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의미의 영화보기는 이제 많이 퇴색햇다. 필름 릴이 돌아가고 빛을 비춰 영사막에 투영되는 이미지의 잔상을 보는 영화보기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한 때는 서울극장이 제일 신선한,생생한 영사용 필름이 공급된다 하기에 거기서 첫 개봉되는 영화를 찾아 본다는 말도 있었다.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버린 필름 시대의 잔상이다. 필름 시대의 마지막 대미를 나는 경험했고, 그 경험은 내 역사속의 노스탤지어가 되버렸다. 대학에선 필름 편집.(스틴백) 직접 필름을 칼로 잘라 테이프로 이어붙여 완성된 필름 릴(편집본)을 만드는 수업을 마지막으로 했었고, 대학원에선 칼라염료사진 인화를 마지막으로 했었다. 그 후로 그런 수업이 진행되질 않았다. 앞으로 전혀 쓰이질 않는 기술을 배웠지만 그 경험은 기술의 역사를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아날로그적인 수고와 물리적 감각의 느낌들. 그것은 20세기 모던소년의 최후였다.

 나는 이제 극장을 자주 가지 않는다.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의 대세가 되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광고의 짜증에서 분이 삭히지 않길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상영관에 앉아서 15분 간을 광고의 폭력에 시달리는게 도저히 참을 수 가 없다. 돈 주고 광고를 보러 온게 아닌데. 눈을 감을 순 있지만 귀를 막을 수 없다. 소리의 공해는 시각만큼 피곤하다. 그나마 비교적 예술전용관들은 광고가 적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광고에 대해서 분노해야 한다. 내 피를 빨아먹으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모기처럼 되버린 광고의 폐해에서 우리는 자신의 방호벽을 세워야 한다. 신종플루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광고에 노출된 자신의 잠재의식의 욕망의 범람이다. 광고와 정보의 이성적 구분. 그것이 무너지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노예가 되버린다. 

 예전처럼 영화를 자주 보진 않지만 꼭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 아니고선 그냥 집에서 곰플레이어로 본다. 약간의 돈을 지불하는지 안 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질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충실한 모던의 영화 소비자 였다. 갈때까지 간 마케팅이 나의 문화적 취미를 소멸시켰다. 집에서 영화보기도 나름 좋다. 기타를 잡고 가볍게 아르페지오를 막 튕기던가. 서서 지압 발판을 밡으면서 영화보기도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좋다. 한 없이 자세가 불량해지고 기네스 맥주나. 와인을 홀짝거리기도 하고 사타구니를 맘대로 긁어대기도..아무튼 완전한 자유이다.

 특정한 영화 관람방식을 고수 하지 않지만 최근에 개봉한 영화 허트 로커를 다시 보면서 극장에서 봤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극장에서 본 관객들은 다들 그 폭탄 해체의 과정의 극도의 긴장감.(공감각적 이입) 을 여실히 느꼈다고 한다. 개봉하기전 곰플레이어 로 봤는데 꽤 수작이긴 해도 대단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뭔가 2퍼센트의 부족함이. 극장에서 봤더라면 채워지지 않았을까. 처음으로 의심하게 된 영화였다.
 이 영화를 곰플레이어로 두 번 봤다. 미국,미군의 정치,역사적 입장,관점을 배제하고, 나는 이영화가 선(禪) 에 관한 영화로 보여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해서 자기 자신을 내 던져 그 몰입하는 그 순간의 정점.희열을 그린 매우 멋진 영화였다. 자본주의 물직적 욕망, 가정의 안위, 모든 곁치레를 다 버리고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단 한가지는 폭탄 해체의 몰입의 순간이다. 참선, 최선,은 폭탄해체의 그 순간이었으며, 그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것을 느낀적은 서른살때. 북한산 족두리봉(여자의 유두를 닮은 봉우리여서 유두봉 이라고 불린다.) 에서의 바위 릿지 경험이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내 등산화의 접지력만 믿고 경사진 바위에 달라붙었느데. 한 번 미끌어지면 그냥 추락하는 매끈한 바위 위에서 내 몸은 극도의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었다. 심장의 고동은 내 머리까지 진동했고 상념이 들어설 틈이 전혀 없고. 오직 내 호홉과 손 과 발끝의 미세한 감각의 확충. 실수하지 말아야지. 살아야지 하는 생존의 본능만이 존재했다. 관념적 나 란 실체는 여지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고통과 기쁨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스파이더맨이 되어 선의 의미를 탐구했다. 나는 지금 이순간 진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선 이라 생각한다. 보통의 삶에선 쉽지 않다.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긴 해도 우리는 선과악의 판단의 딜레마에 항상 고통스럽다. 존 레논의 말처럼 인생은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 영화의 폭탄 폭발 장면은 하나의 예술이다. 미학적 아름다움이 충만하다. 공간과 시간은 사진이라는 복제 매체로 인해 폭발의 순간 조차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1초에 몇 프레임을 찍었을까. 고속촬영으로 인한 노출 부족의 어색함은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생각해보니 내가 유치원때 처음 그린 그림이..폭발의 모습이었다. 좀 더 파고 들어가고 싶지만 다음에..
저격 시퀀스에서도 매우 사실감 넘치는데. 이름이 생각안나는 유명한 배우가 느닷없이 적탄에 쓰러지는 것도 의외였고, 시간의 압축속에서도 공간감과 긴장이 그대로 서려있었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어제 서울숲 매점에서 카프리 썬을 보고서, 이 영화속 저격씬에서 부사수가 총을 겨눈 사수에게 카프리 썬?을 빨대 꼿아 마시게 하는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완벽한 광고의 효과였다. 오랬만에 빨대 꼿아 마시는 카프리 썬은 영화속 인물들의 갈증상황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이제 광고의 기능은 그런것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헐리우드 유명 배우를 쓰지 않음으로써 폭발씬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을 잘 살려내었다.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폭탄 해체를 한다면 우리는 안 터질줄 뻔히 안다. 반면에 유명배우는 어이없는 한 방에 쓰러트리고 만다. 

 좋은 영화 였지만. 왠지 미군의 개입과 작전은 여전히 역겹다. 그리고 각본이 대단히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여전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곰플레이어로 두번 보니 극장엘 안 가도 되겠다. 곰플레이어는 영화의 시뮬라르크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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