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없어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조근조근하게 일갈한다. 시를 읽지도 쓰지도. 가슴에 품지도 않는 이 메마른 사회에 시를 통해 상처를 보듬고 제대로 보자고 한다. 주인공의 말대로 '시는 참 어려워요..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현실의 콘크리트삶 속에 시는 유기되었다. 상실된 감성은 나만이 이 지구상의 존재라는 이기적 착각으로 모든것에 상처를 준다. 풀 한포기의 구기진 생명이나. 꽃 한 봉우리의, 한 때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강간은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가 없는 세상은 폭력이다. 보이지 않은 폭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보듬어주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세상을 움직인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은 시인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던 킹콩도 석양를 보며 절절히 아름다워 하지 않는가. 시를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이 시대의 정신이 비극을 낳았다. 우리시대의 자화상이자 경고이다. 이창동 감독의 모든 작품이 이 리얼리즘에 입각해 우리 마음에 비수를 꼿는다. 저릿한 아름다움이 있다. 삶을 보는 깊이와 관조에 나는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하고 성은에 망극할 따름이다. 그는 진정한 작가이다. 

 영화의 모든 부분이 다 좋았지만 특히 더 좋았던 것은 소리 였다. '멋진하루' 이후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섬세한 소리를 담은 영화는 흔치 않다. 이어폰만 꼿고 다니는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는 소리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감각의 정화를 이루려고 하는 듯 하다. 못 느끼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그것은 자신의 감성에 쌓였다. 

 영상 또한 공기감을 잘 살려내었다. 장면마다 그 공간의 습기,습도,기온 까지 표현된 그 질감은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다웠다. 태양이 내리쬐는 일광의 장면에서 약간 푸른빛이 도는게 후지필름을 썻을꺼 같은 생각이 든다. 난 오히려 그것이 한국의 여름 느낌에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따듯한 앰버 가 낀 영상을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선 서슬프런 감정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색감은 탁월했다. ( 아멜리아 같은 영화. 너무 앰버가 강해 눈 피곤해서 못 보겠지 않은가.ㅋ)

연기 또한 이창동 감독의 완벽한 집요함이 드러난다. 연기와 사실의 애매한 경계들. 감상에 빠지지 않는 절제등. 감독의 확실한 위치에서 자칫 튈수 있는 부분을 전체에 녹아들게 한다. 이문열 스럽게 생긴 그 아저씨,중년형사의 연기는 꽤 인상깊었다. 주인공 윤정희의 딸로 나오는 배우는 대사도 없고 후반부 한 컷에서만 나오는데 그 삶의 퍽퍽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피해자 엄마도 그렇고. 반면에 남자들은 특히 가해자 아버지들의 그 뻔뻔하고 속물적인 말투와 표정은 배우들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다.
 
 음악은 특히 기억나는게 없는데 영화 음악이 기억나질 않는게 최상의 음악이다. 심지어 크레딧 올라갈때 무슨 음악이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영혼의 먹먹한 저릿함이 엄습했다.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렇다. 시는 참 쓰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포기하지 말자. 
 시가 떠오르는 그 순간이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으니 캄캄하다. 눈을 뜨니 눈부신 날들이 가득이다. 오늘 하루 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다. 그러니 헛투로 보내지 말자. 2시간 반이나 흘렀던가. 가슴이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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