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 란 현존의 전설적인 위대한 밴드는 내가 완전한 팬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헤비메탈, 정확히 말하면 트래쉬메탈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탈리카는 음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밴드이고 음악 역사에 아로새길 경력을 30년 넘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올해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행사에 초대된 메탈리카의 공연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주오는 기회도 아니고, 이제 그들도 나이가 들어 전성기때의 퍼포먼스를 더 이상 보기 어렵겠단 판단하에. 대중음악역사에 남을 그들의 라이브를 봤다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지나쳤고, 이 콘서트 영화 또한 거의 끝물에 남은 상영관을 찾아서 보고 왔다. 


 이수역에 위치한 아트나인이란 독립 상영관인데, CGV의 무비꼴라쥬처럼 메가박스의 예술관 같은 개념인데,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독립적인 극장이었다. 극장의 내외부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외부의 테라스 공간은 한 여름에 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영관 안도 작지만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3D 콘서트 영화인데, 화면이 작은편이라 쓰리디의 효과가 아이맥스처럼 크지 않다는 아쉬움과. 심야 시간이래서 그런지. 음량이 작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빠방한 기타 톤과 베이스 드럼의 댐핑을 기대했건만,, 예전에 용산 CGV에서 본 마틴스코시즈가 만든 롤링 스톤스 콘서트 영화 '샤인 어 라이트'와 아니 비교할 수 없었다. 그 때 세번이나 봤는데, 진짜 공연 보다 더 너무 활홀했었다. 여전히 섹시한 할배들에게 그렇게 감동을 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있어도 재밌는 관람이었다. 크로니클에 나왔던 배우 데인 드한 이란 얘가 나오고 딱히 주된 이야기는 없지만 몽롱하게 메탈리카 공연에 빠져들게 되있다. 공연의 무대 연출이 어마어마 했다. 정말 아이맥스 상영관이었다면. 정말 콘서트 현장에 와 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제임스 햇필드 가 눈 앞 무대위에서 다운 피킹을 빡시게 하는 장면등등, 기묘한 가상체험 이었다.. 워낙 유명한 그들의 노래 '마스터 오브 퍼펫''낫씽 엘스 매터''엔터 샌드맨' 을 연주할 때 압권이었다. 


 몇일전 종로 3가의 굴보쌈집을 갔다가, 종각으로 걸어가면서 YBM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추억에 잠겼다. 1991년 메탈리카 5집이 나왔고. 그 건물 지하의 대형 음반 매장서 끊임없이 울려퍼지던 '엔터 샌드맨' 이 생각났다. 내가 중1때 였던가. 무려 2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80년대의 밴드 스미스를 듣고 있지만 바로 전에 오랬만에 메탈리카의 단 한장 소장한 5집 앨범을 먼지털어 들어봤다. 역시 라이브가 더 좋다. 음반으로 듣기엔. 스미스의 음악 같이 모던록의 정형이 좋다. 그러고 보니 80년대의 록 음악의 극과 극이. 메탈리카와 스미스로 비교할 수 있겠다. 제임스 햇필드의 묵직한 다운 피킹과. 자니 마의 징글쟁글 피킹 아르페지오 톤. 무료한 일요일의 오후에 스미스의 음악은 묘한 기분을 불러온다. 모리세이의 낭랑한 목소리는 슬프면서 아름답다. 


 언젠가 소개받은 여성분중에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데프 레파드를 좋아한다고 했고, 메탈리카나 판테라 같은 쓰래쉬메탈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좀 색다르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음악취향을 숨기려고만 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도 했던것 같다. 헤비메탈이던 클래식이던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이 중요한거지. 생각해보니 스콜피언스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번다, 헤어지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음악 취향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취향은 다르고 삶의 지향점이 같은게 좋은 것 같다. 의외로 혼자 보러 온 여성들이 좀 있어서 든 추억이었다. 


 

 90년대를 중학생으로 맞이한 동시대인 에겐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기억은 행운이다. 아마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였을 그를 우리는 정말 좋은 시기에 누렸다. 축구 황제 펠레.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골프의 타이거 우즈. 등도 마이클 조던의 위업과 예술적 경지에는 못 미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아마 현재는 바로셀로나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마이클 조던 처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는 농구의 신 이었고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는 교인 이었다. 공간을 휘젓는 전지 전능한 경지. 인간 신체 움직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등은 그 당시 내 인생 처음으로  본 포르노의 충격과 맞먹었다. 단지 마이클 조던의 아름다운 충격은 고등학교때 까지 계속 이어졌었다. 뽀르노는 그 후 야동이란 이름으로 오양 비디오로 다시 한번 충격을 겪게 되었을 거다.

 고 1 때. 한 친구가 기억이 난다. 이름은 현영. 얼굴은 나보다 더 하앻다(?). 그는 여자에는 관심없었고 오직 음악듣기에만 몰두했었다. 그와 나는 팝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친해졌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매일 듣는 애들이 한반에 한 5명 정도 됐었다. 그중에 Guns N' Roses 의 보컬 액슬 로즈 (Axl Rose) 를 유독 좋아했던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공동의 우상을 간직했던 우리는 곧 머지않아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조국이 남 북으로 분열 되더니 6.25가 터지는 비극을 겪게 된다. 적어도 그 친구의 섬세한 내면에선 그랬을 것이다.

 나는 건스 앤 로지스 와 동시에 그 당시 최신 음악인. 그런지 / 얼터너티브 ( 너바나, 라디오헤드. 스매싱 펌킨스 ) 등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고, 그 친구는 메탈리카를 정점으로 헤비메탈 / 트래쉬 메탈 / 데쓰 메탈 ( 슬레이어, 세풀투라..등 ) 에 중독되고  있었다. 그가 자주 들어보라고 건네는 워크맨의 이어폰은 공포였다. 왜냐면 슬레이어나 세풀투라 (기억은 안 나지만  더 한 밴드도 많았다) 의 음악을 들어보시라 록음악 좋아하는 나 로써도 충격과 무서움 이었다. 극단적인 소리로 공포를 자아낼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에게 메탈리카는 신 이었다. 메탈리카도 Trash 메탈의 범주 이지만 그 즈음에 발표한 그들의 5집 음반은 아주 대중적인, 록 음악 역사에 남을 명반이었다. ( 엔터 샌드맨. 넛띵 엘스 매러, 언포기븐 등은 이제는 메탈 음악의 고전이다.)
 메탈리카의 그 음반이 아무리 명반이었다 해도 나는 절대 헤비메탈 키드는 아니었다. 내게 맞는 범주는 펑크, 뉴웨이브, 아방가르드, 얼터너티브 같이 정통에서 어긋난 탐미적인 비주류의 감성이었다. 그 친구에겐 내가 마치 해방 이후 양키 들에 힘없이 겁탈당하는 양공주? 같았을 것이다. 반면 그 친구는 레닌 (메탈리카) 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모시고 스탈린 (슬레이어,세풀투라) 이라는 폭압적 헤비메탈 주체사상에 경도 되었다.
 서서히 음악적 취향의 골이 깊어 질수록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했던 건스 앤 로지스의 예찬이 극에 달했다. 지구상 최고의 밴드라고..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액슬 로즈와 기타리스트 슬래쉬는 우리에게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였다.

 제 2 외국어가 스페인어라 돌구르듯이 R~R~R~R~R~을 재미나게 연습하던 차에 주변의 곳곳에서 마이클 조던 이야기와 고작 비키니 입은 구겨진 사진의 잡지를 헐떡대며 넘기는 소리들. 성경험의 진보주의자가 워크맨으로 녹음한 야릇한 카셋트 테이프가 재생되는 소리. ( 나는 이런 괴짜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미디어 아트, 사운드아트의 선구자이다. 너무 날 것 이었지만 말이다. ) 그 시절 내 책상 속엔 아마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과 소설 여명의 눈동자의 야한 부분만 너덜거리며 있었을 것이다.

 친구 현영이가 메탈리카와 마이클 조던 중에 누가 더 유명하냐 라는 질문을 아해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해들의 답변은 당연히 마이클 조던이었지. 현영이는 속이 상했는지 그 유치한 질문은 더 노골적으로 되었다. "메탈리카와 마이클 조던 누가 더 유명해? 엄창?"  이런! 그래도 내 책상속엔 도서관서 빌린 사람의 아들이 있었는데.. 메탈리카를 신으로 모시는 그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거북이가 토끼보다 빠르다고 우기는 꼴이었다. 결국 그 질문은 나에게 까지 왔다. 현영이의 메탈리카 사랑은 10전 전패였다. 현영이에겐 내가 마지막 보루 였다. 한 명이라도 메탈리카에 손을 들어주면 그의 독실한 신앙심의 상처는 회복되었다. 현영이는 학창시절 빼동 이라 불리는 나의 애칭을 버리고 정색하며 동학이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나랑 생각이 같을 거야 하면서 다시 그 유치한 질문을 했다. 나는 진지한척 정확하게 질문을 되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마이클 조던과 메탈리카 중에 누가 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알까? 이지.." 응!. 열명 정도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내 답변을 들은 그는 원래 하얀 얼굴은 더 하얘졌고 눈에는 분해서 살짝 물방울이 맺혔다. 땀이 아니라 눈물이었겠지. 그 순간 현영이에겐 6.25의 발발이었고,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금방 울것 같은 그 얼굴. 유치하지만 순수했던 열정이 사뭇친다. 여태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결과와 내 주관이 중요한게 아닌데 말이다.

 메탈리카를 인정 안 한 나는 커트 코베인을 지주로 모시고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현영이는 메탈리카는 자장가 였을 정도로 더 극단적인 메탈에 빠져들었다. 그 때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가 어느 대학을 갔는지 모르겠지만 검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액슬 로즈 흉내내며 노래 불렀을거 같은 모습이 눈에 훤하다. 하얀 얼굴에 눈물이 맺혔던 그 모습도.. 

 다음 노래는 다들 보통 대학 축제때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노래 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보컬 액슬 로즈와 정말 아름다운 기타 소리와 연주를 들려주는 슬래쉬. 이것은 난폭한 액슬 로즈가 사랑에 빠져 만든 노래란다.
 Guns N' Roses _Sweet child O' mine 1992 일본 도쿄돔 라이브. 같은 시각 도쿄 어디가에서 너바나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는데. 역사의 변곡점 이었구나. 요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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