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 소설집 '멋진 하루'를 읽었다. 

 작년에 우연히 별 기대없이 보게된 이 영화는 너무나 좋았고, 그 땐 몰랐는데. 원작 소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윤기 김독의 완전한 창작물로의 감탄할 신화는 깨졌지만, 대신 더욱 탄복할 연출력을 맛보게 됐고, 원작 소설을 읽을 재미를 갖게 되었으니..수용자 입장에선 매우 행복하다.

 영화와 소설..각각 장점이 있다. 단점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멋진 하루는 완벽한 영화와..완벽한 단편 소설 이었다. 

 소설의 장점은. 주인공 여자의 내면 심리가.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세밀하고 깔끔하게 묘사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제 삼자(카메라의 시선)에서 그 둘('이하통칭 희수 와 병운)의 관계를 공평하게 관찰하고 있지만.(조금은 여주인공 쪽이긴 하다.) 소설은 철저히 나(여주인공,희수 .)의 시점이다. 희수의 배경이 묘사되고. 병운과의 관계(플래쉬백), 속마음도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에선. 그런 설명적 묘사 없이..주인공들이 만나고 부딪히는 사건에서 그 둘의 관계를 유추하고 과거를 추측하고. 심리를 투사하게 된다. 오히려 그러한 점이..관객 입장에선. 자기와 동일시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 주변엔 희수(지극히 현실적인)와 병운(철없는 순수함) 같은 사람이 널려 있으니까.. 각각의 삶의 체험.(연애와 실연) 에 따라 제각각 수용되는 감흥이 남다를 것이다. 소설속의 내면 묘사는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커버가 된다. 특히 전도연의 역활은..관객의 현실의, 체험적 감정이입에 매우 동화되고. 하정우의 역활은 이상의, 희화적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또 영화가 소설보다 좀 더 좋았던 점은. 마지막 에서 였다. 결말의 처리가 다른데. 소설은 좀 더 밝게 끝나지만. 병운이 부인과의 저녁약속으로 레스토랑을 들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갈 때 없는 신세인 병운의 모습을 씁슬하게 보여준다. 근데 그 희수의 마지막 미소..가..소설속 파안대소 보다는.. 좀 더 여운이 많이 남는다.. 전도연이 연기한 그 표정은..이 영화의 전체를 함축하는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그 날 하루. 현실적 이해타산이 빠른 희수는 대가없는 선물(마늘즙)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얻었다. 

 병운의 삶은 누구나 봐도 대책없는 푼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과. 회의..자괴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밝고 긍정적이며. 사람을 상대할때. 진심으로 대한다. 타인에게 배려와 친철이 몸에 밴 사람이고, 자기를 통해서 상대를 돋보이게 한다. '나' 라는 자의식이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마음의 모든 촛점이 맞춰져있다.
 그의 캐릭터는 한심하기 그지없으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병운의 사소한 행동과 눈빛은, 문학,철학에서 말하는 초인과 다름없어 보인다. 돈에 찌들어 각박한 우리 현실의 삶에서 병운의 캐릭터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돈이 매개된 관계이지만. 돈이 서로의 관계를 침해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관계의 본질은 그저 서로에 대한 마음씀이다. 그 순간의 진정한 마음씀이 삶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희수는 마지막에 그런 웃음을 지은게 아닐까..병운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조금은 긍정하게 되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할까.
 타인과의 신뢰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며 배려와 관심이 삶을 풍족하게 만든다든 것. 그러나 돈이 없으면..어쨋거나 위태롭다는 것이..딜레마 이긴 해도 이 영화는 현실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삶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긍정적 태도와 서로 같이 하면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등..두 시간 동안의 로드무비에서 우리는 멋진 하루를 만껏 느낄 수 있다.

 희수가 병운과의 하루를 통해서..뭔가를 느꼈듯이..우리 또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미소를 짖게 만들 일을 행하고 있는가...

 영화 내내 하정우의 연기는 매우 유쾌하다. 초반 그 중년 여회장한테..애교 떠는 모습은..이 병운의 캐릭터에 거부할 수 없는 빠져듬을 유발한다. 희수의 차 안에 있던 카카오 99%를 선물하는 모습이란..
그리고 전도연의 퉁퉁거리는 까칠한 매력은, 나도 모르게 어루만져주고 싶게끔 한다. 희수가 지하철 2호선안에서 울음을 터트릴 때..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하게 된다. 충분히..

 이윤기 감독 작품 답게..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처음 롱 테이크도 좋았고..사운드의 세심함도 좋다. 더더욱. 희뿌연 스모그의 겨울. 거의 현실 그대로인 서울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의 삶과 사랑. 상실의 감정이 어떠한 영상의 화려한 기교 없이 보여지는게 좋다.

p.s. 근데 내가 남자래서 그런지 아님 철없어서 그런지..(아마 둘다) 너무 병운의 캐릭터에 가치 부여를 한건지도 모르겠다. 한심한건 분명한데.. 여자가 볼때는 뭐 저딴 자식이 다 있냐..며..일말의 긍정적 가치도 안 보려 할지도..사람마다 다르겠지만..마지막 희수의 웃음도 사람마다 다 제각각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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