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 느즈막히 동이 터오는 비오는 일요일 아침,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조심스레 마시며 씨디 플레이어에 런던 콜링을 집어넣는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말의 무의식의 파편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나는 명징해진다. 이 순간 나의 존재를 일깨우는 뭔가의 기운을 오롯히 느낀다. 창밖의 서늘함 속에서 귀의 솜털에까지 집중한다. 클래쉬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조 스트러머의 외침은 그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공허와 자괴가 아닌 확신과 신념이 꽉 들어찬 울림이었다. 


 조 스트러머 1952~2002


 1970년대 영국의 펑크(Punk)록의 시작을 섹스 피스톨스가 열었다면 펑크록의 완성은 클래쉬가 이루었다. 그들은 단순하고 거칠기만 한 펑크록의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리듬을 접목했다. 쓰리코드 위주의 신나게 긁어대는 섹스 피스톨스의 원형질 펑크에서 레게,스카,팝,록,R&B 등등의 다채로운 리듬으로 자신들의 펑크적 태도와 정치적 성향을 내세웠다. 치기어린 허무주의자 섹스 피스톨스가 신선한 자극이고 충격이었다면 클래쉬는 프로테스터(protester)로써 대중속으로 파고들었다. 음악을 통해 적극적으로 현실참여적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인종차별, 실업 문제, 불공평한 법과 경찰, 미국의 세계 지배 등 현실에 대한 저항적 목소리를 첨부했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우리들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통한 사상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음악적으로 이뤄낸 성과는 대단하고 끊임없이 화자된다. 그들은 저항의 메시지 전달이라는 목표를 유효하게 달성하기 위해 펑크의 세련화를 통해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굳이 언어의 논리를 떠나 음악으로 그들의 정신이 전달된다는 점이 음악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음반 중 하나이고, 가장 완벽한 이미지의 록 앨범 자켓으로도 유명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앰범 디자인을 패러디 했는데, 이것은 엘비스를 존경하려는게 아니고, 불멸의 로큰롤 이미지를 창조한 이름모를 디자이너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90년대 중반 홍대앞의 허름한 클럽에서 펑크씬을 일구었던 크라잉 넛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동네 음반가게에서 크래쉬(안홍찬이 이끄는 헤비메탈 그룹)를 달라고 했더니, 클래쉬를 잘 못 주었고 그들은 펑크에 빠지게 되었노라고, 나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는데, REM을 달라고 했더니, Ref를 주던데, 이런..


 50의 나이에 고인이 된 조 스트러머를 기리며 비오는 날 런던 콜링을 듣는 이 기분. 

 그의 얼굴에서 왠지 카뮈와 브루스 스프링스턴 이 겹쳐진다. 



‘이 음악은 국가를 휘젓는 거지. 이 음악은 센세이션을 야기시키는 거야. 어머니에게 말해. 아버지에게 말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이것은 혁명의 록이지. 난 충격의 상태야.’ ‘혁명의 록(Revolution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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