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처음 봤을 땐, 조금 길고 살짝 지루한 듯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영화였다. 가 첫인상이라면 최근에 다시 본 이 영화는 '아 감동적이다.!' 조금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아침,저녁 선선한 공기의 가을이 오는 전조는 노총각의 심리를 님의 침묵의 한 구절에 울컥하게 만들고, 진부하고 전형적인 스토리의 이 영화에 몰입해, 가슴이 스산해지는 사랑을 엿보기도 한다. 



 다시 보려고 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 잭 화이트의 출연 때문이었다. 영화가 개봉한 2003 년이면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최고의 절정기를 보낼 때, 이 영화가 촬영. 개봉 된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잭 화이트와 르네 젤위거가 염문설이 돌았고, 멕 화이트와 결정적으로 법적인 부부관계를 깨게 된 시점이, 밴드의 성공의 정점과 영화 출연에 따른 외도 일 것 같다는 내 나름의 추측이다.

 어찌되었건. 영화속에서 잭 화이트는 전통 노래를 부르고, 이 영화의 유일하게 아이러닉한 코믹 씬을 유발한다. (그의 극중 이름은 조지아)


 이 영화에서 사소한 단역 조차도 배우들이 어마어마 하다. 나탈리 포트만 조차도 조연으로 짧게 출연했고, 나탈리가 나오는 씬의 나쁜 북군 쫄병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의 주인공. 유럽의 명감독들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유명한 배우인데 이름은 잘 모름. 배우들의 면목이 그러하니 감독은 누군가 했더니 안소니 밍겔라 .. 


 '더 리더'''리플리' 의 감독이었다. 2008년에 54의 나이로 타계. '잉그리쉬 페이션트'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앞의 두 작품과 이 '콜드 마운틴'이 가장 좋다.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엔 못다핀 꽃 한송이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50대 나이면 감독으로써 한창 일 할 나이일텐데. ㅜㅜ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쟁속에 피어오르는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 너무 뻔한가. 하지만 감독은 그렇고 그런 삼류 감독은 당연히 아니다. 초반의 전쟁씬만 보아도 감독의 의도와 탁월한 시각을 엿볼수 있었다. 


 대부분의 명작 전쟁영화들을 보아도 전쟁씬의 박진감 넘치는 생동감은 있어왔다. 심지어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 등에서도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전쟁의 오락적 시각은 있었다. '글래디에이터' 같은 경우는 전투의 호쾌함이 전쟁의 참혹성을 넘어서 관람자에게 마치 내가 그 전투속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는 듯한 스펙타클한 시각을 제공한다. 아마도 헐리웃 영화, 아니.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매체의 난센스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이 '콜드 마운틴'의 초반 전쟁씬은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참혹하게 연출되었다. 전쟁 액션

의 드라마틱함은 온데간데 없고, 마치 인간지옥 같이 진창에서 뭉게지고 처절하게 살육 되어진다. 나는 감독의 이러한 의도와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의 시각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전쟁의 보여짐이 아니라. 정말 전쟁은 저렇게 끔직한 거구나 란 걸 심지있게 보여줬다. 당연히 영화 내용상. 주인공이 탈영을 하게 되는 납득할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니 그렇겠지만, 더 넒게는 감독의 세계관과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초반 대규모 전쟁 장면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단연코 전쟁이 화려할 수가 없듯이..


 결국 전쟁속에 피어오르는 사랑과. 삶의 가치들을 말하는 영화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뿐만 아니라  남겨진 민간인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고통을 받는다. 어쩌면 더 막막한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게 남은자의 몫이 아닐까. 어느 전쟁이나 그렇듯이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고, 더욱 악랄하게 설친다. 이 영화는 그런 전쟁 내.외면의 모습들을 남,녀의 애틋한 마음을 통해 감동적으로 잘 보여준다. 결국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일 수 있지만,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삶의 평화와 아름다움의 가치를 말한다. 맛있는 음식과 음악, 그리고 아이들.. 새로운 가족들 속에서 다시 삶은 찬란한 태양같이 피어오르고 평화와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저릿하게 일깨운다. 




 주인공 인만(주드 로) 과 에이다(니콜 키드맨)가 서로 사랑하게된 계기가 될 만한 큰 사건이나 이야기가 없다. 목사의 딸인 에이다가 콜드 마운틴 이라 불리는 고장에 이사와, 말수가 적은 시골 목수인 인만과 인사하게 되고, 서로를 향한 설레임은 눈빛으로 덤덤히 전해진다.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한 사랑의 발로일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 이유 조차도 없는게 옳다. 그냥 그대로 끌리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인만은 어느날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꾹꾹 눌러 놨던 감정을 어렴풋이 발설한다. 아침에 깨어날때 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뭇친 그리움을 무엇이라 말해야 하나. 시적이고 아름답고 진솔하다. 투박하지만 진실이 담긴 그의 표현은 정말. 감언이설의 사랑의 방정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음은 서로의 첫 대면에 한순간에 통한다. " 아무말 없이 마주 서 있는 걸로도 충분하다면요.." " It is ! " 


 좀 다른 이야기인데, 주드 로를 보면 참 완벽한 남자의 이미지다. 최근에 보게된 영화 '벨아미'를 보면서 느낀건, 주인공이 전혀 벨아미스럽지 않아, 나는 오히려 주드 로 가 떠올랐는데, 혹 그가 지금 벨아미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벤 반스가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서로 잘 알지 못한채, 사랑이 무르익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이, 인만은 전쟁터로 떠난다. 서로의 사진을 전달한 것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들은 깊은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인내한다. 사진의 초창기 시절. 다게레오타입 초상 사진을 볼 수 있다. 영화 곳곳에서 초상 사진의 의미가 아주 절절히 드러난다. 1860년 그 시절. 초상 사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 사진을 준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단면을 전달한 것일게다. 


 전쟁터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죽음의 사경에서 에이다의 편지를 듣고, 그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깨달아 탈영을 감행한다. 이때부터, 고향으로 가는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오로지 그녀를 향한 마음만을 품은채, 그는 어떠한 시련과 욕망에도 견뎌내어 꿋꿋이 나아간다. 염소를 키우는 할머니의 외딴 오두막에서 그녀가 자기를 잊었을거란 불안에 감정이 북받치지만, 그는 끝끝내 일말의 그 마음을 잊지 않았다. 에이다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상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견디어내고 개척했다. 여기서 르네 젤위거의 탁월한 캐릭터와 연기가 인상 깊었다. 

 

 염소를 잡으면서 인만에게 말해주던 할머니의 대사가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전쟁터에서 수도 없이 살인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은 " 이렇게 살아있다니..." 

 "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제 역할이 있어. 자연을 둘러봐. 새가 씨를 쪼아먹고 새똥에 섞였던 씨가 나무로 자라나지. 새도 똥도 또 씨도 제 역할이 있는거야. You've got a job ! "




 전쟁터에서 황폐화된 자신의 영혼을 그녀를 향한 마음만으로 간신히 부여잡고 끝끝내 도착해 그들은 해후한다. 하지만 단 하루의 사랑의 달콤함도 운명 앞에서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힘들게 마음의 끈을 놓지않고 기다렸건만 역시 영화의 대미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이렇게만 들으면 전형적인 진부한 사랑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뭉클함은 보이지 않아도, 지금 여기 없어도, 현실이건  상상이건,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씀에 있다. 그는 갔지만 세상 곳곳의 만물의 사소한듯한 경이 속에서 그의 마음을 발견하는 에이다의 멘트로 영화는 끝난다. 


 뭐 전형적인 로맨티스트다운 영화다. 가을에들어 그런 감정에 치우쳐 이 영화를 감상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겉으로 드러난 사랑이야기의 배경에 깔린, 전쟁의 참상을 어떤 정치나 이념의 치우침 없이 보여준다는데 있다. 마치 반전 영화의 명작 '지옥의 묵시록' 에서 로드무비식으로 전쟁의 광기를 보여주듯이, 전쟁이 가져오는 다양한 비극을 주인공들의 기나 긴 여정에서 드러내준다. 그리고 그것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더 특별한 반전영화가 되었다. 

 다시금 감상한 이 영화는 아주 훌륭한 영화라 생각된다. 잭 화이트가 나오는 영화 답게 음악이 아주 훌륭하다. 왠지 신혼부부가 주말에 부둥켜안고 감상하면 좋을 영화..ㅎㅎ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말 아쉬운 영화에 대해서  (0) 2012.10.07
정말 별로인 영화에 대해서  (0) 2012.10.03
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  (0) 2012.09.16
러블리 본즈 (2009)  (0) 2012.08.31
너클볼 [EIDF 2012]  (0) 2012.08.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