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음침한 초겨울의 날씨는 세월의 무상함, 혹은 속절없음을 뼈까지 시리도록 사무친다. 내가 그것에 초연할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기에, 오늘같이 비오는 우중충한 겨울 일요일  아침은, 과거로의 여행으로 마음을 풀어 놓는다. 
 아침에 약속했던 등산 계획은 취소했다. 오랬만에 대학동기들과의 만남이지만, 몸이 본능적으로 가지말라고 말해준다. 어디 쑤시진 않지만, 시애틀 날씨를 연상케하는 오늘의 날씨는, 시애틀 뮤지션들의 음악을 요구하고 있다. ( 시애틀은 꿈속에서만 가봤다 ㅎ. 지미 헨드릭스와 커트 코베인을 통해서..)

 시애틀의 또다른 명물. 너바나와 함께 시애틀 Grunge 음악의 양대산맥 펄잼(Pearl Jam) 신보를 엠피삼으로 들어봤다. 이제는 노장 밴드의 반열을 공고히 하고 있는,펄잼의 몇 번째 앨범인지도 가물가물하다. 90년대의 다른 밴드들처럼 와해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한 때. 구닥다리 퇴물 취급당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전반적으로 레전드 급으로 올라서는 느낌이다. 음악은 여전히 진지하고 기운이 넘치지만, 배나오고 짧게 자른 머리의 전형적인 중년의 모습을 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신기루 같은 젊음의 환영에 몸서리 쳐진다. 

영원히 잠들지 않는 듯하던 록 스타의 외침과. 긴 머리에서 오는 헤드뱅잉과 에너지는 시간의 퇴적에 뮤뎌졌지만, 록은 돌고 돌아 ( 말 그대로 Rock N'Roll ) 계속 젊음을 향유할 것이다. 록은 철이 들지 않는것이다. 세월이 깊어지면 록의 엣지는 블루스 해진다. 탱글탱글하던 스킨은 중력과 더욱 친해진다. 하늘이 남자고 땅이 여자라고들 한다. 하늘에서 태어나 땅의 기운으로.. 어머니의 포근한 품으로 회기하는 것이다. 자궁속에서 듣던 그 뭉뚝한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우리는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더욱 블루스 음악이 좋다./ 90년대 초반의 펄잼은 너바나와 함께 세계 최고의 밴드였다. 하나는 자살로 젊음을 봉인했고, 나머지들은 흐지부지 없어지거나 해체됐고, 다른 하나는 꾸준히 세월에 맞서 지금 몇번 째 인지 모르는 새 앨범으로 나의 젊음을 뒤돌아보게한다. 분노하는 젊음의 화신이었던 그들.. 외관은 삵아가지만 록의 정신은 계속 유효하다. 우리의 인생은 이미 발사된 화살이다.. 불화살이 아닐지라도, 바람을 통해 타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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