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러 가려고 부랴부랴 상수역에 들어섰다. 계단 귀퉁이에서 잠시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여자였는데. 사실 목소리의 기억이 안 떠올랐으면 바로 옆에 지나쳐도 몰랐을 것이다. 상대가 나를 먼저 알아보지 않는한.. 얼굴이 많이 변해서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이가 나랑 동갑이니..내 시선의 끈기는 찰나 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후 3년 만 이던가. 19살 입시 미술학원에서의 동기인데 20대 중 후반 그 모임으로 좀 보다가 서른 이후론 거의 연락이 끊겼었는데, 한 한달전에 갑자기 전화가 와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때의 전화가 아니었으면, 난 또 상대의 이름이 생각안나는 당황함 속에 뻘줌하게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일말의 지체도 없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인데도, 중간에 이름을 넣어서 불렀고, 난 뿌듯했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한 번은 지하철에서 내려 같은 방향으로 가는 대학 동기 여자애를 만난적이 있었다. 먼저 내 이름을 불러서 알아봤고,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속으로 아무리 이름을 생각하려 해도 생각이 안나. 솔직히 미안한데..이름이 기억안난다고 했더니, 표정에서 너무 온화한 관용의 웃음을 보여주어서 나의 무안한 상황을 무마시켜주었었다.

 그렇다고 예고치 않은 순간의 마주침에서 내가 대비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삶의 우연성에 내가 개입할 여지는 없으며, 노화에 의한 기억력의 감퇴? 를 거스를 방법은 없다.
 상대와의 우연한 마주침으로 인해, 단절된 과거와의 갑작스런 조우는 나의 존재 역사를 각인시키게 한다. 상대를 통해 그때의 사람들은 다시 기억속에 불려지고, 잠시 회상했다.

 딱히 이유가 없었는데, 나는 지하철 게이트 앞에서 발길을 뒤로 돌렸다. 영화를 봐야겠단 흥미가 뚝 떨어졌다. 그 순간 19살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본질적으로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미성숙함. 그러한 자각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보았던. 스탠리 큐브릭의 ' 풀 메탈 자켓 ' 은 그때나 지금이나 명작이다. 다만 조금 더 의미. 의도가 보일 뿐..

 이 영화에 대해 조금더 알아보았는데, 이 감독이 전에 만든 작품중에. ' 히든 ' 이랑 ' 퍼니게임 ' 이 있었다. 줄리엣 비노쉬가 나왔던 ' 히든 '은 그래도 볼만했었는데, '퍼니게임'은 상당히 불쾌한 영화였다고 각인된 기억이 있다. 그래서 망설여 졌는데, 아우구스트 잔더의 흑백사진에 영향을 받은 엄격한 흑백영상의 영화이고, 유수한 영화제의 상을 두루 받았다기에.. 다음 날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제대로 빠져들지 못했다. 문제는 흑백영상의 하얀 부분에 자막이 겹쳐지면 독해가 쉽게 안 되는 문제가 있었고, 그러다보니 영화속에 몰입을 못했다. 그리고 한 관객을  보면서 착각을 하게 되었는데,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나눠야 되게 되는 샹황..그러나 반가운..다양한 감정의 상념속에서, 헤메이다가 영화를 놓쳤고, 그 착각도. 착각일뿐인..좀 허탈한 상황이었다.

 영화는 대단한 예술 영화 임에는 틀림없다. 흑백 영상의 미학, 조명,구도,미장센 등등..은 완벽했고, 내용 또한 심오한 은유가 심어져 있었다. 영화 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 영화를 되새김질 하는데, 다만 가슴속에 사뭇치는 감동은 내게 없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보는 내내 내 자신의 문제에 봉착되어 영화에 마음이 쏠리지 못했다. 예술 작품을 통해 관계의 본질적 의미에 당돌하지 않고, 나의 심안에 봉착되었다. 어제 내려놓음 으로써 개운했던 마음은 또다시 흔들렸다. 

 인상깊은 장면은 어떤 사고의 용의자로 의심되는 한 아이가 개울의 다리 난간 위에서 걷는 장면인데, 왜 그러냐고 추긍하는 선생에게 하는 말이..신이 나를 지켜주시는지 아닌지 시험하고 있었다. 라는 대사.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느끼는 것은 신은 자신의 용기와 비례한다..자신의 한계, 자신을 넘어서는 길이 신의 보우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전 독일의 평화로운 마을에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감독은 파시즘. 계급문제. 억압적 사회. 개인의 내면성의 분출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심성의 고발, 을  영화의 은유적 장치로 점점 죄어오듯 관객에게 전달한다. 독일인의 원죄에 대한 의미, 탐구라 할까..어른과 아이. 절대적 선과 악의 구별없이, 잔혹한 전쟁을 2번이나 치르게 만드는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2시간 20분 좀 힘들었지만. 영상의 짜임새가 완벽해서 볼만은 했던 영화였다. 다만 좀 마음이 갑갑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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