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출판사 측에서 정한 부제인 모양인데? 매우 매력적이다. 당장 읽어보고 싶게끔 유혹하는 문장이다.

 발터 벤야민의 책은 불행하게도? 정확히 말하자면 게을러서 지금에서야,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내 손은 떨고 있다. 해야할. 공부 (텍스트)를 그동안 방기한 죄, 

 내가 찾은, 찾으려 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리는 책이 발터 벤야민과..롤랑 바르트 였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과 바르트의 '밝은방' 은 너무 빈번히 인용되고 언급되어서 읽어보지 않아도. 핵심은 파악한? 한마디로 식상해져, 읽으려는 의지가 상쇄된 것이었다.

 변명일까? 아님 벤야민과 바르트 책과의 시절인연이 지금인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 무식했었고, 표면성에 머무는 감각쟁이 였다. 운명일까? 나는 번지르한 가면을 깨고. 맨얼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우주공간속의 작은 위성이 목표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나비모양으로 유영해 목표에 접근하듯. 이제서야 벤야민과 바르트와 접선했다. 두렵고도. 흥분되는 일이다.

 제목이 '일방통행로' 인 만큼 이 책은 저자의 몽타지 적 글쓰기. 산문. 아이디어. 단상..같은것이 담겨있다. 책으로써의 완결성 이 뚜렸하기 보다는. 벤야민을 접근하는데 있어. 머리 풀기 와도 같은 책이다. 요리로 치면. 전채(에피타이저)요리.. 어찌보면 현대의 블로그적 글쓰기와도 닮아 있으나, 이 저자는 20세기 사상가중. 가장 빼어난 산문가 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사람의 일생은 불운했는데, 50이 채 되기도 전에 비극적 자살로 삶을 마무리 했다. 독일계 유태인으로써 나찌를 피해 국경을 벗어나려다. 지레 겁먹고? 좌절해서 성급한 죽음에 이르게 됐다. 들어보니 굳이 죽을 필요 없이 무사 통과 됐을 거라는.  지식인 특유의 통찰. 예견하는 능력(회의로써) 이 자신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이 사람의 저작물들은 나중에, 한 1970년대에 이르러.. 친구..바타유? 였나..유품에서 원고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발간이 이뤄졌다, 그가 죽기전 까지 매달렸던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 도. 미완성 인 채로..출간되었다.

 현대성을 사유하는데 있어 그의 사상. 생각은 시발점을 이룬다. 그의 방대한 사유와, 연구의 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목도한 파리의 모습은 환등상(판타스마고리아)으로써,현재의 문명도시와도 궤를 이룬다.
 그 동안 유행처럼 죄다 벤야민~벤야민~ 하는게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누구나 하는, 누구나 가는 길에 반골적인 성향을 가진 내게는..
 이제서야 차분히 들여다 봐야겠다..변명인가? ㅎ 

 책 시작의 짧은 문구는  역시 사랑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는 그런 글귀..

 이 거리 이름은
아샤라시스 가
이 길을 저자 안에서
엔지니어로서
개척한 사람의 이름을 기리며 

_  아샤라시스는 벤야민이 사랑했던 여인인데, 이 여인이 공산주의에 빠져있어. 벤야민 또한 공산주의로 향하게 됐다고 한다. 역시 사랑의 힘이란...

 회전 예배기 p.93.

오직 마음속에 그려진 이미지만이 의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에 반해 단순한 말은 기껏해야 의지에 불을 지필 수 는 있지만 그 후에는 연기만 피우며 탄내만 요란하게 낼 뿐이다. 이미지를 정확하게 상상하지 못한다면 건전한 의지도 있을 수 없다. 신경 자극 없이는 상상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호홉이 신경 자극의 최고로 섬세한 제어 장치가 되어야 한다. 주문 소리는 이러한 호홉법의 하나의 기준이 된다. 성스러운 음절에 맞추어 호홉하며 명상하는 요가의 수행법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요가의 전능함도.

 계단 주의! p.56.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맞추는 직물적 단계.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 지나가도록 하지 말 것. 메모장에 노트를 할 때는 관청들이 외국인 등록부를 기록할 때처럼 엄격하게 할 것.
 너의  펜이 떠오르는 착상에 대해 까다롭게 굴도록 할 것. 그러면 펜은 자석과 같은 힘으로 그것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는 데 있어 신중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그것은 한껏 펼쳐진 채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말(이야기)은 생각을 정복하지만 문자(글쓰기)는 생각을 지배한다. p.66.

 마담 아리안느, 좌측 두번째 안뜰 p.162.

 여자 점쟁이에게 미래에 대해 묻는 사람은 다가올 사건들에 대해 내면에서 예감하고 있는 것, 그러한 여자들에게서 듣게 될 것보다 천 배나 더 정확하게 예감하고 있는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포기해버리게 된다. 그가 여자 점쟁이에게 가는 것은 호기심보다는 태만에 이끌려서이며, 그러한 사람이 자기 운명이 밝혀지는 것을 지켜볼 때 보여주는 순종적인 둔감함보다 더 용감한 자가 미래에 손을 댈 때의 과감하고도 민첩한 손놀림과 닮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기응변은 미래의 정수 자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 저 먼 미래를 예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전조,예감,신호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신체 조직을 물결들의 파동처럼 통과해 간다. 그것들을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이용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중략 ~

 ~ 매일 아침 우리 침대 위에 깨끗이 빨아놓은 셔츠처럼 하루가 놓여 있다. 이 비할 수 없이 섬세하고 촘촘한 직물, 이 순수한 예언의 직물은 우리 몸에 딱 맞는다. 이어질 24시간 동안의 운은 잠에서 깰 때 우리가 그것을 손에 쥘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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