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작년에 읽었는데. 매우 얇은 책이지만. 많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좀 시간이 지난 후에 글을 써보려 했는데. 밑에 올린 신경숙 님의 글을 읽고, 당분간 또 다시 마음에 담아 둬야 겠다. 
Why not? 안될게 뭐 있으랴..
 

「D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소설가  신경숙   


어떤 자리에 갔더니 돌연 화제가 이혼으로 모아졌다. 이혼한 사람들의 사례들이 쏟아졌다. 반응들도 여러 가지다. '좀 참지'에서부터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느냐, 잘했다.. 등. 분명한 것은 이제 이혼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일단은 비판적이었던 예전에 비하면 이혼도 정당하게 평가받는 분위기다. 주변에서도 근 1~2년 사이에 이혼한 사람이 여럿 늘었고 나부터도 이젠 누가 이혼했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럴 만해서 그랬겠지 싶다. 대화 주제도 이제는 이혼 자체보다도 이혼 후의 삶으로 옮겨가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어느 사랑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앙드레 고르가 쓴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겨우 89쪽짜리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세 번이나 책상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뭐랄까 마음이 아플 지경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이며 언론인이다. 16세 때 독일군 징집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하고 사르트르를 만나 그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실존주의 현상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파리로 이주해 '미셸 보스케'는 이름으로 기자생활을 하기도 한다. 생태주의와 노동이론의 선구자이기도 하며 60년대 68혁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며 사르트르에게서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인물이다.

 

고르가 아내 도린을 만난 것은 스위스 로잔. 고르는 도린에게 첫 눈에 반했다. 이주에 이주를 거듭하며 불안한 삶을 계속했던 고르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늘 사랑이 결핍된 채 지냈던 도린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각각 스물넷과 스물셋의 나이에 결혼하게 된다.

 

어머니가 떠나버린 상태의 계부 아래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영국 출신 도린은 훗날 프랑스 국적을 얻고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창간한 지성인이기도 하다. 사교적이고 늘 밝은 표정이었던 도린은 늘 삶이 불안했던 고르가 최상의 저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도우며 살았다.

 

1983년 도린이 '거미 막염'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얻게 되자 고르는 자신의 모든 활동을 접는다. 고르는 도린을 위해 파리를 떠나 보농이라는 시골에 집을 얻고 20여 년을 아내 도린을 간호하며 지낸다. 고르는 '아내 도린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보았고 '그 본질을 위해 비본질적인 것'을 포기한 것이다. 보농에서 그들의 삶은 '검소한 살림, 유기농으로 자급자족, 여유로운 시간 갖기, 나무 가꾸기, 진솔하게 대화하기, 저술활동, 친교활동'으로 재구성되었다. 역으로 도린의 병이 오히려 그들에게 그들이 이론적으로 추구했던 '완전한 삶'을 살도록 해준 셈이다. 고르는 자신의 생태주의 이론을 도린을 간호하며 삶의 방식으로 직접 살아내게 된다.

 

'D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내 도린을 향해 쓴 사랑의 고백이면서 유서에 가까운 글이다. 이 책 속의 도린을 향한 고르의 사랑은 경이롭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까지 이르는 글을 읽어가다 보면 그 신성함에 숨이 멎을 듯하다. 그들은 작년에 평화롭게 죽은 채로 시골집 침대 위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에게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문에 붙어 있었다. 그때 그들의 나이가 여든셋과 여든둘이었다. 죽음까지도 함께한 완전한 삶이었다.

 

부부간의 이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일이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쿨'해진 이 현실에서 'D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오직 당신뿐"이라는 사랑의 감정에서도 순정이나 아름다움보다는 상대를 억압하는 스토커 분위기를 더 느끼게 되는 이 현실이 부추기는 고독이 한순간 덮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대사회는 예전과 달리 다양한 인간관계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행복한 사람보다 고독한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서로의 실패와 상처와 폐허를 받아들이는 깊은 관계가 성립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고르와 도린 같은 경이로운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우선 두 사람이 서로를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받아들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르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린이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에 아픈 도린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아픈 도린으로 인해 고르의 삶도 평화롭고 아름답게 완성된다.

 

죽음까지도 함께하는 그들의 삶이 감동으로 밀려들었던 것은 헤어짐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는 이 현실에서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을 느꼈기 때문일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미네 집 _ 전몽각  (0) 2011.05.07
창작 면허 프로젝트 _ 대니 그레고리  (2) 2011.02.09
점선뎐 _ 김점선  (0) 2011.01.16
오빠가 돌아왔다 _ 김영하  (0) 2010.11.23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0) 2010.11.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