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 님이 작고 했다. 몇일전, 서점에서 최인호의 유작인 '인생'을 읽었다. 되게 많이 아파보였고,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우연찮게도 그 다음날 뉴스에서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유명인사의  부고 소식에 이렇게 헛헛한 기분이 드는건 실로 오랜만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의 참담함과는 다른 종류의 엄숙함 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예전의 어느 에세이에서 그가 우울증과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침샘암이라니, 마지막 책. '인생'은 죽음앞에 선 한 인간의 절박함을 토로했다. 이전의 글과는 매우 다른 느낌은 이승과 저승의 심판대에 선 인간의 선한 나약함 때문이었다. 그는 천주교와 불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인생의 소박한 통찰을 말해준다. 그런 성인의 말씀들은 다른 책에서 많이 들어봤어도, 투병 생활을 하던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귀들은 더욱 심지 깊었다. 



 _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은 소화 테레사의 말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과거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미래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사리분별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불교의 골수인 [금강경]에는 이런 명구가 나온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선승 황벽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

 주님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내가 내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빵을 달라는데 아버지께서 돌을 주시겠는가. 아들인 내가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겠는가. 내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믿기보다 내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더 믿어 교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고 계신 아버지께서 내 날개를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는가.

 백척간두에서 유일하게 사는 방법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일이며, 성난 파도를 잠재우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의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길이다. 36-37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렵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과거를 걱정하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8-39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저를 붙드신 목적은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 있는 하느님으로서의 '말씀'능력과 예술로서의 '행동'능력과 성령으로서의 '생각'능력, 즉 '지언행'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렌즈로 햇볕을 모아 초점을 맞추면 불꽃이 일어나 종이를 태울 수 있듯이 분열된 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오직 '사랑'의 초점으로 집중되어 불타오르게 하소서, 저의 말이 곧 저의 생각이며, 저의 생각이 곧 저의 행동이며, 저의 행동이 저의 말임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달려갈 수 있도록 주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아멘. 170-171




 젊은 나이에 데뷔 후,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 했고, 대다수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며 대중작가로 인기를 누렸으나, 문학 작품 으로의 평가는 야박했다고 한다. 항상 그래왔듯, 잘 팔리는 대중작가에게 아티스트 대접은 언감생심 일까. 하지만 나는 '별들의 고향'은 안 읽어봤지만, 소설집. '타인의 방' 과 여타 에세이글들.. 그리고 '길 없는 길'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글의 리듬이 매끈하여 술술 잘 읽히며 몰입 뿐 아니라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묵직함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는 실로 진정한 작가라고 느낄 것이다.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 작가의 열정과 인내를 두루 갖춘. 


 유림 2권 까지 읽다가 말고, 잊고 있었는데, 몇몇 주요한 작품들은 읽고 싶어진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아직 못 읽고 있지만..


 오늘 오전에 명동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열렸단다. 가고 싶었으나 못갔다. 비오는 밤. 마음으로나마 명복을 빕니다. 천주교인 이면서 재가 불자였던, 고인을 위해. 나무아미타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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