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공식적으로 밴드에서 탈퇴했다. 그의 홈페이지에 http://johnfrusciante.com/ 공식적 입장 표명을 했다. 새로운 분야의 음악을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 한 마디로 밴드 멤버에 구애받지 않은 자기 색깔의 음악을 하겠단 것이다. 작년에 나온 그의 솔로 앨범 The Empyrean 이 본인 의지의 일환인듯 싶다. 존 의 팬으로써 그의 솔로앨범은 훌륭한 아트이고,  솔로 활동에 성원을 보내는 바 이지만, 더 이상 존이 없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마치 크림 없는 케익인, 그저 카스테라 일 뿐이다. 그것은 이미 1995년 앨범 One Hot Minute 에서 어느정도 증명되었다. (존이 첫 번째로 탈퇴하고 제인스 어딕션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가 들어와 만든 음반) 이 앨범 전 후의 존이 참여한 앨범들과 많이 비교된다. 물론 데이브 나바로도 아주 출중한 기타리스트 이긴 해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기타리스트는 영원히 존 프루시안테 일 수 밖에 없다. 



 존 프루시안테는 7살 때부터 기타를 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LA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유명한, (1983 년 페어팩스 고등학교 동창생 보컬 앤쏘니 키디스, 베이시스트 플리 주축) 앨범 세개를 이미 발표한, 인기 밴드였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1988 년에 가입하게 된다. 기존 기타리스트 였던 하이렐 슬로벡 이 마약과용으로 사망하자, 절친했던 드러머 잭 아이언스도 동시에 탈퇴한다. 그후 잭 아이언스는 펄잼의 초기 드러머를 맡았다. 어쨋든 존은 십대 후반에 명성이 자자했던 밴드에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고. 곧 밴드는 1989 년에 Mother's Milk 발표해 첫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곧 대망의, 1991 년에 발표한 앨범 Blood Sugar Sex Magik 을 통해 세계적인 밴드로 도약하게 된다.

 성공한 앨범의 공연 투어가 한창이던 1993년에 존은 돌연 밴드를 탈퇴한다. 성공한 밴드의 유명세와, 살인적인 스케줄 등..음악 산업안에서 감수성 풍부한 20대 초반의 젊은 예술가가 버티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음악적 자유를 위해서 떠났지만, 돈 많은 혈기왕성한 락 기타리스트에겐 마약 중독이란 깊은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투브에서 그 당시 중독된 상태의 존의 모습을 보면, 정말. 처참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존이 고맙기도 하다. 그 많은 재능있고 순수했던 뮤지션들이 마약으로 죽어갔다. 죽음의 조우를 극복하고 존은 재활치료에 성공했고, 보컬인 앤쏘니 키디스는 존이 마약 구입으로 팔아버린 기타를 대신해, 현재 존의 메인 기타인 (위 사진속) 1962년 오리지날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선물하며, 밴드의 재가입을 종용한다. 


 재가입후 1999년에 Californication 앨범을 발표하며 존의 성공적인 복귀를 이루어냈다. Scar Tissue, Otherside 등등 히트곡을 연발하며, 잦은 밴드 멤버 교체의 역경을 헤쳐나간 밴드나, 삶의 끝에서 허우적 되던 존 자신의 인간 승리라 할수 있었다.

 그리고 2002년
By the Way 범을 통해 더욱 성숙된 하모니를 보여주었다. 이 앨범의 투어로 유명한 공연이 2004년 아일랜드 에서의 Live At Slane Castle 이었다. 고풍스런 성이 옆에 있는 엄청난 관객 규모의 야외 공연 인데, 작년에 이 공연 영상을 인터넷서 다운 받으면서 급격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빠져들게 되었다. 보진 않았지만 같은 해에 영국 하이드 파크에서도 2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그 해 한 장소 공연으로 최고의 흥행을 했다고 한다.꼭 DVD 로 사야겠다. 또 처음이자 마지막일듯한 한국에서도 공연을 했다. 뒤늦게 이들을 안 것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2006년에 그들의 역사적인 앨범, 이제는 존이 다시 탈퇴한 시점에서 더욱 역사적인 앨범이 될 대망의 더블 앨범인
Stadium Arcadium 을 발표한다. 작년 한해 이 앨범을 무수히 많이 들었는데, 내게 있어 이 앨범은 한 5년 전부터 시들어졌던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다시 찾게 해준 고마운 음반이다. 엄격히 말하면 존의 기타 연주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북돋아 주었다. 존의 스트라토캐스터 소리에 감동 받아, 내 생애 첫 펜더 어메리칸 스탠다드 스트라토캐스터도 구입했고, 심지어 어깨 팔뚝에 지미 헨드릭스 이미지의 문신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이니, 또 영국보다 캘리포니아를 가보고 싶기도 하고, 영국산 우울한 음악을 좋아하던 내겐 대단한 변화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더블 앨범들, _비틀즈의 화이트앨범, 스매싱 펌킨스의 멜론콜리 인피니티 새드니스, 클래쉬의 런던 콜링_, 등등과 함께 존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이 스타디움 아카디움 앨범은 대중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40대의 완숙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룩한  밴드 음악의 최상의 완성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 멤버들끼리의 자주 눈 맞추며 웃고, 음악의 하모니를 위해 서로 영혼으로 소통하는 것이 느껴진다. 드럼 앞에서 베이스 플리 와 존은 자주 서로 마주 보며 연주를 하는데 그들의 눈빛은 서로 한없이 존경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 등에서 보면 서로의 연주에 감탄한다고 한다. 93년에 존이 탈퇴할때도 존 보다 형인 플리에게 너와 연주 하는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 이라고.. 속깊이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음악을 통해 최상의 예술, 완벽한 하모니의 예술을 보여준다. 혼신의 열정의 기운이 감상자에게도 전해진다. 그들을 통해 나는 캘리포니아의 투명하고 강렬한 태양을 꿈꾼다. 

 
마약 중독이라는 인생의 큰 암초에서 벗어나 가장 위대한 록 밴드의 역사를 만들어 갔던 그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30대 후반의 그에게 성공적인 솔로 아티스트 커리어를 이루기를 기원한다. 강인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 맑고 순수한 눈과. 어눌한 말투에서 보이는 천성적 여림이, 그의 연주와 함께 천재성을 엿보이게 한다. 다시는 마약에 빠질일은 없겠지만 오래살아서 꾸준히 좋은 음악, 연주를 들려주시기를..


 여담이지만 내가 존 프루시안테를 좋아하게 된 복선 같은 일이 있었는데, 반스앤노블 서점에서 애니 레보비츠의 뮤직 이란 사진집을 보다가 아래 사진을 보고 버팔로 66, 브라운 버니를 만든 감독겸 배우, 뮤지션이기도 한 '빈센트 갈로' 라고 알고 있었다. 그 사진집은 작업실 공간의 뮤지션들을 찍은 것이었는데 특히나 아래의 빈센트 갈로 라고 착각한 사진은 오래 보았던 기억이 있다. 팔의 흐릿한 문신 자국들과 우수에 찬 표정이 묘한 울림을 주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