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밑에 비브람 이야기 말미에 한바그 알라스카에 대해 리뷰를 쓰겠다고 예고했는데 이제서야 펜을 들었다. 단지 이름만 언급했을뿐인데 그동안 인터넷 검색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 그 허무한 낚임에 심심하게 유감을 표한다. 짧게나마 헛탕친 시간에 대한 보답으로 글을 시작한다. 객관적인 정보의 사용기에 치중하기 보다 이 등산화와 함께한 시간의 주관적 회상속에서 리뷰는 기능할 것이다.


 1921년 독일 뮌헨에서 가죽 신발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한바그란 성을 가진 남자로부터 시작된 나의 등산화는 건장한 아리안족의 기풍이 느껴진다. 2010 년 현재의 싸이버적 늬앙스와는 정 반대로 1900 년대 초 중반 알피니즘(알프스에서 유래된 근대 산악운동으로서의 등산) 의 정점에서 이어진 투박한 멋을 간직한다. 짐작하건데 이 한바그란 회사는 나찌 독일군의 군장품을 만들기도 했을것이다.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나찌 독일군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첨단의 기능 요구, 알피니즘의 국가 대항전(영화,'티벳에서의 7년' 참고)의 경쟁 속에서 이 등산화의 성능은 진일보 했던 것이다. 전쟁을 통한 과학의 발달이 이 특수한 신발에 기술이 접목되었고,  대중들의 야외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특수한 목적의 기능적 등산화는 더욱 진화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서 그러던데  독일인은 처음 사귀기는 힘드나 한 번 친구가 되면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신의가 깊다고 한다.(하도 어릴때 읽어서 지금도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와 이 독일산 등산화의 관계가 그랬었다. 거금을 들여 장만한 육중하고 투박한 이 신발은 처음엔 뮌헨의 우중충한 기운으로 내 발에 고통을 주었다. 고급 등산화의 소유에 이미 자연의 오지를 다 경험한듯한, 명품족 환상은 고사하고, 등산의 다짐과 이 신을 신고 밡을 자연의 설레임은 가차없이 깨졌다. 걷는게 아프니까. 매순간 실존의 자각이 욱신거린다. 한발 한발. 직립보행의 인간이 제대로 걷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날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반전이었다. 자연속에서 내면의 평화와 건강증진의 기대는 산 기슭에 도착하기전 도시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 사라졌다.

 길들여지지 않아 여전히 아픔이 남아있던 어느해 2월. 눈덮인 설악산을 올랐다. 북한산만 종종 다닌 초보인 내게 첫 도전이었다. 전문 등산 배낭. 바지, 스패츠, 고어텍스(방수)자켓없이 평상복과 등산화, 한쌍의 스틱으로 감행한 눈길 산행은 결국 이 신발이 내 신체의 일부처럼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춥고, 외롭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구간인 오세암-봉정암 코스에서 난 진심으로 신발에게 감사했다. 다른 등산객도 전혀 없었고, 눈은 퍼붓는데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은 내리는 눈에 점점 희미해졌다. 길을 잃으면 바로 죽음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출발하는 길의 문턱에 끈으로 가지말라고 얽기섥기 대충 설치돼 있었고 A4용지에 한 달전 2명이 조난당해서 사망했다는 경고가 씌여 있었다. 용감하게 그 선을 넘은 것이 후회막심 이었다.


 헉헉대며 철퍼덕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면서 쉴때, 체온은 급격히 내려가 추워졌지만 등산화 속의 발만은 온기가 지속됐다. 또 무릅까지 쌓인 눈과의 오랜 사투에 열이 난 발은 양말이 땀에 젓지도 않고 외피 가죽이 눈에 젖었으나 방수는 확실했다. 고어텍스의 확실한 성능이었다.
 눈보라 치는 내설악의 엄청난 장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사이 머리가 아니라 본능적인 발길에 의지해야 했다. 그 발을 감싼 이 등산화는 지극한 신뢰가 되었다. 무생물인 사물에 친구처럼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설악산에서 인상깊은 산행 이후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발과 고착됐다. 착화감이 매우 좋다. 무거운 중등산화이지만 걷다보면 무게도 잊고 그저 발을 자연스레 앞으로 내밀어주는 느낌이다. 마치 도베르만 핀세르가 윤기있는 가죽을 실룩거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 같다.

 그 후 어느해 가을에 첫 지리산 종주를 위하여 대형 배낭을 샀다. 3일치 식량과 물품을 챙겨 어깨에 짊어지어 등산화를 신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척추를 타고 내리는 무게는 다리를 거쳐 등산화 고무창에 전달되었는데, 이 때 또 이 신발의 숨은 가치를 알게 되었다. 평소 가벼운 산행에선 못 느꼈던 밑 창의 탄성이 무거운 배낭무게에 의해 살아났다. 이 신발의 진짜 목적(backpacking)이 드러났다. 장거리 산행에서 진가가 발휘됐다. 오래 걸어도 발의 피로감 보다는 다리 전체의 뻐근함이 등산의 즐거움을 준다. 중창의 안정적 구조, 튼튼함이 발의 피로를 최소화 해 주는것 같다. 그리고 이 신발의 기능중 하나가 에어 펄스 시스템 (신발 내부의 더운 공기가 발목쪽으로 순환되어 빠지는 구조) 이 있는데 이런 것은 과장광고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과학이 적용되었는지 산행 후 신발 윗 단 양말은 땀으로 많이 젖어 있는데 발등 발목 등은 뽀송했다. 물론 종아리에서 타고 내리는 땀이 양말 윗단을 젖게 했겠지만, 홍보 문구의 기능인 에어 펄스 시스템의 작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이제 나는 이 등산화를 단지 신발(shoes)로 불리어지기 보다 장비(equipment)라고 말해지게된다. 가장 중요한 등산 장비. 신발의 선택이 등산의 범위를 넓힌다. 언젠가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꿈꾼다. 독일인의 무뚝뚝함이 느껴지는 이 말없는 가죽 장비는 내 꿈을 견인하는 소중한 동반자이다. (www.baedonghak.com)

P.S.저 밑에 비브람 이야기가 어느 등산 카페에 무단으로 출처없이 게재된걸 보았다. 발췌된 글의 크레딧 조차 지우고 올렸더라.

 나의 second 등산화는 로바 Lowa 중등산화이다. 좋은 등산화이긴 하나 한바그 알라스카에 비해 이건 등산화를 신었구나 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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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좋아하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비브람은 이태리의 비브람이란 사람이 만든 신발 밑창을 말한다. 등산을 처음 시작하면 제일 중요하면서도 최소한 필요한 것이 등산화 인데 그 때 아마도 비브람, 비브람, 많이 들어보게 되는 소리이다. 보통 수입산 중등산화나 국산 고가의 제품에 이 비브람 창이 많아서 비브람창에 대한 어떤 기대와 환상에 빠질수가 있다. 나 역시도 그랬고, 처음 시작하는 대부분이 그럴것이다. 비브람이 무조건 좋은것이 아니라 상황과 용도에 맞게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취지이다.

* 등산화의 밑창이 쇠징을 박은 가죽창에서 고무창으로 바뀐 것은 1935년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가죽창에 쇠징을 박은 유럽에서 비롯된 구두를 신고 등산을 했으며, 암벽등반과 일반등산용으로 구분해 징을 박는 방법과 징의 종류가 달랐다.

 가죽창에 쇠징을 박은 등산화는 네일드(nailed) 부츠 또는 나겔(nagel)이라고 불렀다. 트리코니(tricouni)라 불리는 쇠징은 여러 형태가 있었는데 강도가 바위보다 강했다. 현재의 고무창처럼 마찰력을 높여 지지력을 얻는것이 아니라 크램폰(아이젠)의 발톱이 얼음 속을 파고 들듯이 쇠징이 바위를 파고들어 지지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한때는 삼을 꼬아 짠 것을 가죽창 바닥에 붙여 마찰을 높인 신발도 암벽 전용화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일반 등산용에는 강도가 무른, 무거(mugger)라는 쇠징을 사용했는데 쇠징은 징의 강도와 박는 배열에 따라 암벽용과 일반용으로 구분해 사용했다.

 비브람창은 1935년 이탈리아의 유명 등반가인 주스토 제르바수티의 요청으로 비토리오 비브람에 의해 고안되었다. 쇠징을 박던 배열에 따라 고무창을 떠서 만든 제품으로, 이 고무창의 제조회사 이름 Vidram SPA of ltaly)을 상품명처럼 그대로 부르게 된 것이다.

 비브람창은 같은 해 에일프르아(ailfroide. 3949m) 북서벽 초등 때부터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이 등반에서 제르바수티는 비브람창을 댄 등산화가 쇠징 등산화보다 훨씬 가벼워서 빨리 오르다 보니 지쳐버릴 지경 이었다고 뛰어난 기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이 고무창의 놀라운 기능에 밀려 무겁고 투박한 쇠징 등산화는 점차 사라졌다.

 고무창의 출현은 클라이머들에게 커다란 복음이었고, 이후 비브람창은 급속히 퍼져 1938년 리카르도 캐신의 그랑드조라스 워커스퍼 초등과 같은 역사적인 등반에 사용되면서부터 진가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비브람창만 별도로 수입해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마모가 된 창을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

 위 사진의 비브람은 푸오라 란 창인데 현재 내 등산화에 적용돼 있고 비피다와 함께 가장 많이 보급돼 있는 종류이다. 군인 전투화가 저 푸오라를 카피해서 만든것이다. 패턴도 똑같지만 재질이 군화는 플라스틱 같이 매우 딱딱한 정체불명의 짝퉁이다. 매일 아침 그 플라스틱 창 같은 군화를 신고 아침 구보를 하는 군인들이 참 불쌍하다. 요즘 군화는 좋아졌을래나..

 저 비브람 창은 국내 산에는 특히나 서울의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화강암 바위로 이루어진 산에는 맞지가 않다. 지리산이나 한라산 등지가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의 자갈이 많은 지형등에 적합하게 설계된 창이다. 간혹 비오는 날 북한산에서 방심하단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비에 젖은 화강암은 어떤 창에서건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나 비브람은 많이 미끄럽다. 대신 단단해서 내 마모도가 좋다. 접지력과 마모도는 상관관계래서 그 둘을 다 좋게 하는게 오늘날 기능 신발의 관건이다. 자동차 타이어도 마찬가지이고..

 또한 백두대간 종주나 장거리 트레킹 등등에 유용할 수 있다. 대형배낭을 매고 다니는 백패킹 용도에 적합하다. 배낭에 무게 만큼의 하중이 비교적 접지력의 향상을 가져올수 있다. 그렇다고 접지력이 완전 꽝이란 소리가 아니다. 국내 당일 산행에는 국산 캠프라인사의 릿지 엣지 창이 가장 훌륭하다고 본다. 전문 릿지화가 아닌 이상 캠프라인 등산화는 범용으로, 다용도로 쓸수 있다. 지리산 종주를 자주 한다면 비브람 창이 유용하고, 단일 산행을 많이 한다면 굳이 비브람 창을 살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난 하산할때 되게 조심하면서 내려오는 편이다. 무릎관리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몇번 미끌려 넘어져봤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게 된다. 동행자는 비싼 비브람 신발을 신고 뭐 그리 경계하냐고 그러지만 비브람을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비싼게 무조건 좋은게 아님을 알고 특성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등산의 가장 기본인 자기 신발의 특성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신뢰해야 하는 것이다. 바위와 흙과 내 몸무게 와의 만남, 거기서 오는 온 몸의 편안함이  등산. 혹은 걷기의 마술이다.
 자신의 신발과 발을 더욱 사랑하라. 걷지 못하는 새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법이다..

다음에는 중등산화 한바그 알라스카에 대해서.

* 김보윤의 산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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