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링크를 타고 유투브에서 펄프의 2011년 레딩 페스티발 공연 영상을 감상했다. 감동에 겨워 심장이 떨렸다. 다시 재결성 공연을 했었구나 라는 뒤늦은 회환의 반가움. 내겐 90년대의 밴드들 음악에서 청춘의 노스탤지어를 너무 진하게 느낀다. 10대와 20대 사이에 들었던 모든 음악은 감성의 8할 이상은 차지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90년대의 브릿팝 장르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열광했던 뮤지션들의 사상과 태도, 감성과 패션에서 많은 부분 이루어진다. 


 90년대의 브릿팝은 제2의 브리티쉬 인베이젼(영국의 침공)이라 불릴정도로 기라성 같은 밴드들의 전성기 였다. 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 버브,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라디오헤드 등등의 음악은 60년대 비틀즈의 영광을 세분화 시켰다. 나는 90년대의 브릿팝을 통해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 뿌리를 찾아 차츰 클래식 록.. 블루스를 듣게 되었다. 이제는 90년대의 음악은 새로운 모던 클래식이 되가고 있는 것 같다. 전성기의 15~20년 후, 중년이 되었지만. 음악의 에너지와 열정만은 여전했다. 레코드. 청춘의 열기를 봉인시키는 작업. 그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 노래들을 연주하는 순간은 젊음의 엑기스를 들이마시는 것일 게다. 



- It, 1983

- Freaks, 1987

- Separations, 1991

- His N Hers, 1994

- Different Class, 1995  <--

- This Is Hardcore, 1998

- We Love Life, 2001


 펄프는 영국 쉐필드에서 보컬 자비스 코커에 의해 결성되었다. 1977년 자비스가 15의 나이에 밴드를 만들었고, 이런저런 멤버 교체후 6년만에 첫 앨범이 나왔다. 스쿨밴드에서 시작해 무명의 시절을 거쳐, 이름을 알리게 된 시점은 1994년 네번째 앨범 부터다. 그리고 한해 후, 이 앨범 디퍼런트 클래스 앨범부터 대박을 치게 된다. 그들이 전국구 스타가 된 계기는 1995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발의 헤드라이너로 성공적인 공연을 하면서다. 원래는 스톤로지스가 그날의 헤드라이너 였는데, 갑작스레 취소되어 그 대타로 섰던 무대에서 그들의 오랜 무명 생활을 극적으로 역전시킨다.  


95년 이래로 자비스는 음악,연예관련 모든 잡지 표지를 도배하다시피 한다. 190 정도의 키에 삐쩍 마른 몸매. 고도 근시의 눈과 돋보기 수준의 뿔테 안경. 좀 찌질해 보이는 듯 하지만. 핸섬하며, 연약한 듯 하지만, 무대에선 미친듯 발광하는 또라이 기질.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의 가사다. 독특한 삶의 궤적과 감성을 위트어린 슬픔으로 버무려, 일상의 숨겨진 비수를 끄집어 낸다. 중얼중얼 이야기 하는 노래 가사는 일상의 보편적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시로 승화시킨다. 실업수당을 타며, 찌질하거나 궁색했던 삶의 경험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찬가 같이 다가온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너무나 다 좋아서 마치 베스트 음반을 듣는 느낌이 든다. 커먼 피플이나 디스코2000이 대표곡이긴 하지만, 소위말하는 명반들은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들었을때, 감동이 밀려온다. 뭔가 경쾌하고 싸구려 디스코의 경박함의 기운아래 보석같은 멜로디와 가사는 펄프만의 개성을 대중 예술로 만들었다. 


 뛰어난 음색과 가창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자비스의 보컬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비음의 저음과, 버거운 고음의 애절함은 삶의 무거움의 아둥버둥을 그 자체로 드러내는듯 하다. 또 무대에서의 제스춰와 모션등은 스타의 그것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풋내와 가까워 보인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자비스의 인터뷰를 통해서 켄 로치 감독을 알게 되었었고, 나는 펄프의 음악과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그들은 나의 우상이다. 




 오늘 이 앨범을 반복 청취하면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본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최상의 결과물이라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펄프는 메가 히트의 이 앨범 다음으로 또다른 명반인 디스 이즈 하드코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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