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다. 강좌의 절반이 지난 이 시점, 어젠 숙제검사를 받다가 선생님이 내가 대한민국이라도 된 양, '총체적 난국'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정한다. 아직 감도 못 잡고, 그냥 평소의 악필 습관대로 휘날리는 필치를 끄적댈 뿐이다. 근데, 오히려 점점. 오기도 생기고, 붓과 화선지와의 마찰과 먹물의 스며듬을 몸이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는 걸 안다. 아직은 밑바닥을 헤매지만 내 안에 명필의 가능성이 꿈틀댄다는 걸, 아니 그것이 있다는 것 만은 확실히 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게 된 계기는 표면적으론 우연인데, 이게 따지고 보면 필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인 친한 선배가 어느날 내가 뚝딱 만든 어떤 쪽지를 보게 됐고, 너가 캘리그래피를 배우면 되게 도움이 될 것이다. 란 말을 했다. 이때까지 내 마음속엔 캘리그래피가 조금의 감각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로 보였다. 그래서, 뭐 한번 배워나 볼까.란 마음이 처음엔 앞섰다. 내가 이 분야를 얕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릴적 서예를 따로 배운적은 없지만, 학교에서 배운만큼만 붓을 잘 다루긴 했다. 먹물로 대나무나 국화 같은것도 곧 잘 그렸다. 평소 글씨는 악필이지만 그래도 붓글씨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바로 무참히 깨졌고, 지금은 이 분야에 대한 탐구 정신에 설레이기도 한다. 


 캘리그래피는 영어로는 서예로 통칭되는데, 현대적인, 실용적인 서예로 말할 수 있다. 문자 정보를 읽는 것에서 이미지화(연상)시켜 보여질 수 있도록 하는 현대 조형 예술의 하나다. 선생님께 서예와 캘리그래피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클래식과 가요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셨다. 서예는 확고한 법(칙)이 존재하지만 캘리그래피는 법칙 보다는 용도에 맞는 컨셉트가 중요한,, 

 내가 선생님을 믿고 좋아하는건 기본 뿌리가 확실하고, 기본기를 강조하는데 있다. 무려 서예학 박사이시고, 캘리그래피 초창기를 이끈 1세대 캘리그래퍼다. 그러니까 서예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캘리그래피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일상에 파고드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강좌가 진행되면서 느끼는 건, 글씨라는게 자신의 인성,인품의 반영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좋아야(져야)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것, 서예를 통해 수신,수성하는 옛 선비들의 덕목을 엿 볼 수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 사람하고 글씨는 같이 늙어간다고 한다. 


 캘리그래피를 배우는데 있어서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고히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취미냐, 작품이냐, 실전이냐, 처음의 그냥 호기심이 아닌 어떤 목적의식이 뚜렷해지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과학이다. 공간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글자,한글자 마다의 조형성 뿐만 아니라. 전체 문장의 조형도 중요하다. 한글은 상형문자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원리와 법칙이 있는 체계를 무너뜨리면 안된다. 물론 컨셉이 그러하다면 어쩔수 없지만. 그리고 전통 서예의 도제식 교육으로 스승과 제자의 글씨가 똑같아 지는걸 매우 우려하고 경계하셨다. 배우는 입장에서 스승의 글씨에 영향받는건 어쩔 수 없는데, 자신의 글씨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캘리그래피에서도 어느 학원, 어느 선생의 글씨만 보인다고 했다. 


 여기서 핵심을 정리해 보자면.

1. 글씨 공간 똑같이. 

2. 실획, 허획의 구분

3. 먹물이 뭉치는것, 가시나무 처럼 날리는것 조심

4. 예각 조심

5. 가로획 짧게

6. ㄴ,ㄷ,ㄹ 중성 ㅡ 가 올때 짧게

7. 글씨 엮기

8. 착시현상 (막힌공간 크게 열린공간) ㅂ,ㅕ,ㅛ,ㅠ

9. 초성보다 중성 짧게 

10. 받침 끼워넣기. 

 무엇보다 글씨의 정성과 자신감 있는 필치가 중요하다. 



 숙제 검사 하면서 수강생들이 써온 문구를 다시 써주면서 설명. 내 인생의 봄날~ 의 봄날을 쓸 때 필치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어느 삼십대 여자분의 보고싶어요 원빈.. 솔직하고 귀여움에 우린 잠시 뿜었다. 


 붓이 먼저 가는게 아니라, 이미 글씨의 형상, 위치를 다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붓을 움직여라. 

 천천히..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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