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이엠의 음반은 90년대의 수많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의 명반에 밀려 자주 듣지 못했다. 명반은 그 예술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 법인데, 미세 먼지가 휩쓴 어느 겨울날 주말, 무심코 먼지 털어 들어본 이 앨범은 감동이었다.  

 알이엠은 80년대 초부터 활동해온 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겐 대 선배 같은 존재다. 

 70년대 후반의 디스코 열풍과 MTV의 시작으로 대형 팝스타의 등장. 헤비메탈 밴드들의 득세 등, 80년대의 음악씬은 정치의 우익 보수화에 맞물려 뮤지션들도 재벌이상의 돈과 지위를 가졌다. 대형 스타디움 공연과 초대형 리무진, 마약과 섹스는 그러한 천한 자본주의의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런 화려한 뮤직 비즈니스 세계의 이면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수많은 지방 대학 축제며 동네 파티며,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소박하게 포크,컨트리,록 풍의 음악을 연주한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이 R.E.M. 이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자기들의 음악을 하는 그들에겐 오랜 무명 생활은 당연지사. 그당시 뜰려고 음악을 했다면 강력한 꽃단장 헤비메탈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가고  90년대 들어 일련의 신세대 음악군이 등장하면서, 알이엠은 새로운 음악군의 선구자적인 존재가 되었다. 세상이 뭔가에 홀려 있어도 묵묵히 자기들만의 토양을 일군 탓이다. 



  R.E.M.이란 밴드명은 (래피드 아이 무브먼트)의 약자이다. 램 수면 상태(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얕은 수면 상태에서의 빠른 안구 운동)를 말한다. 수능 시험 볼 때, 영어과목 문항 중에 R.E.M.을 설명하는 지문이 나왔었다. 나는 이 밴드 때문에 그 뜻을 알고 있어서 지문을 독해하지도 않고 대번에 정답을 알 수 있었다. 매우 귀중한 시간 절약 이었다. 또 중학교 땐, 동네 조그만 음반 가게에서 알이엠 테잎 있냐니까 R.ef 테이프를 줬던 기억도 난다. 


 이 음반의 제목인 '오토매틱 포 더 피플'은 그들의 고향에 있는 한 레스토랑 주인장의 표어 였다고 한다. 누구나 무엇을 주문하던 '오토매틱'이라고 외쳤다는데, 뭔가 근면하고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 드러나는 삶의 해학이 엿보인다. 알이엠의 음악도 그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을 천명하는 것일 게다. 


 이 음반은 그들의 여덟번째 음반인데, 바로 전작 '아웃 오브 타임'을 통해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나 존재가 급부상했었다. '루징 마이 릴리전''샤이니 해피 피플'같은 히트곡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앨범이었는데, 그 후속작인 이 음반은 그런 성공의 축포를 터트리는 대신, 차분한 발라드의 성찰적인 분위기가 다분하다. 


 동시대 다른 밴드 들에 비해 그들은 꾸밈이 없다. 음악적으로나 외향적 스타일 면에서도 너무나 담담하고 소박하다. 너무 심심할 정도여서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해 세계 최고의 록밴드 위치에 오른 U2를 더 좋아했었다. 그들 다 헤비메탈시기에 모던록의 텃밭을 일군 얼터너티브의 선구자라고 말 할 수 있다. 


 알이엠의 음악을 종종 들어왔지만 유독 요즘에서야 또다른 발견을 한 기분이다. 특히 이 음반은 동양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폭의 여백미학이 일품인 동양화를 보는 듯한 감흥이다. 높은 성량과 화려한 기교가 없어서 더욱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U2 같이 화려한 색채의 마술을 부리듯한 소리와 보노의 드라마틱한 보컬은 즉각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알이엠의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은 모든 집착을 내려놓은 고승의 경지 인 것 같다. 비음섞인 음이탈스러운 보이스는 오히려 그만의 개성이다. 알이엠과 U2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재밌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한의 정서와 미국 시골의 소박한 감성들이 어떻게 소리의 스타일로 구현되는지..엿 볼 수 있다.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는 가장 아름다운 게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동성연애자들이 탐탁지 않지만 당시 보수적인 록 씬에서 그의 커밍 아웃은 참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왼쪽 - 마이클 스타이프 

 지금 R.E.M.은 해체한 상태다. 드러머가 중간에 탈퇴하고 오랬동안 삼인조로 활동했는데, 기어코 밴드는 와해되었다. u2가 태양이었다면 알이엠은 달같은 존재였는데, 그 은은한 달빛의 여운이 너무나 아쉽다. 생전 커트 코베인도 알이엠을 매우 좋아했고, 자살하기전까지 마이클 스타이프와 공동작업 말이 오가며 전화 통화도 오래 했다고 한다. 그가 자살한 화실 안의 CD 플레이어엔 이 '오토매틱 포 더 피플' 음반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들에서 위로를 느꼈을까. 많은 이들이 음반의 수록곡 '에브리바디 허츠'를 들으며 위안을 가졌을 것이다. 당시 음악성 있는 밴드들은 뮤직비디오도 예술이었다. 

유투브 everybody hurts 검색 제일 처음 공식 뮤직 비디오. 

http://www.youtube.com/watch?v=ijZRCIrTgQc

 희대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 에 대한 노래 '맨 오브 더 문'은 가장 좋아하는 알이엠 노래다. 짐 캐리 주연의 동명의 영화도 생각난다.


 겨울밤 차를 마시며 앉아 이 음반을 듣다보면 의식이 고양되는것 같다. 너는 나에게 차분한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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