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신기루를 본 것과 같다. 황홀했던 순간은 기억에 붙들고 싶어도 더욱 빠르게 휘발되어 버려 내가 그것을 정말 본 건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마치 첫눈에 반한 여자의 얼굴 생김새가 도통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그냥. 멋진 음악과 한여름의 분위기가 순간 지나갔다. 설명할 수 없는 이쁨이 왜 그렇게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지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듯이 내가 좋아하는 록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는 일은 그저 황홀했었다. 


 토요일의 헤드라이너 였던 북아일랜드 출신의 스노우 패트롤과 일요일 헤드라이너 였던 영국 웨일즈 출신의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는 정말 멋진 공연을 펼쳤다. 록페를 보러가는 이유는 이 헤드라이너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지산 록페 같은 경우. 라디오헤드와. 스톤 로지스 도 물론 영국 음악의 기라성 같은 거물급이지만, 교통편. 숙박. 터무니 없는 대기업의 횡포 같은게 신경이 쓰여, 집에서 가기도 편하고 좀 더 록페스티발의 원조인 펜타포트에 2일 가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헤드라이너 공연에 비해 그 이전의 공연은, 40~50분 공연하고 30~40 그 뒤 밴드가 장비 셋팅할 동안. 작은 스테이지에 펼쳐지는 공연을 보며 왔다갔다 하는데, 딱히 땡기는 밴드도 없고, 그다지 사운드도 좋지 못했다. 하지만 록페의 꽃인 헤드라이너 공연은 자기네 스태프들이  이미 완벽히 장비와 조명등등의 셋팅이 이루어져 바로 이전의 밴드 공연에 비해 소리도 매우 좋았고, 완벽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커서 역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의 힘이 큰거 같다. 어쩌면 기분상. 주인공의 공연은 더 기대감이 크고 마음의 비판을 완전히 내려놓아서 그럴 수 도 있겠다 생각할수 있지만, 소리가 객관적으로 차이 나는 것은 확실하다. 









 토요일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헤드라이너인 스노우 패트롤 이었다. 보컬인 게리 라이트보디 는 관객의 반응에 놀라고 감동하는 눈빛을 바로 뒤의 영상 패널에 고스란히 전해줬다. 한마디로 뮤지션과 관객이 서로 감동받아..열정의 공연을 내내 펼치는 멋진 광경. 이때 느낀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은 성공한 록 밴드 라는 것. 전세계를 공연 투어를 도는..록 밴드.. 지구 반대편의 동양의 작은 나라에 와서, 이렇게 관객이 거의 모든 노래를 같이 불러주고. 후렴구의 코러스 같은건 알아서 우렁차게 호응해 주는, 이런 관객앞에서 어떤 뮤지션 이라도 절정의 행복감을 느낄것이다. 


 스노우 패트롤은 비교적 뒤늦게 안 밴드임에도. 역시 음악은 훌륭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영국적인 감성 충만한 밴드였다. 프론트 맨인 게리 라이트보디의 음색과 노래 실력은 남자인 나 조차도 빠져들게 만들었다. 백인 남자 록 가수 치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순박하고 진정성이 엿보이는 외모다. 키도 크고, 멋지다. 요즘 안 그래도 펜더 72텔레 디럭스에 꼿혔는데, 보컬과 기타리스트의 메인 기타가 그것이다. 


 이날 별로였던 공연은 일본 펑크록 밴드 팩트 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밴드인 칵스.. 일본 펑크록 밴드는 다 비슷한 노래들..막 달리는 곡들인데 다 똑같이 들림..그냥 소리질르고, 젊은 관객은 슬램 혹은 모싱이라 불리는 격렬함을 즐기고, 디스토션 걸린 일렉기타 3대의 소리는 다 뭉그려지고 섞여서 무슨 연주를 하는지도 모르겠는..한마디로 그냥 크렁크렁 대고 꽥꽥대는 소리만 줄창 함. 그 다음날 또다른 일본 펑크록 밴드도 똑같았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들으면 편견이 없다지만, 그건 적어도 내겐 맞지 않는말. 정말 병신 같은 밴드들도 수두룩함..


 칵스는 보컬이 한국말 노래를 하는데..무슨말인지 하나도 전달이 안됨. 소리도 안좋고. 노래를 만들때부터 가사 전달력이 약한듯하다. 내 생각엔 가사가 있는 경우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의 차이점은 가사가 잘 전달되는냐..그냥..대중 음악에 뭉게느냐의 차이인것 같음. 다음날 김씨의 뜨거운 감자 같은  경우. 어쨌거나 한국말 가사의 확실한 전달력이 있으니까. 음악의 공감. 소통이 되어 그냥 흥에 겨워 분위기만 취하는 음악과는 급이 다르게 느껴졌다. 뜨거운 감자의 기타리스트 도 매우 좋았다. 









 일요일날은 여지없이 비가 내렸고, 밤 10시 대망의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미친 거리의 전도사들/ 이하 매닉스라 부름)의 공연을 할 때는 비가 그쳤다. 매닉스의 공연 바론 전 팀이. 일렉트로닉 음악의 혼성 듀오 였는데,(아마도 크리스탈 캐슬 이었던 듯) 이 때 가장 짜증이 솟구쳤다. 어제의 스노우 패트롤 때 관객의 수준높은 취향과 매너가 급실망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된, 내 딴엔 지랄스런 공연이었다. 말초적인 전자 음악에 맞춰 이펙팅 잔뜩 걸린 귀신나올까말까한 이상한 소리의 괴성만 질러대는.. 사람들은 클럽에 온듯 피상적인 감각에..무아지경 재밌어 했다. 내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음악이라 부르기엔 그 듀오의 수준이 저급이었다. 사람들은 페스티발이니까 그냥 즐기는 거고, 나는 나이들어서, 음악을 감상하러 온 것이고, 그건 내겐 포르노의 말초적 자극 같은 것이었다.

 

 어쨌거나, 시간과 비와의 인내를 감수하며, 드디어 매닉스가 등장했고, 90년대 밴드의 향수로 귀환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좌파의 메시지. 쿠바 의장 피델 카스트로가 최초로 초대한 서양 밴드로 쿠바에서 공연도 한 매닉스는 현재에도 꾸준히 좋은 음반들을 내고 있다. 보컬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레스폴 커스텀 흰색 기타는, 그들의 연륜 만큼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나오자 마자. 그들의 명곡. 유독 이 노래를 언제쯤 부를까 기대했던 모토사이클 엠티네스 를 불렀다. 그 특유의 기타 리프가 울려퍼질때, 우와..참 신기하다..이 눈과 귀와 피부의 감각이,, 그건 진짜였지만, 마치 모니터로 공연 DVD감상하는 것과도 같은.. 보컬의 듬직한 체형과 중년의 마피아 같은 풍모 이지만 고음의 시원시원한 음색과 기타 솔로 실력은 진정한 록 스타였다.

 

 노래 한곡 한곡이 워낙 유명하고 좋은 곡이어서, 그만큼 활홀한 시간은 스피디하게 흘러갔다. 에버라스팅..쓰나미. 아 디자인 포 라이프 등등등. 어찌 저런 노래들은 만들었을까..혀를 내두르게 된다. 멋지고 멋지도다. 웨일즈의 영웅들은 한국에서의 첫 공연을 열정적으로 치뤘다. 일요일 밤이라 관객이 좀 적은듯 했으나, 공연 자체는 좋았다. 진정한 록음악을 느끼고 싶다면..매닉스의 베스트 음반의 필청을 권한다. 가사까지 이해하며 들으면 더 좋겠지만.. 음악 자체의 힘은. 메시지의 내용을 몰라도 그 본질의 감정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내가 이 공연을 본게 맞나 하는 실감이 안난다. 그만큼 좋은 기억은 신기루와도 같은 것. 이 실제의 감각은 찰나의 마주침. 스쳐지나가는게 아쉽긴 하지만. 삶의 본질은 원래 그런것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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