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된 글은 올해 2월에 쓴..나의 리뷰..2010/02/04 - [책] - 보통의 존재 _ 이석원 



기대 없이 시간이나 때워 볼 생각으로 들렀던 여의도의 작은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노란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제목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드커버가 아닌 것도 좋았고.

중간 토막에서 몇 문장을 쓱 읽다가 <구매>를 결정했다.


저자가 이사한 이야기였다.

가세가 기울어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일상의 과정과 감성을 말갛게 써 내려간 문장을 보자 마음이 쿵하고 움직였다. 마음이 움직이면 지갑이 열리는 법이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나는 그저 기억 속에 뭍어두고 세월에 풍화되길 기다렸던 시린 경험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궁금했다.



'그래, 너는 어떻게 했다고?' 하는 심정.

저자에 대해 나는 아무 정보가 없었다.

그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뭐해 먹고 사는 사람인지 상관없었다.



책 날개에는

1971년생

나이탐험가

라는 짧막한 자기소개가 있었다.



나이 탐험가?

좀 꼴꼴나네...

딱히 하는 일이 없으면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지...라고 생각했다.



그건 엄밀히,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질투’다.



나는 살아가는데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여리디 여린 감수성, 폐쇄적인 성향, 집단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톨이 기질, 다른 사람의 눈빛이나 말투, 하다못해 구사하는 ‘조사’에도 민감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자친구들은 늘 내 앞에서 ‘말조심, 개조심’을 해야 했다. 내가 워낙 토씨하나에도 민감하게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랬고, 워낙 ‘개’를 좋아해서 개를 비하하거나 홀대하거나 식욕을 느끼는 일을 금했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도 참 힘들었겠다) 하여간 총체적으로 '*랄맞은'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그런 ‘슈퍼 마이너리티적인 기질’을 무릅쓰고, 온갖 명분과 동기부여에 매달려 별볼일 없는 ‘월급쟁이’로 근근이 살아가는데, 나랑 유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캐릭터로 ‘아트’ 혹은 뭔가 ‘창작적인 일’로 자리매김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질투를 느낀다. 물론 ‘창작’의 밑거름이나 자양분이 되는 ‘고통’의 댓가는 어마어마할거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다 창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부러울 수밖에.



이틀 동안 꼬박 이 책을 붙들고 읽으면서 혼자 낄낄 거리고, 한숨 쉬고, ‘아이고 이 바보 같은 놈!’이라고 탄식하고, 치가 떨리는 소심함에 ‘너 울트라볼드대문자 A형이지!’라고 호통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왈칵 눈물을 쏟고, 아문 줄 알았던 상처가 덧나서 쩔쩔매고, 미련 곰퉁이 같은 처사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고양이 발톱 수술한 에피소드/ 260p),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내려 놓느라 허둥대고, 솔직 담백한 표현에 파안대소하고, 머리에서 뜨거운 열이 훅 올랐다가 손발이 저렸다가….

헤어진 연인의 편지를 불로 태우면서 옆에 소화기를 두었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쓰러졌다.(361P) 본인이 그것을 ‘조심성’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더 더욱.(그건 소심함에 가깝다)



암튼 별짓을 다했다.

내 옆에 앉은 애가 ‘저 여자가 미쳤나?’ 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작가는 내가 차마 ‘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한 감수성을 이쑤시개로 콕콕 찔러대듯이 건드렸다. 좋게 표현해서 ‘디테일’이지, 사실 초라하고 궁상맞기 그지 없는 인생의 단상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눈물겹도록 진실한 것’들이다. 너무나 여리고 소심한 감수성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했다는 어떤 고군분투기보다도 공감의 폭은 스펙타클했다.



인터넷을 뒤져 작가의 얼굴을 보니, 좀 칙칙하긴 하다.(농담농담)

글쓴이의 얼굴을 알고 ‘내 이야기같은 남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친구의 편지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랑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런 남자랑 연애를 하면 어떨까?’ 공상도 해봤다.(정말 별 짓 다했다)

내 인생이 대박으로 패가망신할 거라는 결론이 들자, 달콤한 공상은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나 하나만으로도 버겁다. 특히 이 작가는 서점을 매우 좋아해서 허구헌날 서점에서 데이트하자고 할거 같은데, 나는 서점이라면 질색이다. 나는 사람이건 물건이건 떼로 모여있는 곳을 무서워한다.



오늘은 심산스쿨에서 명로진 선생님의 오픈 강의가 있는 날이다. 몇 주 전부터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기다려온 일인데,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자 또 마음이 갈팡질을 시작한다. 이 작가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자면, 나는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싫어 전쟁처럼 자기 자신과 싸우며 미루고 미루다 죽지 못해 나가는 사람’이다(377P)



나와 그(작가)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지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쪽이고, 작가는 지각을 하는 쪽이라는 거.(그러니 내가 사는 게 좀 더 피곤하지 않겠는가? / 89P <고통이 나에게 준 것> 패러디)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이 어렵다.

‘사람을 만나는 일’, ‘멀리 가는 일’이 진땀 나게 어렵다. ‘좋다’, ‘싫다’가 아니라, ‘어렵다’. 그래서 점점 약속을 잡지 않게 되고 어쩌다 약속이라도 잡으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할까 봐 혼자 별 쇼를 다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그 ‘약속’의 대상이 친구이거나 미용실 예약이거나 마음 상태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혼자 세우고 혼자 접은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건 정말 약도 없는 강박증이다.



사람 많은 곳은 특히 난감하다. 게다가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은….

전철을 타고 신촌까지 갈 수 있을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도 않다. 오랜만에 명선생님을 보고 싶어서, 꼭 가겠다고 혼자 다짐을 하고 다이어리에도 써놓았는데, 몸도 마음도 무겁게 가라 앉는 걸 보니 오늘도 글렀다.  



그래도 오늘은 혼자가 아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너무 닮아서 불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나와 비슷한 ‘보통의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 하려고 했는데,

이것도 무리 지으려는 습성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외로움’마저도 군집을 이루면 위로가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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