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이상하게도 노무현, 김대중, 김수환 추기경 이 돌아가셨을 때와 다르게 무덤덤하다. 그 분의 책도 읽었고, 직접 법문도 들었지만, 내 감정은 그냥 돌아가시는구나 라는 사실만 흐른다. 불가에선 우리네 삶을 속세라고 부르며 먼발치에서 수행을 한다. 속세를 떠나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다 나이 들어 돌아가신 그분에게 죽음 자체로선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이 세속의 삶을 벗어나는 그분께 극락의 길을 즐거이 기원할 뿐이다. 무소유의 삶으로 살아간 그에게 무슨 미련이 있었겠나.  다만 정반대로 나아가는 이 세속의 광증이, 그 속의 중생들이 슬프다면 슬프지. 무소유의 상징성과 아름다운 길상사 를 우리에게 남기신 법정 스님께 감사한다. (어쩌면 그 베스트셀러가 나온지 꽤 오래전인데 정작 사회는 이 모양이니 편치는 않으셨겠다.)
 몇년전 길상사에서 법문을 직접 들었는데 기대가 컷던지 좀 실망했었다. 진리의 달을 가르키는 마지막 마디의 손가락을 거쳐 무소유의 진리를 맞딱뜨려 보고자 했지만 대중적 상징성은 진리의 달조차 가르키지 못했다. 어르신의 가르침은 지극한 도덕 이었다. 그날의 소박한 진리라면 길상사의 비빔밥을 아주 맛있게 먹고 왔던 기억. 오직 그 뿐 일까..
 법정 스님과 김길태의 소식 단지 그 뿐 일까. 뉴스라는 삶의 모든 쇼는 진실을 검게 그을린다. 

 
20대 중반 여대생의 자퇴 선언은 사회의 양극화의 결과이자 현재 진행형이다. 이 글의 반응을 통해 엿보이는 사회 구성원의 건널수 없는 폭의 크레바스 같은 간극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예전에 무소유가 출간됐을때,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한 사람이나, 자신의 재산(터)을 기부해 길상사를 창건했듯이 그녀의 대자보(글)을 통해 용기와 영감을 얻어 시스템을 박차고 나오는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시대의 운동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회에 그것만이 희망일지도 모른다.
 
마음과 머리는 왼쪽에 있지만 몸만은 회색지대에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나의 대학생활을 뒤돌아 보게 하고 현재를 점검해 보게 한다.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했다.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응원한다. 두고 볼 일이다.

( 길상사는, 시인 백석 사랑한 고 김영한님이 평생 모은 재산 1000억원을 법정 스님에게 의탁하여 세워진 절이랍니다. 김영한님은 거액을 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내가 모은 재산은 백석 시인이 남긴 시 한 구절의 가치도 없다." ) _ 황광우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완전한 원문은 아닌듯 합니다. 조금 요약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우리들의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25년간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 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큰 배움 없는 '大學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겐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두고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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