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다리가 뻐근하고, 무겁다. 평소에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로 하체를 단련하던 내게, 모처럼의 등산은 매우 고된, 그러나 등산의 묘미가 잘 어우러진 인상깊은 산행이었다. 

 20대 중후반에 형님들 따라 가끔 등산을 따라나섰던 내게 저질 체력은 산행의 즐거움을 앗아갔었다. 아마 서른이라는 나이을 앞둔 어느 흐린 겨울에 난 혼자. 북한산 정상 (백운대 836m) 에 가보겠다고, 길을 나섰다. 산행 경험도 많지도 않거니와, 혼자 가는것도 그렇고, 모든게 처음이었다. 그 때. 청바지에 캐주얼 단화를 신고 멋모르고 두려움에 떨며 올랐던 백운대 정상의 그 느낌과 희열. 바람과 추위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 등산은 나의 취미가 되었고, 그제서야  내 몸과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서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북한산의 다양한 코스를 거의 다 다녀보아도,(어디든 다 좋다.) 백운대는 너무 자주 가지 않았다. 제일 맛있는 부분을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놓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그 희열이 너무 좋아, 천천히 아껴 녹여 먹는 초콜렛의 마지막 한 조각 같은 것이 백운대의 전망 이었다. 생각해 보니 북한산을 많이 다녔음에도. 백운대를 오른것은 어제까지 총 네번에 불과하다. 등산의 묘미를 전수하고자 사람들을 데려가기도 했고, 후배를 데려갔다 오르지도 못하고, 운명의 장난처럼. 꼬이기만 했던 추억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제처럼 사람이 드문 이른 시간에 나 홀로 백운대 정상위 바위에 선 그 느낌은 살아있음의 극치였다.

 이틀전의 큰 장맛비로, 대기는 맑고 선명했으나, 공기 가득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장마구름을 끊임없이 드라마틱하게 움직이게 했다. 구름들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아기자기한 도시의 조그만 사각형 들을 밝혔다. 저 멀리 강남의 빌딩들을 넘어 동남쪽 검단산 사이로 한강 상류인 팔당수원지 까지 보였다. 남쪽으로 남산을 넘어 관악산의 연주대는 물론이고, 지구가 둥글어서 못 보이는 거 빼고는 다 보였다. 바로옆 북한산과 불암산.수락산 사이의 강북구 수유,노원,우이동 등 일대는 다른 곳보다도 더 아파트 촌이 많아 보였다. 의정부를 통해서 서울로 진입하는 통로래서 군사적 목적에서 그런 건지도 모를일이다. 

 이 높은 곳에서 조망하다 보면, 마치 내가 제갈량이나 된 착각에 천지를 호령하는 포부가 생긴다. 내 삶의 공간을 멀찍히 떨어져서 조망하는 것은 나와 내 삶의 모든 것을 타자화 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관계의 집착을 넘어서 좀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백운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오래 정상에 있기 힘들었으나. 어젠 은은한 햇빛과. 적당한 바람에 사람까지 없어 나는 땀에 푹 젖은 상의를 벗고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겼다. 웃옷을 벗으면서 순간 바람에 옷이 날라갈 뻔했는데, 옷을 놓쳤으면 참 난감할뻔 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산에선 항상 방심하면 안된다. 산은 순간순간 깨어있음을 요구하고, 한발한발 잘못 짚거나, 정신이 딴데 가있으면 위험은 도처에 도사린다. 생명의 실존은 바로 그 순간순간에 갱신된다. 작년 눈이많았던 겨울에 도봉산 정상 봉우리에서 내려오다가  죽음의 '악' 소리를 내뱉은적이 있다. 눈덮인 바위에 내 몸무게를 지탱하던 두손이 무방비로 미끌어졌는데 그 순간 짧고 깊은 '악' 소리 밖에 나오지 않더라. 다행히도. 눈과 몸통의 마찰로 더 미끌어지지 않고 멈춰섰지만, 그때.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마치 우리 삶은 죽음의 집행유예인듯. 메멘트 모리. 피할수 없는 죽음이 항시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길에 대한 사유의 모든 것을 산에서 경험할 수 있다. 등산 행위는 인생의 굴곡들을 축약해 놓은 듯이  희노애락의 연속이다. 내 몸이 만들어 내는 사건은 정신을 정화 시킨다. 고독하고 적막한 숲은 사랑과 타인의 관계를 일깨우게 하고 치유케 한다. 편하지 않은 길을, 위험이 가득한 경사진 길을 오른다는 것은 강한 생명충동의 발현이다. 

 이 날의 등산길은 일반적인 등산로가 아닌 사람이 다니지 않은 깊은 계곡길이었다. 원래는 자주 갔던 숨은벽 능선길로 갔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길을 헤맸고, 여자 다리 사이 같은 계곡의 음기에 나는 허우적 댔다. 깊은 계곡의 습도는 환상적이었고, 소금물에 절여진 자반고등어 같이 땀 범벅에 몸은 축 늘어졌다. 계속 되는 너덜바위와 급경사는 오지에 떨어진 막막함을 느끼게 했다. (마치 디스커버리 채널의 Man VS Wild 와 같은) 

 계곡을 빠져나와 백운산장.위문을 거쳐 백운대에 도착했다. 백운대의 그 위험했던 바윗길 구간은 철 계단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몇몇 곳에 쇠 밧줄이 더 설치되었다. 좀 편해지긴 했지만 예전 특유의 그 스릴은 이제 없어졌다. 만인을 위한 산이니. 키가 작은 여성이나 애들의 권리도 존중해줘야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이런 바위 봉우리에는 오르지 못할 것 같다. 예전 조선시대 선비의 덕목중에는 이 백운대를 올라갔다 와야 기상을 가진다 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바위에 설치된 쇠 밧줄도 없었을거니,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용기 였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물이 떨어져 중년의 사내에게 물 동냥을 했다. 한모금만 마시고 물병을 건넸는데 더 마시라고 했다. 홍삼달인 귀한 물인데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역시 산에 혼자 오시는 중년 남자는 어떤 부류보다더 친절하고 눈매가 깊다. 경마장이나 강원랜드에서 본 중년 과는 차원이 다르다. 산을 닮아가는 그들의 얼굴은 아름답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백운대에 한마리 나비가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즐거이 노니고 있었다. 내가 나비가 되어 춤추는 기분이었다. 나비는 바람이 세게 불어 오래 있지 못하였지만, 그 나비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다. 내가 나비였고. 나비가 나 였다.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또 한 쌍의 원앙? 이 바위에 왔었다. 도시의 비둘기 와는 다른 아주 깨끗한 깃털과..눈망울을 가진 한 쌍이었다. 그 새가 부러웠다. 그 새 부부는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 같이 날아갔다.. 

 예전에 읽었던 책(아마도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에서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배낭여행으로 가라고 조언한 저자의 설득에 심히 공감되었던 적이 있다. 긴 인생의 동반자로써. 서로 힘들고 지칠때.상대를 정말 배려하고 사랑하는지 볼 수 있고, 진짜 성격을 볼 수 있다고..인생의 어려움에 맞서 미리 손발을 맞춰 볼 수 있다고.. 고급 호텔과 휴양지 에서 맛있는거 먹고 섹스만 하다 오는 신혼여행은 앞으로의 인생의 굴곡에 하등의 도움이 안된다는 논리 였다. 나는 그 순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히말라야라니. 상상만 해도 멋지다. 그런데. 이런 신혼 여행을 꿈꾸다간. 평생 결혼 못 할수도..상대의 생각도 배려하는게 마땅한데. 여자들이 무드에 약하고..일생의 한 번 뿐인 신혼여행을 낭만적으로 보내고 싶은것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궁극적인 신혼여행은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어쩜 찍소리 못하고 가슴속에 뭍을 꿈일지도.. 

 부산에서 올라온 중년 부부를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등산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즐기는 취미를 서로 공유하는 그런 삶을 꿈꾼다..이 부부는 서울로 여행을 와. 북한산을 처음 올랐는데, 백운대 정상에 서서 감탄을 연발했다. 서울 사람들이 지리산이나. 설악산 한라산을 그토록 동경하듯. 그들은 북한산의 매력에 탄복을 했다. 서울사람으로써 뿌듯했다..ㅋ  또 이쁜 두 딸을 둔 가족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는 지식인 같아 보였고, 딸중의 한명은 영화 러블리 본즈에 나온 여자애 같이 생겼는데, 보다 더 이뻤다. 이쁘기도 하고 총명하기도 했는데. 어린나이에 한 두번 올라온 솜씨가 아니었다. 역시 부모의 취향은 건강하고 이쁜 어린이를 만든다. 젊은 여학생들도 싱싱한 기운으로 꺄르르 웃으며 야호를 연발했는데. 듣기 싫진 않았다. 산에서 소리 지르는것이 산에 사는 동식물에 실례이긴 해도, 그 순박한 젋음이 귀여웠다. 

 어느새 피부의 물기가 다 말랐다. 바람은 쎄지만 포근하게 피부를 감싸고 지나간다. 순간 내 피부가 젊은 여인의 피부처럼 너무 보드라워져 있어서. 순간 깜짝 놀랐다.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 뱃살이 야들야들한 것처럼. 내 피부 또한 그렇게 됐다.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지만. 내 눈과 가슴속에 꼭꼭 그 풍경과 바람의 맛을 간직했다. 사진은 이 공기의 느낌. 바람의 맛을 담지 못한다. 자연 앞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한계다. 차라리. 폴 세잔의 회화가 이런 느낌을 잘 구현해 냈다. 세잔은 평생의 화두가 이것이었다.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눈으로 보이는 대상의 이면을 그림으로 구현했다. 햇빛에 의해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북한산 자락을 보면서. 세잔을 생각했다. 그는 하염없이 생투빅투아르 산을 보며, 상념과 명상에 젖었다. 그의 생각이 맞다. 그는 대상이 내뿜는 에너지를 그렸다. 고정 불변하는 것은 없다. 심지어 내 손의 피부색 또한 수시로 변한다. 내 마음 또한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쉽게 변하지 않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백운대의 태극기 아래에서 나는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는가.. 남쪽의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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