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보아하니 국립제주박물관 뒤에는 별도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었다. 제주시 동쪽 끝자락에 위치에 있어. 제주시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올듯 싶었다. 내 안에는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아마 인간의 본능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의지가 좀 더 강한 것 같다. 좀 더 걷다 보니까. 박물관 뒤에 우당 도서관이 있었다. 잠시 들어갔다. 그러나 금방 나오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도서관을 가는 것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몇시간 책을 읽고 나오는 여행객은 내 생각에도 좀 이상했다. 도서관의 분위기는 너무 가라앉았다. 치열한 자기계발과 학문의 정신. 서울의 도서관에서도 느끼기 힘든 분위기를. 제주도에선. 어림도 없겠지. 그래도 이 도서관은. 정말. 어둡고 무기력한 느낌이다.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열의도 느낄 수 없었다.
 밖에 나오니 이제 어두워져서. 달빛이 휘황찬란했다. 좀 더 위쪽으로 가보니, 40분 코스의 산책코스가 있었다. 친구가 오기로한 시간과 딱. 맞아서.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걸었다. 보름달이 풍만한 음기가 가득찬 제주도의 밤 이었다. 별도봉이란 곳에 올라서니. 어두운 바다와. 불빛이 달빛에 울렁거리고 있었다. 



 첫날 제주도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친구와 후배를 만나. 이마트에 가서 내일 산에 가서 먹을 간식과. 맥주등을 사서 마시며, 일찍 잠들었다.
 7시쯤 동이틀 무렵 일어나서. 서둘러,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우리가 오늘 오를 코스는 관음사 ~ 성판악 코스로. 한라산 종주 코스라 불리우는 가장 길고. 힘들 코스였다. 사실 다른 산에 비해. 별로 어렵지 않은 등산로 이지만. 1950미터의 높고 거리가 긴 산이라.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등산로에는 눈이 다져져 딱딱히 굳어져 있었다. 준비해 간 아이젠이 아주 유용했다. 그러나. 아이젠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체력 소모가 되는 점이 있었다. 오랬만에 등산을 해서 인지. 좀 힘들었다. 내가 입고 온. 거위털 파카는. 고등학교2학년때 입고 장농에 쳐박아둔. 색도 바랜 구닥다리 점퍼였다. 이 파카의 보온력이.. 등산을 하기에는 참 애증 이었다. 걷다보면.. 열이 나서 더워 땀이 나고.. 쉬다보면. 급속히 체온이 떨어져. 곧 다시 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등산용 의류를 입어야 하는데, 어쨌거나. 있는 옷 활용하자는 내 생각은 불편을 감수할만 했다. 

 정상 까지 8.6 키로. 매우 길다. 1년전 성판악 코스로 오를 때보다. 훨씬 힘들다. 우리 보다 조금 앞서 출발한. 빨간모자여자가 홀로. 분투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벼운 인사 조차 건네지지 않았다.
 남자 신체능력이 33살 정점으로 꺽인다던데..그래서 인지. 그리고 배낭의 무게 때문에라도 꽤 힘들었다. 아침도 안 먹고. 건빵과. 스니커즈바. 물로. 에너지원을 보충하니. 칼로리가 쏙쏙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백록담. 얼마 없는 물이 얼어붙어 있다.

사진 C.H.Park

 백록담이 내려다 보이는 정상은, 매우 바람이 거셌고. 추웠다. 조금은. 설경으로 뒤덥힌. 정상을 기대했지만. 눈은 거의 없었다. 다만. 성판악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득실득실했다. 1년전의 한산함 속의 사색의 추억은 뒤로하고. 춥고 배고파서. 서둘러 내려갔다. 두번째 래서 그런지 처음 처럼 신령스런 기운을 잘 못 느꼈다.

 내려오는 길에. 뉴발란스 커플 신을 신은 젊은 한 쌍을 보았다. 내리막길에 얼음이 박혀 있어 꽤 미끄러운데. 아이젠 없이. 여자가. 머뭇거리자, 앞에 선 남친이. 손 잡아줄 생각은 안하고. 머라고 구박을 하고 있었다. 지나치면서 속으로 저런애랑 왜 사귀냐고..중얼거렸다. 내 마음속 의견이 그녀에게 전달되었기를 기원하면서. 우리는 아이젠 덕분에 빨리 내려가고 있었다.

 내려가는 중턱 진달래 휴게소에서. 육개장 사발면과. 나머지 간식을 먹고. 그 동안 참았던. 대장속을 비우고, 쉬고 있었다. 어느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친구에게 누구 아니냐고 반갑게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래서 눈길을 피했다. 그런데 곧. 대학원 몇기라고..우리에게 더욱 아는 체를 했다. 그제서야. 알아봤는데. 내가 알던 그 후배와는 너무나 분위기가 바뀌어서 못 알아보았던 것이었다. 고등학생 같은 용모에 전혀 멋부리지 않은 안경쓴 외모에, 조용해서 눈길이 안갔던 후배였는데, 어느새 얼굴이 활짝핀 아가씨가 되어 우리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참 착한 후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외모도 참 착해졌다. 남친이랑 같이 왔다던데. 역시..여자의 미모는 남자가 완성하는 거라 생각한다.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나자..우리는 조개속에 진주를 품은 후배라는 것에 동의를 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후배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났다. 결국 몇일 후. 친구가 기억해 냈다. 속이 후련했다. 인사를 잘해서. 나도 항상?. *미 구나 라고 대꾸해줬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성은 기억이 안 난다. 

사진속 사슴 궁뎅이가.. 숨은 그림 찾기.

 내려오는 길은 9.4 키로, 올라가는 것보다..훨씬..체감적으로 길게 느껴졌다. 아이젠 때문에 무릎에 가중되는 충격이 누적되어. 피로감이 상당했다. 내려갈수록. 흐릿한 안개에 쌓이더니. 눈발도 간간히 내렸다. 신묘한. 산의 늬앙스와 톤이. 피로감을 달랬다. 아까 뉴발란스 커플은 손잡고 내려가고 있다. 역시나 그 여인네는 남자를 고를줄 모른다. 여자가 너무 착한건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와서, 영양보충하러. 흑마가든 이라는 말고기 전문점을 갔다. 처음 먹어보는 말고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말인데. 들어가기전에..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회를 먹을걸 하며 갈등했으나. 식사를 마치고는. 감동의 따~봉을 연발했다.


 말고기의 다양한 코스. 육회. 사시미. 장조림.. 구이. 불고기..말고기국.. 아아~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말 이었다..ㅜㅜ
 이 집은. 관광객 상대로 하는 식당이기 보다.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이었다. 역시 이런집이 최고야...

 배도 부르고 허리가 다리는 천근만근 뻐근한데. 친구의 후배가 산방산 탄산온천을 가자고 강추를 날렸다. 제주도에 사는 이 후배의 추천은 왠지 신뢰가 갔다. 역시나.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 였다. 야외 수영장과 온천이 있는데. 밤이고 겨울이래서.. 우리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후배는 친구한테..비키니 여자 없다고 구박받았다. 이 탄산온천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허리와 다리의 뻐근함이 많이 풀렸다.  더더욱. 그날밤. 좀 야릇한 꿈을 꾸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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