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째날의 일요일. 오후 3시에서 4시사이 고요한 무더위는 주택가를 엄습하고 있었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소화를 시키느라고. 머리로 올라가는 피는 굼떠지고 피부의 호홉은 대기의 습기에 지쳐간다. 시간이 멈춘듯. 계속 이어질듯한 이 일요일 오후의 무료함. 이 평온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내심.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무서워 정적을 깨고 컴퓨터를 킨다. 가벼운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폴더를 뒤적이다가 너바나의 92년 레딩 페스티발의 공연 영상을 튼다. 커트 코베인의 열창. 너바나의 가장 화려했던, 성공의 정점에서의 꽤 괜찮은 공연 이었지 않나 싶다. 일요일 오후의 정적과 무료함을 깨우는 커트 코베인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이 인물에 대한 애정을 다시 뒤돌아 보게 한다. 

 
 해는 지글거리고. 커트의 윙윙대는 기타와 몸부림은 내 삶의 열정에 작은 씨를 뿌린다.
삶은 땅에 맞닿아 있는 거니까, 죽으려 몸부림 쳤던 옆 사진속 커트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발없는 새처럼. 부유하다 가버린..
 열반, 해탈 이라는 밴드명 처럼.. 펑크 로커 로써 그는 자신의 삶에 철저히 저항하다 열반에 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영화는 커트의 음성 다큐멘터리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죽기 1년전 여러 차례의 인터뷰들을 그의 삶의 궤적에 따라 조합해서 들려주고, 영상은 다양한 공간들. 그가 자란. 애버딘.올림피아, 시애틀,,등등의 모습과. 학교 공간. 도서관, 기타샵, 등등의..보통 사람들의 편린들, 가끔 애니메이션도 섞여서 보여준다. 영상은 스틸사진을 감상하는듯한 아련함이 서려있다. 


 커트의 나즈막한 육성으로 들려주는 삶은 시적인 영상과 어울려 한 편의 인생 작품이 된다. 그는 록스타 역사상 가장 정점에서 화끈하게 자살한, 그래서 더욱 신비화 되고, 아이콘화 된 전설이 되어버린 인물이었다.

 외계인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삶은 항상 우울하고. 화난 상태만은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들 처럼. 웃고, 유머스러운 점도 드러나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한. 불행. (이집저집 떠돌아 다녔던 삶.노숙) 과. 수시로 찾아오는 극심한 복통으로 인한..마약 복용..중독의 결과가 삶의 질을 나락으로 빠트렸고, 차라리 죽는게 낮다는 말을 자주하게 된다.

 커트 코베인에 관한 책은 그동안 많았다. 그의 삶을 조망하는 평전부터. 일기장을 그대로 스캔한 책 까지. 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는 많았지만. 그의 목소리로 듣는 이 영화의 감흥은 조금은 남달랐다. 인터뷰 말미에.. 그의 부인인 커트니 가 애기 젖병좀 가지고 오라는 일상의 대화..가 매우 묘한 울림을 준다. 이 인터뷰 1년후에 커트의 유서 마지막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 모두들 고맙다. 너무 불안정하고 침울한 나 자신에게 열정이란 더 이상 없는지 모르겠다.
기억해주기 바란다. 천천히 사라져 버리기 보다는 한꺼번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내가 과연 다른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모든 사과
그 외 어떤 말을 내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 다 동성연애자들 뿐
과연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내겐 그럴 권리가 없다
내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는 바로
모든 변명

태양 속에서
태양 속에서 나는 완전한 하나임을 느낀다
햇빛 속에서
찬란한 햇빛 속에서
난 결혼했다
그리고 묻혀 버렸다

내가 당신(들) 처럼 쉽게 즐거워 하는
그런 인간일 수만 있다면
하지만 찾아낸 내 둥지는 소금으로 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었다
내가 그 모든 비난을 달게 받겠다
파도의 하얀 물거품 같은 나의 수치를
냉동고의 불로 검게 그을리고
그녀의 적을 태운 재에 나는 목이 멘다

All in all is all we are  궁극적인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

                                     written by Kurt Cob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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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발매 20년째가 되는 록음악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이 앨범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 앨범은 내 삶에서 사춘기 시절을 정확히 관통한다. 예민한 감수성의 학창시절에 역사가 될 이 음반을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누리게 되는 행운을 거머쥔다. 음악팬으로써 비틀즈의 음반들을 활동할 당시에 못 경험했거나, 77년 산울림이 '아니벌써'를 처음 TV에서 불렀을때 그 충격을 동시에 못느꼈음을 항상 아쉬어 했는데, 이 새로운 X세대 출현의 송가와 같은 이 앨범은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내게 변화의 혼돈에,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 강력한 마약 이었다.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폐부를 휑하니 관통해버렸다. 모든 젊은 영혼들에게..(이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그것은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대책없이 지글거리는 시끄러움과 공허한 외침으로..90년대의 이정표가 되었다.


 90년대 초반 Nirvana(이하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이 울려퍼졌을때 역사는 급변하고 있었다. 이미 공산주의는 와해돼, 오랜 이념 대결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천안문 사태를 통해 중국은 서방에 빗장을 열었고, 그리고 이라크 전쟁 ( 걸프전 )을 필두로 테러리즘과 신자유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80년대 냉전의 끝자락에서 공고히 했던 모든 가치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레이건이즘을 통해 더욱 억눌렸던 감정은 결국 LA폭동으로 폭발했고, 그 와중에 사회와 모든 문화 예술은 해체의 한가운데 있었다.
 대표적 마초 영웅주의 영화 록키와 람보로 대변되는 80년대 는 90 년대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과 저수지의 개들) 등장으로 새로운 의미, 패러디, 조합하기, 무정부적 해체로써 반형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동시에 너바나의 등장은 음악 뿐만 아니라, 패션, 삶의 태도나 의식에 있어서 더욱 혁명적이었다.

 가죽 스판덱스 바지에 짙은 화장과 긴 파마머리 로 대변되는 80년대 수많은 마초적 헤비메탈 밴드들은 찢어진 청바지와 플란넬 셔츠, 스니커즈 운동화, 떡진 단발머리의 커트 코베인이 이끄는 너바나의 2번째 정규 앨범 'Nevermind (1991)' 등장으로 한 순간에 자취를 감췄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앨범은  'Nevermind' 에 1위 자리를 내 줬고, 순식간에 그것들은 고리타분한 것이 돼 버렸다. Smells like Teen Spirit 이 MTV를 통해 쉴새 없이 나오던 91-92년 사이 기존의 주류를 장식했던 LA메탈은 너무나 급격히 패기처분 되었다. Nevermind 를 통해 강제로 마침표를 찍은 셈이었고, 그 반대급부로 90년대 다양한 음악 장르가 촉발하게 되는 시발점 이었다. 해체라는 시대정신의 한 가운데서 너바나는 활화산 처럼 폭발했던 것이다.

Punk Rock 의 효시가 되는 Sex Pistols 의 단 한장의 앨범 (1977)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신경쓰지마 잡놈들아! 여기 섹스 피스톨스 가 있잖아!) 에서 이름을 따온 Nevermind 는 말그대로 극도로 개인주의화 된 신세대들의 냉소적인 가치관을 드러낸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득세하는 물질적 풍요속에서 변두리 하층민의 삶을 통해 펑크적 혁명을 꿈꾸었다. 결국 돈과 마약, 자괴감에 무너질 우울한 꿈을..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 ( 27에 요절함으로써 전설이 되어버린,) 은 워싱턴주 애버딘 ( 시애틀 외곽의 촌구석 ) 에서 벌목공의 아들로 태어나 8살에 부모가 이혼함으로써 그의 삶은 180도 뒤바뀌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친척집과.친구집, 심지어 강가 다리밑에 노숙하며 전전했던 그는 백인 안의 흑인처럼 불우하고 소외된 심정을 강력한 전복을 외치는 펑크락을 들으며 해소했다.

 펑크락은 기존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전복시키는 태도이며, 음악의 한 형태이다. 파워코드 3~4개로 단순한 리듬과 비트 속에서 3분 안에 짧고 강렬하게 그리고  반복적인 가사의 구절이 특징이다. 70년대 영국의 극심한 경제불황에서 청년들은 분노하며 무정부주의를 외치며 극단적으로 표출한다. 레드 제플린 같은 기업화된 공룡같은 밴드들은 타파해야할 목표였다. 70년대 주류 밴드들 같이 고도의 테크닉적 연주력과 예술성은 그들에게서 30분만에 기타를 배우고 바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함과 자기 실천 정신 울부짖음과 퍼포먼스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충격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위에 언급한 섹스 피스톨스가 펑크의 처음이자 그 자체였다.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Rock 이라는 큰 범주에서 항상 펑크 는 기성사회에 물들어가는 정신에 가하는 일침이다.

80년대 MTV의 등장과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팝스타들. 7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디스코의 열풍속에서 Rock 음악씬은 메탈리카 같이 더욱 거칠고 공격적이며 테크닉의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반면, 본 조비 같이 대중적인 팝 메탈 지향적인 밴드가 득세했다. 그들은 돈 방석에 올라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자본주의의 갖은 쾌락을 무제한으로 즐기는 위치에 섰다. 80년대 후반 LA에는 마약과 섹스에 점철된 그런 밴드들이 무수했다. 그런 와중에 언더그라운드 씬 에선 70년대 펑크,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의 영향을 이어받은 뉴 웨이브 밴드들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었다. 너바나가 펑크락으로써 직접적인 영향은 80년대의 소닉 유스와 픽시스 였다. 파워 코드 몇개로 이루어진 단순함과. 거친 기타 디스토션 사운드가 특징인 그들에서 너바나는 좀 더 훅(끌림)이 강한 멜로디와 리프(기타의 반복구절)로 묘한 매력을 이끌어냈다. 파워넘치는 드럼과, 시끄러운 기타 노이즈 속에서 몇 번 들으면 허밍할수 있는 흡인력 강한 멜로디의 노이즈 팝 이었다.
_ 너바나의 데뷔작 Bleach (1989)( 600달러의 제작비로 시애틀의 Subpop 이란 인디레이블에서 발매 ) 는 그에 비해 블랙 사바스( 70년대 헤비메탈 밴드 ) 의 펑크적 재해석으로 거칠지만 순수한 매력이 있었다._

너바나는 곧 메이저 회사인 게펜과 계약하고 명 프로듀서 부치 빅의 감독 아래 2번째 앨범이자 메이저에서 첫 앨범인 이 Nevermind 를 만든다. 게펜은 완벽한 상품으로, 가정이 파탄난 음지에서 자란 순진하지만 거친 그들을 팔아 먹었다. 커트 코베인의 평상시 복장인 찢어진 청바지, 스니커즈, 레이어드 룩, 은 너바나 사운드의 특징인 지저분한 기타 노이즈 와 함께. 그런지 Grunge Rock 이라 불리며, MTV를 통해 청년문화에 거침없이 팔려나갔다.
 너바나의 대중적 성공과 함께 동향의 씨애틀 밴드들인 펄잼,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는 동시에 메이저로 급부상하게 되고, 그 시애틀 그런지 씬은 얼터너티브 록 Alternative (대안의 록) 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기존의 헤비메탈 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급변하는 역사와 마찬가지로 80년대와는 완전한 단절이었다. 음악, 패션, 가치관 모두 해체되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세대 X 세대라 불리는 그들은 소외, 마이너리티 감성, 사회의 부조리에 거침없이 분노하며 희망없어 보이는 사회적 약자들인 청년들을 대변했다. 대책없이 지글거리는, 혼돈의 규정할 수 없는 시대정신을 그런지 음악으로 불살랐고, 메이저 음반사들은 그들을 순식간에 주류 락 스타로 만들어 놓고 짧은 시간에 전 세계를 그런지의 광풍으로 몰아 넣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들이 공격하고 타파해야 했던 주류 음악의 위치에 서자 혼란스러워졌다.  그 성공이 기대이상으로 너무 커서 그들은 곧 방향성을 잃고 점점 와해되기 시작한다. 펄잼은 뮤직비디오 제작을 거부하며 저항했지만 티겟마스터란 대기업과 싸우고, 에너지를 소진했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더욱 마약에 찌들어 갔다.

 결국 커트 코베인은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에 입각한 문화 자본의 논리에 철저히 이용되었다 . 거대한 부는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파멸해갔다. 다음 스튜디오 앨범 In Utero (1993) 을 통해 펑크의 정신을 지키려 발버둥 쳐 보지만 이미 그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다음해 1994년 4월 초에 27살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집에서 엽총으로 머리를 날려 버린다. 93년 11월 뉴욕에서의 MTV 언플러그드 공연은 자신이 준비한 장례식인 셈이었다. (커트가 요구해서 무대위에 많은 백합 꽃과 촛불을 배치했다고 한다.) ( Lylic 카테고리에 라이브 있음 )  (옆의 롤링스톤스 잡지 커버 속 커트의 티셔츠 문구는 기업화된 잡지는 여전히 역겹다 라고 씌어있다.)
 커트의 죽음은 이전 세대의 요절한 천재적 뮤지션들 (다들 27살에 죽은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 처럼 전설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베스트 셀러 가 될 것이다. 

 작년에 코디최 선생님의 강의중  미국의 자본이 문화를 어떻게 팔아먹느냐란 실체를 자신의 경험에 비춰 이야기 해 주었을 때, 머리를 스친 생각이 커트 코베인도   그렇게 이용당하고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까지 마약에 중독됐을때, 음반회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죽어서 전설이 되게끔 방치한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잘생긴 인물에 좀 더 관심이 있다면 커트가 총을 쏘기전 바로 전 시간들을 묘사한 영화 The Last Days 를 보시길 바란다. 구스 반 산트 감독.)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때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AFKN 방송을 틀었다. 가이딩 라이트라는 미국 드라마를 내용도 모르면서 즐겨 보았는데. 단지 야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 였다. 그리고 이어서 아메리칸 톱 텐 이란 음반 순위 프로그램에서 차트 1위를 한 Nevermind 앨범의 독특한 자켓을 보았고. Smells like Teen Spirit 을 뮤직 비디오를 통해 처음 듣게 되었다. 건스 앤 로지스를 통해 록 음악을 입문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새로운 느낌은 충격이었고 강렬했다. 내 안에서 혁명의 기운이 씨앗을 품는 사건이었다. 내면의 고요함,먹먹함 그 순간에 내 삶의 펑크는 심어졌다. 

P.S.
Smells like Teen Spirit 가사 중 일부
 ‘난 내가 왜 맛보았는지 잊어버렸어. 아, 그래. 그것이 날 웃음 짓게 한다고 생각해. 난 그것이 어렵다는 걸 알아냈어. 그것은 알아내기가 어렵지. 아, 괜찮아. 무엇이든지 신경쓰지마... 그것은 덜 위험하지. 우리가 여기 있어. 우리를 즐겁게 해줘. 흰둥이, 모기, 나의 성욕, 부정, 부정, 부정, 부정…….’

 이 앨범 자켓 사진은 간결하게 많은걸 말해준다.
 저 사진속 애기는 성장해서 똑같이 다시 찍었다.

 미키루크가 주연한 영화 '더 레슬러' 에서 영화속 주인공은 커트 코베인이 다 망쳐 놓았다고 하면서 80년대의 마초적 헤비메탈 전성시대를 그리워한다. 나는 커트의 세대이지만 Guns N' Roses 만은 매우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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