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의 작품중. 가장 따듯한 여운을 가진 영화다. 전작들에서 소시민들이 궁색한 삶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을 건드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면, 이 영화는 사회의 낙오자들이 나오는건 마찬가진데, 과정들의 끝이 무겁지 않다. 어쩌면 상큼한 해피엔딩인데, 조금 켄 로치 답지 않다면서도 어쩔수 없이 반기게 된다. ( 켄 로치의 전전 작품일것인 '루킹 포 에릭' 도 따듯한 해피 엔딩 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퍽퍽한 리얼리즘을 벗어나서 좀 놀랬었던 )


 켄 로치의 영화의 배경은 거의 다 스코틀랜드다. 이 영화에서도 글래스고 와 에딘버러가 중심이고 위스키 양조장이 소개된다. 

 스코틀랜드 하면, 스카치 위스키와 퀼트 치마, 글래스고 출신의 4인조 밴드 '트래비스' 와 알렉스 퍼거슨 경.이 대표할수 있으려나. 아.. 헐리우드 영화지만 스코틀랜드 정신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브레이브 하트' 도 있었다.

 

 켄 로치의 영화들을 보면, 이 스코티쉬 억양의 영어를 실컷 들을 수 있다. 이전 영화들에 비해 영어가 조금 더 잘 들렸다. 세월이 갈수록 그 억양이 순화된 것인지. 내가 조금 더 귀가 틔인건지..여하튼 미국 영어의 느끼함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매우 강인하게 들렸다. 미국 영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스코치 영어를 실제로 맞닥드리면 멘붕이 오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투박하게 음률이 강한 영어를 익히다보면 재밌기도 하고, 가식없는 솔직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것 같다. 


 위스키 술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의 문화의 일부를 답사한 느낌이다.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장과 포도밭을 둘러 볼 수 있었던 명작 '사이드웨이'가 생각난다. 와인을 마실때마다. 영화속 주인공이 가르친 대로 유리잔에 코를 깊숙히 들이대 향기를 맡는 습관이 생겼다. 와인잔을 돌려 산소와 잘 섞이게 한다거나, 입안에 넣고 혀의 여러 부의에 맛을 감지하도록 머금는다거나. 괜히 본것은 있어서 꼬래 술잔 들고 폼은 다 잡았다. 이 영화에서도 시음회의 과정이 그렇게 묘사된다. 실제 위스키의 제조 과정을 투어 관광처럼 보여준다. 너무나 너무다 위스키가 땡겼다. 



 내가 마셔본 최고의 위스키는 조니 워커 블루 라벨 이었다. 시중에선 30만원대고. 면세점에선 한 17만원 정도였던거 같다. 언젠가 대학동기들과 여행을 갔는데, 그중에 누가 아버지의 찬장에 모셔져 있던 조니워커 블루를 가져왔다. 소설속에서 청탁용 뇌물의 상징으로 유명해서 글로만 들어보던. 그 술.. 이것의 뚜껑도 코르그 마개고. 마개를 열고 닫는 느낌 부터가 꽉 쪼이다 뽕 하고 열리는게 차원이 달랐다. 이 술의 첫맛을 잊지 못하겠다. 그 그윽한 향이 입과 식도를 타고 온 몸에 퍼지는 느낌. 그제서야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년의 사내가 홀로 바에 앉아 술 마실때 왜 그렇게 한없이 그윽한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되었다. 흔히 위스키를 마시면. 높은 알콜 도수로 인해, 식도가 타들어가듯 캬~ 하며 표정이 찡그러지며 짜릿했든데, 이 술은 쌔긴 쎄도 특유의 향내음이 독한 자극을 감미롭게 했다. 


 시바스 리갈만 되도 양반이지, 대학 초에 몇번 마셨던. 제일 싸구려 캡틴큐는 위스키라기 보다 신나(시너)에 가까웠다. 난 누군가 초딩학교에서 훔쳐온 알코올램프 알콜에 보리차 조금 섞은 것인줄 알았다. 시바스 리갈이나. 잭 다니엘스. J&B 를 흔히 마시게 되는데, 조니 워커 블루는 이런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아마 또 다른 위스키의 세계는 블렌디드 와 ..싱글 몰트 의 차이 일 것이다. 조니 워커 블루만 해도 최고의 맛 이었는데,, 영화속에서 나오는 전 세계 한 통 밖에 없는 유서깊은 몰트 위스키는 그 맛이 어떨지.. 정말. 그런 술은 꼭 한번이라도 마셔보고 싶다. 



 켄 로치의 대부분 영화에서처럼, 하층민들이 주인공이다. 루저들.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 것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주인공 로비를 포함해 이런 저런 루저들은 보호감찰원인 해리의 인솔아래 갖가지 일을 수행한다. 그러다 해리는 로비의 딱한 처지의 상황을 보게 되고, 진지하게 잘 살아보려는 그와 소통을 하게 된다. 로비는 건달이지만 여자 친구가 아기를 갖게 되자, 아버지가 된다는 책임으로 삶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그 나쁜 환경의 업은 그를 따라다닌다. 폭력의 행사를 뉘우치고 직업을 갖기 위해 모색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고, 우연히 해리의 제안으로 위스키 시음회에 참석해, 감식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러다 그의 순진하고 띨띨한 동료들과 도둑질을 계획한다. 전 세계 하나 남은 위스키통의 위스키를 탈취하는것. 



 이 영화의 제목 '엔젤스 셰어'는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될 때, 자연적으로 공기중에 증발해 없어지는 위스키를 부르는 말이다. 천사들에게 나눠주는 양이라고..영화에서 벌어지는 도둑질은 대단한 비유 혹은 은유가 된다. 부자들을 위한 최고급 위스키의 자연 증발 되는 것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인 하층민들이 셰어,몫을 챙기는 것이나. 어짜피 경매에 낙찰된 미국인 부호는 뒤바뀐 위조 위스키도 못 알아보는 그저 기쁜 호구가 됐고, 나름 유쾌한 분배가 이루어졌다. 

 이 영화의 감동은 누구나 색안경 끼고 보게되는, 얼굴의 칼자국 선명한 폭력 전과자 로비에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그에게 기회를 제공한 해리에게 도둑질로 습득은 했지만 그렇게 귀한 위스키를 선물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천사들의 나눔.인 것이다. 띨띨한 동료들과 돈을 똑같이 나누고, 그들의 실수에 원망을 하지 않고, 보듬어 우정으로 더 나은 삶을 충고한다. 


 

 폭력의 굴레에 있던 주인공 로비가 위스키를 통해 삶의 반전을 이루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천사들의 나눔, 삶의 따듯한 유대와 공유의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퍽퍽한 삶이지만 위스키를 매개로 한 타인 과의 매우 따듯한 소통을 보여줬고, 진정한 선물,증여의 정신을 깨닫게 했다. 

 천사들의 몫이란, 타인을 향한 너그러운 배려의 마음. 


직원 " 증류한 술을 담아놓는 오크통은 숨을 쉬어요. 그래서 나무의 향이 위스키에 스며들죠.
        이 오크통에 담아둔 위스키는 매년 2%씩 흔적도 없이 증발하게 되는데,
        이걸 엔젤스 셰어라고 합니다. 사라지는 만큼이 천사의 몫이라는 거죠."



 자잘하게 웃기거나 어이없는 장면들이 웃기려고 한게 아닌데 웃겨버린, 진짜 웃음을 만들어 준다. 

 

 아~ 몰트 위스키..나중에 꼭 위스키 테마 여행과. 와인 테마 여행을 해봐야겠다. 

 정말 감칠맛나는 스코틀랜드 문화체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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