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 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나의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이 적힌 너덜너덜한 A4 용지의 작은 귀퉁이에 기약없는 소심함으로 적혀있었다. 제목의 힘 이었는지, 또는 글 잘쓰는 비법이라도 귀동냥할 막연한 심정이었는지 도서관을 나오는 내 가방에는 황홀한 책감옥으로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 지긋히 내 어깨를 눌렀다.

 이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대하소설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쓴 작가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읽어보지도. 읽을 생각도 안 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안 사실은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지금까지 몇 쇄를 찍었다더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독자층을 거느린 대 작가이셨다.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긴 소설들은 별로 읽은 기억이 없다. 예전 학창 시절에 읽었던 <삼국지>와 <의천도령기> 라는 무협지 정도.. 그 동안 나의 무식의 소치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 <활홀한 글감옥>을 읽고 나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부끄러움과 설레임이 교차한다.
 내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전혀 안 보았다고 하니, 친구가 "넌 앞으로 무척 행복할꺼야.'라고 말하더라. 내게는 외국의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앞으로 <태백산맥>을 필두로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읽을 생각하니, 가슴이 벌써 서서히 달아오른다. 

 이 책은 70줄 나이의 노 작가의 자전적 인생이 담겨 있다. 강연회에서 젊은이들의 질문을 충분히 답변할 시간이 없어, 그 중에 질문들을 뽑아내어 작가의 삶과 인생에 대한 정수들을 모아 전해준다. 그의 40년 글쓰기 인생을 한마디로 축약한 말이 이 책의 제목이다. 황홀한 글감옥.  그는 매일 원고지 30매의 집필량을 유지하며, 철저한 자기관리를 한다. 글 쓰기를 고달픈 노동이라 말하며 그는 글감옥 속에서 문학의 성취감을 맛본다. 글을 쓰고자 한다면 언제나 막장에 있는 광부만이 석탄을 캘 수 있다고 일설한다. " 40,50년 글을 쓰는 작가도 한 문장을 쓸  때마다 한 번 곡괭이질하는 광부의 노동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p.253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세번씩 생각하고 원고지에 적는다고 한다.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 것은 지금의 컴퓨터 세상에서는 매우 원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이와 연필로 자신의 필체로 글을 적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숭고해 보인다. 세간에 최고의 문장가라 칭하는 김훈의 작업 방식도 그렇다. 한 문장, 한 구절 들이 살아 숨쉬며 한 단락은 감동의 상념으로 물든다. 그것이 꼭 글 쓰는 행위의 미디어적 차이에 비롯되기 보다 온 몸을 온전히 글쓰기에 내던지는 투철한 장인 정신과도 맞닿아있다. 한올 한올 뜨개질 하는 집중과 정성으로 또는 한 켜, 한 켜 짜는 손수 움직이는 방적기계의 수고 처럼 글 쓰기는 매일 쉬지 않는 노동이라고 한다. 조정래 작가는 소설의 감동을 위해서 남들 8시간 일하는 것보다. 두배인 16시간의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투철한 예술 정신. 직업 의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모든 내용과 생각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비판적 책 읽기로..이건 내 생각과 다른데..하는 점이 전혀 안 보인다. 이 작가의 . 역사의식. 민족의식. 친일파에 대한 생각. 이념등. 나로썬 너무나 동의 된다. 특히 민족의식에 대한 나의 부정적 편견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 이란 단어에 따르는 수구,보수 우경화에 대한 무의식적 반감이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잊어버리는 필터 역활을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분명.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나의 편견은 여지 없이 깨지고 새로운 정체성의 자각에 몸둘바를 모를지도 모르겠다.

 책의 모든 부분이 귀감이 되서. 오히려 글 (독후감?)을 쓰기가 어렵다. 너무나 인상적인 구절들이 많아서 따로 발췌할 것이 없이. 나중에 다시 음미 하면서 읽어봐야 한다.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뿌리>에서 1억명의 인디언이 백인에게 학살 되었다는 사실.(논문으로 증명되었다고 함.) 이 깜짝 놀라게 했고, 부인 김초혜 시인 과의 사랑 이야기. 삶도 매우 부럽고도 귀감이 되었다. 포스코 명예 회장. 박태준씨의 놀라운 인품. 등 몰랐던 사실들도 기억에 남게 전해진다. 그리고 4-4-2.  축구 전술이 아니라. 작가가 권하는 책을 읽고..그것에 대해 생각하고.숙고해서...글을 쓰는 비중을 4-4-2의 비율로 해야 한다고 한다. 책을 읽은 시간만큼 자신의 생각을 정리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블로그의 글쓰기에 있어서 생각해 보아야 관점이다.

 자신이 현재 작가라면. 혹은 작가를 지망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태백산맥>을 읽어야 겠다는 소명의식이 생긴것 만으로도 감사한데, 너무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시대의 참 좋은 어르신 이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평생 애처가로써 문학에 전념한 그의 삶이 마음속에 일렁인다. 

-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p.36

- '현실 속에서 문학은 과연 무엇인가.'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소설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고심은 진정성을 가진 문인이라면 누구나 하게 될 것입니다. 릴케는 자신의 시가 굶주려 죽어가는 소녀에게 주어야 할 한 조각 빵만도 못한 것을 탄식했고, 카뮈는 자신이 내세우는 실존주의가 몽마르트르 비탈길에서 얼어 죽어가는 노숙자를 살릴 담요 한 장만도 못하다는 것에 신음했습니다. p.38

- '돌은 단 두개. 뒷돌을 앞으로 옮겨놓아가며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게 문학의 징검다리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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