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시대. 언제쯤 여명이 밝을지 모르는, 아니 태양(진실,진리)은 있어도 깜깜한 터널속에 갇힌 암울한 시대에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로 어둠에 맞선 지식인이 있으니 우리는 나름 희망을 희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패하고 무자비한 독재 권력에 기대거나 타협하지 않고 옳은 말을 소신대로 한 그의 삶은 우여곡절의 풍파가 있을지언정 그의 글을 통해, 진실을 직시하고 사람들이 폭압에 맞서 행동하게 한 사상의 근거를 이룰수 있었다. 


 그는 진정 참된 지식인의 모범이자 표상이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실로 인간정신의 위대함이라고 본다. 실존적 육체 고문의 고통과 영혼까지 파탄나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의 올곧은 시대정신과 역사인식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이 시대의 어르신 이었고 진정한 선생님 이었다. 


 여기저기 지면에 발표했던 여러 글을 모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우리의 슬픈 역사, 현실의 문제들을 상기시키고 성찰과 분노를 할 수 있었다. 우리의 훼손된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고 조금이나마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수호하는데 있어 마음가짐을 다잡게 한다. 또한 학생들의 역사공부와 글쓰기 공부는 리영희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진실되다. 바른 생각의 비롯과 바른 문장의 도출은 이 책의 글을 통해 배울수 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는 노신에게 배워온다. 


 - 노신이 그 시대의 중국사회에서 해야 할 일은 전통과 지배계급의 허위를 까밝히는 일이었다. 몽매한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작업이었다. 그러자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쉬운 말을 가지고 알기 쉽게 써야 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물.관계를 평이하게 풀어 써야 한다. 추상적 용어를 덜 쓰고. 구체적 낱말로 표현해야 한다. 이론으로 해명하려 하지 말고 구체적 증거와 자료를 풍부히 동원해서 제시해야 한다. 학자.전문가.교수.박사 따위의 자화자찬의 높은 자리에서 '가르쳐준다'는 교만한 자세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친절함이 원바탕이어야 한다.   ...이것이 노신이었다. 그가 글을 쓴 시대의 상황은 70년대 오늘의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다. 정면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반지성'의 시대였기 때문에 역설.해학.완곡.비유....등으로 뜻을 전한 것이 많다. 그 기법을 그에게서 배우려고 했다. [{우상과 이성} 일대기] -


 -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에서 -



  아직은 독후감을 쓰기에도 벅차다. 너무나 많은 촌철살인의 글귀들은 깨침의 연속이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의 진실 이었다. 그 당연한 논리의 귀결은 우리의 참된 민족정기의 회복이고 나아가 자기 완성의 길이다. 여전히 진실을 왜곡하는 지배체제의 언설에 혹하지 말고 진정한 마음으로 무엇이 옳은 말이고 참된 길인지 숙고해 보자. 


 - 남베트남의 사실을 통해서도 역사는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며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범함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다. 이 같은 역사의식은 거꾸로, '오늘'(현재)을 바로잡고 '내일'(미래)에 착오가 없기를 바란다면 과거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가 아니라 "반드시 과거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 [해방 40년의 반성과 민족의 내일] 389


 리영희 선생은 2010년 12월에 돌아가셨다. 생전에도 많은 이들이 선생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갈구하고 나아갔듯이 지금의 우리에겐 더더욱 절실하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본 책이지만, 새로 구입하고 틈틈히 읽고 또 읽어야 겠다. 그리고 한번의 감상문이 아닌 수시로 독후감을 써야할 책이라고 여겨진다. 진실한 마음과 이상을 가진 친구에게도 자주 이 책을 선물 해야겠다. 김수영의 산문집도 그렇고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발견은 삶을 단순한 유희를 넘어 엄숙하게 보게 한다. 그것은 개인의 영달만이 아닌 것에서 오는 반성이자 '무엇을 위해서'란 실존적 행동 추구의 용기이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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