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이석원의 산문집 < 보통의 존재 > 를 읽었다. 그 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략히 말하자면, 모던록 밴드 ' 언니네 이발관 ' 의 보컬리스트 이다. 
사실 이 밴드, 좋아하는 밴드도 아니고, 더더욱 이석원 이란 사람은 인상도 안좋고, 특히 그들의 음악은, 20년여를 록 음악에 심취해온 내겐 너무 평범하게 들렸다. 그러다 친구가 연말에 그들의 공연을 보고 와서, 어느 보통의 존재 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앨범의 주제이자, 보컬 이석원이 마흔 언저리에 자신이 보통의 존재 일 뿐이라는 섬뜩한 자각에서 출발 했다라고..

 그때까지는 보통의 존재 란 말 자체가 가지는 아련한 서글픔이 약간의 궁금증을 유발했었다. 내 마음에 우연히 던져진 그 말이 잔잔한 물위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 처럼 파동을 일으켰다. 짐작은 하지만 그가 말하는 보통의 존재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마음의 작은 움직음은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를 다시보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말랑말랑한 록 음악은 내가 지향하는 록 스피릿 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전히 보통의 밴드로 느껴졌다. (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긴 비평을 할 수 있지만, 이 글은 음악 리뷰가 아니라, 책을 읽고 나서 쓰게된 글 이므로 여기서 줄인다. )

 그렇게 관심에서 잊혀져 갈 무렵,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게 이석원이 쓴 '보통의 존재' 란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인터넷서 검색해 보니, 노란색 표지의 이쁘장한 책 이었다. 인터넷 서점의 독자 리뷰는 믿을수 없어, 블로그의 평을 보니, 다들 반응이 좋다. 분명 제목이 주는 힘이 있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 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하지만 난 신중했다. 궁금증을 무릅쓰고, 이미 그런식의 구매에서 실망한적이 많기에 주문하기를 바로 눌러버리는 대신 내일 서점에서 좀 읽어 보고 사기로 결정했다.

 얄밉게도 그 책은 빤빤히 비닐 포장이 되어 나머지 보통의 책들 속에서 유별나 보였다. 그리 얇은 책도 아니고 영화 개봉작의 원작 소설도 아닌데 그렇게 비닐옷을 입고 있는게 영 어색해 보였다. 출판사의 처사가 참 치사하다.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일까. 왜 보통의 존재란 이름을 단 이렇게 예쁜책은 특별한 존재에 처해 대중의 손길에 유리됐을까. 나처럼 에세이류는 서점에서 읽어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해도 서점의 모든 책은 다른책들과 공정하게 속 알맹이를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책의 기본 윤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국 출판사의 옹절한 처사에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반항했다.

 담담하고 진솔한 그의 이야기들은 나의 내면을 수시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자주 멈춰서서, 추억이 스멀스멀 꿈틀거리는 것을 음미했다. 한 사람의 내면 일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이 책에는 있었다. 어쩌면 보통이 아닌 저자 (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었고, 이혼했고. 예민한 가수인 ) 가 세상의 모든 보통의 존재에게 건네는 위로 인 것 같다. 꿈과 희망에 대한 거품어린 수사가 아니라 무덤덤하게 자기 자신과 일상을 이야기 한다. 사랑과 이별, 가족, 건강, 그리고 삶의 진리 까지.. 공감하는 글 귀가 색다른 감성의 인식을 건드릴때마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삶은 지금 여기에 있었고, 마음의 언 땅은 나와의 낯선 대화를 통해 차츰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웨일즈가 낳은 영국의 국민밴드 Stereophonics 의 베스트 앨범을 들으며 록 음악은 '이런것이야.' 하면서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생각해본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뮤지션 이석원 으로써가 아니라 작가 이석원 씨를 좋아한다. 나 또한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한 꼭지를 정리하고 새롭게 나아가기를 원한다. 보통의 존재로써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으로써, 결국 누구나 보통의 존재일 뿐이라는  평등과 겸손을 가지고..

 책속의, 맘에드는 짧은 아포리즘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결속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

두려움

세상의 수많은 두려움 중에서
아주 일상적으로 언제나 마주치는 것.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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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  책,

내 생활 공간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을 보면 간혹, 애증의 심리가 솟구친다. 언젠가 읽었던 책들과 읽다 만 책들, 그리고 사 놓기만 한 책들이 불편한 모양새로 내게 불만을 토로하는듯 하다. 특히나 요즘은 도서관서 빌린 책들이나, 서점에서 원_나잇 스탠드 하는 책들 에게 밀려서, 먼지만 쌓이고 종이 들의 시체 처럼 보일 뿐 이다. 내 방에 안착한, 그러니까 내가 소유한 책 이란 명제 에서 오는 나태함과 허영심 어린 책들이 내게 묘한 압력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과 지적인 탐구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작용한다. 언젠가는 먼지를 털고 콧 기름 발라가며 손 때 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소유되지 않은 책 과의 외도가 더욱 짜릿하다. 왜냐하면 서점에서 보는 책은 몸이 편하지 않으며, 빌린 책은 날짜의 한계가 있으므로 절박하게, 더욱 집중해서 한 숨에 읽기 때문이다.

 서점에서의 책 읽기는 편하지 않음에서 오는 긴장과 집중이, 삶에서 몰입의 희열을 깨닫게 해준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진리에 다가서기 어렵다는걸 비교 체험으로써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서점에서 쟝 보드리야르나 롤랑 바르트 등등의 학자들의 책을 읽진 않는다. 새로나온 에세이, 사회비평 등등이 서점에서 읽기가 딱 좋다. 최근에 장영희, 한비야, 홍세화 님의 새책을 읽었다. ( 제목은 적지 않겠다.) 책을 좋아하다 보면 책 고르는 안목이 좋아지는데, 역시 위 세 저자들의 책은 아주 뛰어난 문장과 함께, 탁월한 감수성과 통찰을 보여준다. 한비야 님의 책은 그동안 일부러 거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 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뻔한 내용일꺼라 짐작한, 제목도 마음에 안 들었던,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를 보고 편견이 사라졌다. 또 무릎팍 도사에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글의 진정성이 더욱 느껴졌다. 문장을 읽으면서 상상한 저자의 어투와 호홉이 실제 모습(방송에서지만.) 과 대단히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솔직하고 경계에 얽매이지 않은 시원시원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배울점이 많은 분이라 생각한다.

 홍세화 님의 책은 두고 두고 곱씹어 볼 사회 비평서 인데, 개인적인 이유에서 책 구입은 망설여 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소유에 대한 정체라고 할까.. 지식,비평은 흘러서 소통돼야 하는데 한 번 읽었던 책들이 결국, 방안의 책장에 종이들의 성전이 되가는 꼴이 이제는 싫어졌기 때문이다. 대학을 지식 혹은 지성의 상아탑 이라고 하는데, 공부는 쌓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쳐가는 것이고 오히려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전에 전기류의 책들을 ( 브레송,만레이,트뤼포,헬뮤트 뉴튼 자서전 등등..) 개인 직거래로 팔았다. 다른 중고 거래와는 달리 책의 직거래는 묘한 정서적 희열이 있다. 내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풀어 놓음으로써 오는 작은 해방감과, 책을 받은 사람의 얼굴에 퍼지는 설레임이 교차하면서 그 책은 사명을 다 한 것이다. 떠나보냄으로써 드디어 내 영혼에 각인 되었다.

 반면에 이외수 님의 ' 하악하악 ' 류의 책들은 딱 서점에서 읽을 용 이라 생각한다. 작가 이외수를 싫어하진 않는다. 그의 글 에서 성찰과 영감을 얻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고급 종이에 이쁜 칼라 일러스트와 짧고 농축된 문장들, 지면의 여백, 보기에 좋지만, 비싼 책 가격에, 한 시간 정도에 읽히는 분량은, 왠지 출판사 사장 배불려 주는 꼴 인 것 같다. 이외수 님 이름으로 이런 책들이 꽤 많다. 그러니 책의 좋음을 떠나서 펜시 상품으로써 밖에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출판 시장이 불황이라면서, 왜 파주 교하의 출판단지의 출판사 사옥들은 그렇게 멋지고 으리으리 하게 지으셨는지, 화천 감성마을엔 그 멋대가리 없는 콘크리트 벙커의 집을 지으셨는지, 모를일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선 돈이 공기와도 같은 것인데, 파주나 강원도 좋은 공기에서 돈 냄새 많이 맡으셨는데 뭐라 탓 할 일이 아니다. 선택은 내 몫 이니까.

  더 할 얘기가 많지만, 책 하나만 추천하고 마친다. 김중혁의 단편 소설집 ' 악기들의 도서관 ' 참 재밌게 읽었다. 젊은 작가의,  현대인의 감수성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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