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대 중 ~후반 쯤에 김규항 님의 글을 처음 접했다. 이 글은 김규항의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의 변화에 대한 관찰이자. 기록이다. 자서전적 글쓰기에 대해 마음속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책이 내 삶을 변화하게 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에, 애정과 향수를 가지고 뒤돌아 본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지인의 도움으로 반년의 뉴욕 생활을 했다. 그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경험을 위해서, 뛰어들게 되었지만 즐겁지가 않았다. 뉴욕의 환상도 곧 여지없이 깨졌고, 내 일과. 도시의 일상 모두 에서 마음이 흩어졌다. 군중속의 고독인 외로움과. 자본이 지배하는 뉴욕의 본질을 호홉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두워져 갔다. 두려웠고 고독했고. 뉴욕이 갑갑했다. 그래서 무모하게. 홀로 무작정 서부로 달렸다. 첫 운전이고, 모든게 생소한 길이었지만, 죽을 사고를 겪지않고, 10여일 만에 다시 맨하튼으로 들어오는 홀랜드 터널을 지나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미국의 광활한 대지를 접하면서 외로움의 밑바닥을 훝었다.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상투적 표현일지라도, 사람은 혼자만의 섬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외로움의 공포가 몸을 마비시킬 정도였으니..(화이트샌드에서..) 그때의 공진 상태가.. 내가 서서히 바닥을 치고 변화하게 되는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연인을 잃은 지인(선생님)과 서울에 돌아온지 한달 반만에 만나 북한산에 올랐다. 그동안 그분은 금강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을 돌며 마음을 다잡고 계셨고. 나는 여전히 공진상태에 있었다. 그날 처음 등산을 경험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분은 내게 뉴욕을 선사하려 했었지만. 결국 산을 내게 전해 주었다.  형제봉의 바위에서. 그분은 내게 물었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계속 공진상태 였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몰랐다. 내 자신조차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난감했지만. 어떻게든 말해야 했기 때문에..박명* (당시 유명했던 광고회사 사장) 같은 사람을 언급하며. 단지? 돈많이 버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공허한 메아리 조차 되지 않은, 헛소리 였다. 운명은 내 말을 조롱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운명은? 그 당시 내게 김규항의 글을 접하게 했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나. 선불교의 가르침을 선사했다. 그러는 사이, 내 욕망과 두려움은. 병을 얻어 더욱 악취를 풍겼다. 그것에 대한 반발로.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좀 늦게 가더라도. 병은 내게 삶을 뒤집을, 여건을 만들어줬다.  점점 공부를 하며 나의 무명無明 ([명사] <불교>십이 연기의 하나.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를 이른다.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 과. 정신과 육체의 악취를 벗어나갔다. 

 김규항의 글은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했다. 뭔가 어렴풋하게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잘못된 사회의 통념들과 위선을 들추어냈고, 진짜 민주주의, 사회와 개인의 가치를 말해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논리정연함과..리듬은. 주제를 통찰하는. 예리함이 덧붙여, 내 의식을 뻥 뚫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지식인 들과는 다르게..현실의 삶이 녹아있었다. 진중권과 박노자의 글처럼 통렬함은 없을지라도. 타인의 삶. 좀 더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뭍어났다. 

 이 책. B급 좌파는 그의 첫 칼럼집이다. 98~2000 사이 씨네 21에 기고한 글을 모은 것인데. 그의 첫 글쓰기 행보였다. 두번째. 칼럼집은 그의 블로그 글의 모음집인 '나는 왜 불온한가' 였고. 곧 세번째 칼럼집이 나온다고 한다. 2번째 칼럼집 보다는 이 책은 잡지 기고 글이어서. 한 주제에 글의 양이 일정한 꽉 짜여진 틀이 있다. 자유로운 산문도 좋지만. 이렇게 지면이 제한된 여건에서 한 주제를 풀어내는 그의 글솜씨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글의 강점은 유학을 갖다온 공부 많이한 사람들이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가져다 들먹이고, 수사를 남발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서 건져올린 올올한 글들이 공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지나친 감상 혹은 시적 은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논리와. 리듬으로 예리한 미문을 만든다.
 그는 예수님 외에 다른 학자들의 말이나 이론을 들먹이지 않는다. 확실한 사상적 기반이 예수를 믿는 만큼 급진적이고 투철하다. 그가 낸 '예수전'은 글이 너무 정제된 느낌이라, 이 칼럼집을 읽는 만큼 한번에 확 와닿지 못했지만. 수시로 차분히. 음미해 볼만한 책이었다. 

 예수를 따르는 좌파 지식인으로써, 그 사상의 의지는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다. 내 삶과 환경이 여전히 미명에 쌓여있긴 해도, 그 만큼 확실한 신념?이 쌓이진 않다 해도. 내 마음속 지향하는 세상을 위해 나도 전진한다. 
 김규항의 첫 책인 이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 어줍잖은 말이지만 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 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그 숙명적인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발악하는 것일 뿐,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선택했고 그런 삶의 발악이 더러는 (거의 가능하지 않지만) 세상에 진짜 유익을 주는 일도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내 삶을 전진한다.

 -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김규항.

 세번째 칼럼.산문집인. B급 좌파.- 세번째 이야기가 방금? 나왔다. 목차를 보아하니..그 동안 블로그에서 읽어왔던 글 이긴 해도. 책으로 다시 읽고 음미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그 처럼 지식과 삶이 유리 되지 않도록 발악을 하며. 오늘도. Believe Yourself Strong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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