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일요일에 대림 미술관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중 하나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는데, 갤러리 앞에 길게 줄을 선 인파들의 모습이었다. 곧 도착해서 보니 전반적으로 짜증이 일었다. 우린 그냥 전시 관람은 포기하고, 서촌엘 가보기로 했다. 무지 배고파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에, 일행들이 서촌엔 어디어디가 좋고 뭐가 맛있다고 그러면 무조건 어디곤 빨리 가자고 보챘다. 

 

 서촌엔 처음 와보는것 이었다. 라고 쓰고 있는 와중에 스물셋인가.넷쯤에 미팅으로 만난 아이집이 여기 였고, 바래다 준 기억이 났다. 그 아이한테 왜 그렇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는지 당췌 당시의 나를 이해할 수 없구나.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았지만 도통 내 마음은 울적하였다. 자연스레 해야할 과정에서 빗나가니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효자동 이었다. 


 휴일이고, 저녁시간에는 아직 일러 문이 많이 닫혀 있거나, 영업 개시전 이었다.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누군가 서촌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누하의 숲' 이란 일본 가정식 식당을 찾아 갔다. 난 뭐래도 좋아.란 심정으로 해가 급하게 어둑해지는만큼 배고픔에 필사적이었다. 근데 저녁 타임 개시는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고, 우린 궁여지책으로 어떤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통인시장?) 유명한 떡볶이 집이 있다길래 나는 어딘지 길도 모르지만 앞장섰다. 


 하나는 간장? 에 쫄인 떡볶이고 다른 하난, 고추가루에 버무린 것인데, 맛이 쬐금 톡특하긴 해도 줄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이런 떡볶이도 있구나 란 정도. 서빙해 주던 아저씨는 자기네 집이 원조란 자부심이 대단했다. 떡볶이 주제에 오늘 하루치 양 다 떨어져서 일찍 가게 닫는다고, 떡볶이를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떡볶이가 전복이나 꽃등심도 아니고..


 그렇게 나왔음에도 아직 시간이 남아,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으며 죽 때렸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나를 누나가 아이스크림 사 준 꼴인데, 우리가 편의점을 사수하고 있자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19년전 편의점 사발면 한끼에 배고픔을 달래가며 낄낄대던 그 모습으로..


 그렇게 해서 드디어 대로변의 작은 식당인 누하의 숲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네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딱 하나 있었고, 나머진 둘이 온 커플들이 자리를 채우니 작은 가게가 금새 꽉 찼다. 일본 정통 가정식 백반 이란다. 네가지 정도 메뉴가 있었고, 다 맛있어 보였다. 다시금 느끼게 된 건데, 내 음식 취향은 딱 일본 가정식이 맞는거 같다. 짜고 맵고 뜨거운거 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은 소박한 식단. 모든 음식이 대단히 맛있었다. 간도 알맞고, 보기에도 훌륭했다. 홍대앞의 델문도 보다 괜찮은듯 싶다. 여긴 눈오는날, 좋아하는 사람과 오면 딱 좋겠다. 


 나갈때 보니, 너무나 일본 아줌마스런 일본인?이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환하게 맛있게 먹었다고 답례하며, 속으론 혹시 일본산 식자재 쓴거 아냐? 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했다. 나는 총각이니까. 혹시 모를 2세를 위해 관리해야 한다. ㅋㅋ


 빈티지한 어느 까페를 찾았으나 영업을 안해서 다음을 기약하며, 서촌의 초행길을 마무리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로시 스기모토 전시 관람 에피소드  (0) 2014.01.05
그렇게 아저씨가 된다.  (0) 2014.01.01
맥주 사기  (0) 2013.12.14
코트 사기  (4) 2013.12.06
냄새 잡기  (0) 2013.12.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