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본 세편의 프랑스 영화들은 일련의 다양한 상념들을 일으키게 했다. 먼저 더글라스 케네디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빅 픽처'는 상당히 실망스런 작품이었다. '리플리' 같은 작품을 기대했었는데, 그냥 평범한 범작이 되어 버렸다. 특히 초반부의 주인공 내면의 상황 묘사들이 되게 피상적인데, 아마도 그런 여피족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렇겠지만, 그 큰 사건 전후로 벌어지는 묘사 들은 한결같이 심도깊지 못하고, 벌어진 일의 압축 언급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큰 변화에 선 주인공의 내면의 양상이 큰 공감이나, 스릴러적 긴장을 유발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또다른 삶. 그러니까 진정한 삶이긴 하나, 진정일 수 없는 딜레마에 갇힌 사진작가의 삶을 공감어리게 보여준다. 차라리 처음 소설을 읽을때 연상했던 배우, 브래들리 쿠퍼 주연으로 헐리웃에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감독은 구스 반 산트나 알렉산더 페인, 샘 멘데스 중에서.. 


 원작을 읽지 않았으면 또 어떤 감흥이었을까가 궁금해지지만 소설의 기억이 남아있는 나로써는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는 영화였다. 그런 면에서 영화 '리플리'는 얼마나 대단한가..배우들의 탁월한 매력과, 정체의 탄로를 앞둔 그 긴장감은..



 왕년에 천재 감독으로 추앙받던 레오 까락스 감독이 아주 오랬만에 돌아왔다. 4번째 작품 폴라X 를 종로3가 단성사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리뉴얼 하기 전이라 스크린이 작고, 관객석이 길쭉한 그 관은 홍상수 감독의 첫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이상한 영화적 체험을 하며 보던 기억이 있다. 영화와 현실의 이상한 조우의 느낌이라 할까. 현실의 삶처럼 영화도 계속 이어질거 같은..  난생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난, 이상한 체험이었다. 좋은 영화 작품은 그런 생경한 체험을 작던 크던 던지는 것일 게다. 레오 까락스는 첫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나쁜피''퐁네프의 연인들'로 이어지며 대단한 영화적 감각을 일깨워줬다. 그러다 (마지막 이었던) 네번째 작품 폴라X 이후로 잊혀진 감독이었다. 예전의 단성사 극장이었으니, 정말 오래된 잊혀진 기억들을 헤집고 근래에 다시 레오 까락스란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감독의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이란 배우도 함께.


 사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말할지 감감하다. 대단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며, 아름답고, 추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트와 광기. 그런걸 느꼈으나 감독이 말하려는 의도나 의미를 읽기에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영화는 구체적 현실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모호한 추상의 지점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란 매체에 대한 감독의 헌사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도.. 모션 픽쳐에 대한 성스러운 다면성을 현실과 영화, 실제와 가상의 삶, 가상속의 가상에 대해서 어지럽게 관통한다. 재미있다기 보다 흥미로웠는데, 영화 매체에 대한 감독의 탐구가 대단한 걸작 같다가도 다른면에선 작의적 허세 같기도 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영화였다. 고로. 진짜 예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본다면.. 글쎄.. 난 미국산 예술영화인 데이빗 린치 감독이 떠올랐다. 



 일본에 젊은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프랑수아 오종이 있다. 그들의 모든 작품들은 섭렵해도 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수아 오종은 '스위밍 풀''5X2''타임 투 리브''시트콤'등등의 작품으로 이름을 인지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정도로 그만의 색깔이 있었다. 문학적인 면이 영화의 저변에 깔려있다고 느꼈다. 이 작품 또한 글쓰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한 가정의 인물들을 관찰하고 글쓰기를 통해서 상상과 허구의 나래를 펼치는 지점이 영화속의 글쓰기. 이 영화적 허구..상상..관음적 관찰의 욕망등..다양한 상념을 불러온다.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다.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야기속에 풀어 내는 능력이 전작들에 비해 범접할수 없는 경지에 오른듯 하다. 프랑스 영화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오랜 편견을 오종 감독은 특유의 감각으로 타파한다. 글쓰기와 닿아있는 이야기로써의 영화에 대한 엿봄을 통한 상상적 허구에 대한 욕망을 위트 있게 그려 낸다. 사실 가장 재밌는 부분에서 갑자기   졸음인지 모를 순간 의식이 끊겨서 다시 한번 봐야 할 것이나, 영화의 매 순간들이 흥미롭게 몰입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정신이 깜박했을까나..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많이 나와 여러가지 모로 예술. 창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다시 이 영화를 보고 곰곰히 음미해 봐야겠다. 글쓰기에 대한 소재의 영화였던 구스 반 산트의 '파인딩 포레스터'에 비교하면 이 영화는 참으로 발칙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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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셀러 책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선호하지도 않지만, 이 책 만큼은 꽤 구미가 당겼다. 사진가의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책의 표지 일러스트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한 장의 그림이 함축하고 있는 것이 적절했고. 표지 광고 카피도. 꽤 어필이 된다. 우리나라에 첫 소개되는 더글라스 케네디 라는 작가의 책이 이렇게 큰 호응을 얻게 되는 시발점이 책의 외관, 적절한 패키지의 성공이라고 일단 생각된다.
 그리고 내용이..전형적인 대중 소설의 강한 흡인력과 적당한 생각거리를 남겨 준다. 문체는 짧고 간결하며, 스피드한 전개와. 각 장이 넘어갈때. 드라마 에서 스릴러도 넘어가는 국면등이, 소설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조금은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금방 읽어버리게 만든다. 소설의 기본적인 기능인, 이야기가 이끌어 나가는, 몰입과 재미, 결과의 궁금함. 독자를 성찰하게 효과. 등이. 적절히 포진해 있다. 이 책은 올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었지만. 원작은 1997년 작이다. 소설속. 사진작업의 주 프로세스는 필름의 시대다. 주인공이 구입하는 최고의 카메라는 캐논 EOS 1N rs (필름 카메라 시절 최고 기종)  로 소개되고..필름과..암실작업(현상. 인화, 밀착 프린트 프리뷰등.) 이 묘사된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선..복고적이고 전통적인 사진 과정이래서..어떤 아날로그적 향취가 뭍어난다. 그런데 좀 이상한건..어떤 부분에선..라이카 M9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현재 발매되는 최고가 디지털 레이지파인더 카메라 인데..번역자가..M6를 바꿔서 번역했는지..좀 의외다. 사소한 옥의 티 랄까.

 주인공이 사진가를 꿈꾸고..사진가를 하는 이야기래서 내겐 사소한 재미가 솔솔했다. 주인공이 카메라 가게에서 알바할때. 손님으로 리차드 아베돈이(이미 故人) 필름사는 장면이나. 애니 레보비츠. 다이안 아버스 등등. 사진가들의 언급, 또는 카메라 장비나 필름 이야기 등등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소설속 묘사되는 뉴욕의 월 스트리트나..주인공이 사는 뉴욕 외각의(기차로 통근하는) 고급 주택단지..그리고 주인공이 도주 할때, 서부의 여러 고속도로들..요트등은 내가 직접 경험한 풍경들이라..좀 더 소설속 묘사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의 전반부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고 감명깊게 본 작품 리차드 예이츠의<레볼루셔너리 로드> 와도 닮았다. 뉴욕 외각에 거주하는 중산층 이상의 평범한 백인 가정의 내면의 곪음..을 묘사한다. 누구나 보아도 괜찮은 인생인 그들의 삶은. 이루지 못한 꿈과..욕망에..잠식당한다. 그런 생활의 안정은 내면의 자유를 가두는 옥쇄로 작용한다. 삶에 자잘한 시련이 없다면..가정의 결속도 헤이해 지는듯. 부인은 옆집 사진가 지망생과 바람피고, 통속적으로 그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 그 때 부터. 사회적으로 안정된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삶의 촘촘한 묘사는, 급진적 사건으로..짧고 긴박한 스릴러 장르로 나아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끝까지 중산 가정의 내밀한 심리를 파고 헤쳐 들어갔다면. 이 소설은 대중이 좀 지루해 할 듯한 시점에..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한다. 이 부분부터 독자들은 주인공과 동일시 되어..자기 이야기 인양..몰입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과거를 버리고..완전히 다른 사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는.. 누구나..환상적으로 갖고 있는 몽상을 실현해 보인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삶은 미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현재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첨예한 자각이 서슬퍼렇다.. 사실 현재의 삶이란것은 과거와 미래가 뭉틍거려서..끄을고 나가는 것인데, 자신이 꿈꾸는 사진사로써 성공을 이뤘다 해도..그것은 자신의 성공이 아닌 것이며, 더더욱. 새롭게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영화 '리플리'나 '본 아이덴티티' 에서 맷 데이먼의 내면 구조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누구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현재의 삶이 고루해도..어쨋든 당신이 선택한 길이다. 선택을 했든 안했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인생이다. 현실의 맥락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한다면, 한마디로 목숨을 건 비약. 을  위해 한껏 발버둥 쳐보는게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소설속 주인공 처럼 우발적인 사건으로 휘몰리지 않고.. 좀 더..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한다. 우연이나 환상에 내맡겨진 삶이 아닌, 실존적 각성의 상태..너무 크게 웃을일도..화날일도..슬플일도 없는 그런 상태..그것은 자유일까..감옥일까..카메라를 들고 길 위에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자는 자유일까..감옥일까..그런 관념 자체가 없다는 게 답 인지도..순간을 꿰뚫어 과거속으로 보내버리는 남자를 위하여..나날이 과거를 지운다.  현실의 목표와 꿈을 혼동하지 말자. 목표와 실천이 없다면..꿈도 허망하다. 

 사람은 자신이 목숨을 걸만한 것을 찾지 못하면 죽게된다. 빌 게이츠가 했던 말인가..ㅋ

 4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가볍게 읽힌다.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한다는데.. 내용은 헐리웃과 더 어우릴 듯 싶다. 소설 읽으면서..영화 ' 콘스탄트 가드너' 에 나오는 배우 랄프 파인즈가 계속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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