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영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의 문화,예술의 전통과 세계적 입지를 부러워하는 글을 썼는데, 마찬가지로 일본의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는 현대 사진의 대표적 거장으로 전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가 되고, 그의 작업들은 사진계에서 많이 화자되는 스타 작가이다. 


 유럽에서 얼마간 살다 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럽인들이 일본을 매우 좋아하고 일본인은 보통 아시아 사람들과 같은 레벨이 아닌 문화적 감각(미감)을 소지한 계층으로 본다던데, 여기서도 역시 '한국은 없다'를 여실히 느낀다고 한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무작정 싫은 마음의 무시가 아닌, 좋은점들을 솔직한 눈으로 봐야 한다. 그네 나라의 정체성이야 그렇다 쳐도 그들의 미감 만큼은 훌륭하다고 본다.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동양문화의 특성을 확보했고, 서양인들에겐 일본의 문화는 자기들 눈에 딱 맞는 이국적인 색다름 이었을 거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흠모했고 따라하기도 했던 화풍만 보더라도 일본적인 것은 세계의 미감과 연동돼 있다. 


 뉴욕에 성횡하는 일본식 레스토랑만 보더라도 동양성이 서양과 어떻게 접목되어 파급되는지 볼 수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에 스며든 선불교의 가치는 일본성의 모든 기저에 흐르고 있다. 조선시대 배불정책으로 유구한 선의 전통이 산으로 갔다면 일본은 대중 미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본다. 그 기저에서 서양의 합리성과 만났으니, 고정된 것은 없고 실체는 없다 라는 선의 진리에 더 부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통에 갇히지 않은 전통의 합리적 계승이 오늘날 일본의 문화 역량이 아닐까. 


 히로시 스기모토의 개인전은 국내 처음이고, 말로만 듣고, 사진집으로만 보다가 실제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보니까 생각보단 원본의 아우라를 많이 느끼진 못했다. 인쇄된 복제물이 원본의 가치를 더 상회하게 된다는 기술 복제시대의 이론이 역시나 맞아 떨어진 듯. 사진이 대형이란걸 빼면 사진집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만큼 독일 인쇄 산업의 기술력이 좋은 것이다. 


 그의 주요한 시리즈가 거의 소개되었다. 전통 흑백 사진의 짙은 흑색을 여실히 느낄 수 있고, 완벽한 퀄리티의 사진의 묘사력을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내용적인 면을 말하긴 그렇고,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작업 과정을 소개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성공한 사진작가이고, 작품의 동기들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느낀건, 대가들일 수록 작업의 컨셉이 단순하고 심심할 정도로 표현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근데 그 어떤 지점을 찾아 건드리는게 내공이라는 것이겠지. 


 삼성리움미술관이란걸 빼면 전시는 좋았다. 내가 삼성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서 자꾸 이런일이 생기는 건지, 원래 조ㅈ가트니까 그런건지, 당연히 평범해야할 미술관 관람에 매우 기분 나쁜 2 건의 일이 있었다. 


 앉아서 다큐멘터리 영상을 감상하다가 코트와 바지의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지폐들을 무심코 확인하다 보니 입장표를 살 때, 거스름돈 3,000원을 안 받았던게 확실히 기억되었다. 만원내고 영수증과 티켓속에 거스름돈도 받았다고 생각하고 바로 가방 보관소로 휙 돌아섰던 것이다. 근데 생각하면 기분 나쁜게, 그 직원들은 거스름돈을 주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바로 다시 부르지 않았을까. 알다시피 티켓팅을 하고 가방 보관소 까지 그 넓직한 로비 공간이 있고, 거스름돈 꺼내는게 조금 지체 되었다 해도 " 손님 거스름돈 받아가세요~" 라고 충분히 말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무언의 팁이라 생각했을까... 설마. 


 어쨌든 그걸 알아차리자 다시 한번 혹시 내가 어디 흘린거 아닌가 행동을 속기해 보아도 그건 아니었다. 영수증과 티켓을 건넬때, 지폐 세장은 확실히 없었고, 나는 바로 돌아선 것 뿐이었다. 일차적으론 나의 성급함의 불찰일 수 있지만, 분명히 직원이 다시 날 부르는게 정상이고 상식이었다. 


 그냥 내 일차적 불찰로 생각하고 넘어갈수도 있으나 내심 기분이 나뻤다. 그냥 문화재단도 아니고 삼성이래서 더더욱 작은 금액이지만 내 돈 삼천원이 뜯긴게 열받았다. 관람을 마치고 티켓팅 데스크에 가서 아까의 일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사이 직원이 바뀌어 있었는데, 젊은 여직원 표정이 벙쪄했다. 또다시 불쾌감이 엄습했고 그 직원의 눈에 난 쪼잔한 진상 손님이 되어버렸다. 옆자리의 상사인듯한 동료의 눈치를 보아가며 돈을 다시 내어주는 그 짧은 시간 뾰루퉁한 반응에 대해 화를 내야하나 말하나 하나 하는 스트레스. 돈을 받는 순간 더 말을 말자라는 체념이 들었고, 나는 코트를 세차게 휘날리며 가방 보관소로 향했다. 


 내 번호표를 주자 가방만 나왔다. 나는 황당해서 " 카메라는요? "  

 입장할때, 내 작은 카메라만 들고 있었는데, 카메라 반입이 안 되어서 다시 보관소에 와서 내 번호표를 보여 주며 카메라 반입이 안된다하니 먼저 맡긴 내 가방과 같이 보관하라고 맡겼다. 번호표를 두번이나 확인 시켜가며.. 그랬는데, 다른 번호칸에 카메라를 넣어둔 것이었다. 그 가방 손님이 아직 안 가서 망정이지, 나보다 먼저 가방을 찾았는데 작은 갈색 가죽 케이스의 카메라를 내주니 못 된 마음에 가져갔으면 정말 골치 아파지는 것이었다. 

 거기 직원은 여러 차례 사과했다. 


카메라 때문에 왔다 갔다하며 입장해서 보니 어느 커플은 컴팩트 카메라로 서로 찍어주고 있었는데 전시장 지킴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장소에 대한 마음의 반영이 이렇게 나에게 돌아오나 란 생각을 했다. 역시나 내겐 재수없는 미술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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