장장 14시간여를 악전고투속에 걸어왔다. 가운데 세석대피소와 평전이 펼쳐지자, 마음속에 기쁨의 희열과 안도가 뿜어져 나왔다. 3년전의 종주 경험 과는 천지차이인 이날의 산행은 최악의 산행기라고 각인될 것이다. 능선으로 부는 한점의 바람도 없이, 막 비가내리려고 후덥지근한 환상적인 습도가 마치 2차대전의 과달카날 섬에 끌려온 조선인 청년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벽소령..까지도 무척 길고 힘들게 느껴졌다. 3년전엔 이렇게 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그때도 힘들었지만,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는 경향 때문에 좋았다고 느끼는 건가.. 아니다. 분명 그때는 가을의 쌀쌀함이 능선을 타고 넘나들며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초심자에 대한 행운의 친절도 있었을 것이고, 나름 대비를 했었던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지리산을 얕봤다. 뭐, 세석 까지 하루에 갈 수 있겠는걸..  생각보다 널널하던데.. 하는 자만심이 문제였다. 


 습기에 미끌미끌해진 바위는 등산화의 접지력을 무마시켜 시도때도 없이 미끌어졌다. 아마도. 무릅과 발목의 힘이 풀어져 점점 다리가 제멋대로 휘청이고, 머리위에 분수대라도 달렸는지. 땀이 쉴새없이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배낭속에 든 식량이 고갈되면서 무게가 가벼워져야 하거늘, 더 무거워지는 것은, 땀이 배낭의 어깨와 등판의 패드에 스며들어, 전혀 가벼워지질 않았다. 그래서 고가의 배낭은 이런점을 개선시켜서 나오는 것인가..써보질 않았지만 왠지 비싼게, 장땡이구나. 라는 생각.


 연하천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발가락은 시퍼래져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이어 헬기가 이들을 찾으려 상공을 한참동안 선회했다. 남의 불운 속에 경각심이 정신을 깨웠다. 실족하면 안돼.. 산에서의 한 순간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간다. 


 벽소령 까지, 힘겨이 도착했다. 3년전에는 여기서 1박을 했는데, 4시간 정도의 길을 더 가야 한다. 근데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너무나도 힘겨워 했다. 바람한점 없는 날씨가 몇 배는 더 체력을 고갈 시켰다. 다시는 한여름에 이런 장거리 산행은 절대 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 벽소령 부터 세석 까지는 더욱.. 꽤 많이 걸을 것 같은데도.. 표지판에는 겨우. 0.6 키로 밖에 안 왔네.. 예전 같으면 이미 목적지 까지 다왔을 체력을 쏟았음에도. 채 절반도 못 오고, 아아.. 산신령님의 장난이 너무 심하시군요.. 그러다 다리에 힘이 다 풀릴 무렵, 오후 6시 반. 위 사진의 세석 평전이 펼쳐졌다. 땀을 너무 쏟아서..나올 눈물도 메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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