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으나, 평소에 영화를 잘 안 보는, 영화를 전공했던 친구가. 난생 처음으로 영화를~ '아저씨'를 보자고 그랬다. 나는 의아해서..왜? 하고 똘망똘망한 의문을 날렸더니..대뜸..원빈이 멋있대. 여자들이 뻑간데..그의 대답이 벙쪘지만 3초도 안돼 난 깨달았다. 원빈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을거라는 예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아 많이 느꼈다. 극장을 나서면서, 어린애 마냥 정신적 희열에, 몸은 원빈에게 전이된듯 순간동작과 근육의 힘은 더 쎄진듯하고, 왠지 상상훈련만으로도 싸움을 잘 할 거 같은 기분이었다. 목소리 톤 또한 원빈의 그것처럼. 낮게 깔리는 저음을 흉내내고, 상처를 안은 자의 그 슬픔과 분노의 눈빛..을 마음으로라도 체득하려 꾹꾹 눌러 담았다..ㅎㅎ 이 평범한 자의 비루함이여..

 영화의 구조나 전개는 색다르지 않다. 어쩌면 진부한 액션 느와르 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뻔한 껍데기 안에, 주인공. 아저씨 원빈의 액션씬들은. 가히, 전 세계 영화사상..가장. 미학적이고 숭고하다. 액션의 대가들.. 브루스 리. 스티븐 시걸. 이연걸. 성룡. 옹박, 홍콩 느와르..등의 나름 독특한 액션씬들과 비교 자체가 불과한 사실적 액션은..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특수요원인 맷 데이먼의 사실적 액션과도 비슷하나.. 내가 보기엔 아저씨의 원빈이 한 수 위다. 

 국내 영화에선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의 액션이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고..이어서. '올드 보이'의 복도 도끼씬 등..나름 개성강한 굵직한 액션씬을 보여줬다면. 이 원빈의 액션씬들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 분노를 사실적인 액션으로 승화하여,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대리경험희열) 를 미학적으로 선사한다. 원빈의 동작 하나하나가..아름답다. 총을 쏘는 폼. 탄창을 갈아끼우는 동작. 달리는 모습..등등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해 보인다. 무술은 춤의 예술을 본는듯 하고, 원빈 자체는 하나의 완벽한 조각품을 보는듯하다. 그 살아있는 조각의 눈빛은 또 얼마나 삶의 서사가 농축되 있는지.. 아름답다.. 그의 손 조차도 잘 생겼다.. 여자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분석 차원에서 보러 갔다가..내가 빠져버렸다. 이 영화 이전에도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슴같은 눈을 가진 그는 심금을 울린다.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의 전달 방식이 좋다. 의도적으로 주제를 심거나..전달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타인의 삶..불행. 에 원하지 않게 참여하게된..단지 옆집 아저씨의 고군분투 응징기 인데, 그 과정자체에서..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옆집 사람도 모르고 살고..타인이 공공장소에서 당하는 폭력에도 눈 감아버리는 현실에서.. 아저씨 원빈의 행동은 영화라지만 의미심장하다.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액션만이 아니라..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부조리를 우리는 외면해선 안된다. 

 영화속 전개에 자연스레 주제가 녹아있는 방식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대비된다. '달콤한 인생' 같은 경우. 순간 마음이 흔들리는 남자의 내면을 잘 포착했지만, 영화 앞 뒤로 선승들의 이야기나..홍콩 느와르 적인 표면성에(마지막 에릭의 등장은 아비정전을 따라한듯) 감독(작가)가 억지로..주제나 의식을 끼워넣는다 면.. '아저씨'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주인공의 생생한(매력) 캐릭터가 가진 힘이 진부한 서사를 넘어서 이끌어 가는 면이 대단하다.

 몇년전 이슈가 되었던 수작. '추격자'의 성공의 연장선에 있는 액션 느와르 라고 할 수 있는데, '추격자'의 경우. 영화적으로 완벽하지만..감성,감정적으론 매우 불쾌한 영화였다. 특히..여성관객들한테는 충격과 공포를 심어주는..그래서 흥행면에서..더 할 수 있는데도..안 된 점이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들은..이런 점을 다 여성의 구미에 맞게..더 나아가 남성관객들 조차도..반하게 만들었다.
 전직 특수요원인 원빈의, 몇 장면 완되는 플래쉬백은 여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생의 가장 완성된 부분일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임신과, 출산의 설레임과 행복..그 짧은 장면이 너무나 환상적인데, 또 금방 무참히 깨져버리는 장면의 아픔..은 남,녀를 떠나서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그런 충격적 아픔을 간직한 남자의 모습은.. 남자들한테 엄청난 감정이입이 된다. 찌그러진 차에서 양수가 터져 흐르는 장면이란...아..

 또 촬영과 사운드 면에서도..경이로운 부분이 있다. 원빈이 건물 복도 창을 뚫고 뛰어내려 거리로 착지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바로 뒤에 붙어서 같이 뛰어내려 원빈의 동작을 생생하게 잡아내는데. 이 극도의 근접 촬영은 영화속 원빈의 체험을 관객에서 사실적으로 전달해준다. 이런 것이 증강현실이라고도 말할수 있겠다. 또 후반부 그 외국놈과의 결투에선..원빈의 시점샷으로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은 짧았지만. 순간. 관객을 그 격투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때. 살을 베고 찌르는 경쾌한 칼 소리는 어떤 쾌감을 준다. 동작과 칼 질 소리의 리듬감이 있는데, 그런 점들이 살인 미학? 만드는데 일조한다.
 
 몇몇 장면에서의 끔직함은 사운드의 디테일한 면도 크다. 꾸룩꾸룩 피가 터지는 소리나. 총에 맞아 육체가 꿀렁 터지는 소리등..비주얼 만큼이나 효과가 크다. 잔인한 장면을 잘 못보는 내게 이 영화는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두 장면에서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뭐 그정도면 양호하다. 

 초반에 헤어드라이어기로 고문하는 그 나쁜놈들.. 일상용품으로 그런 고통스런 장면을 만들었으니..관객의 감정은 극도로 이입됐을 것이다..그런 인륜을 져버린 극악무도한, 짐승보다 못한것들을, 처단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너무 통쾌하다..'공공의 적'의 강철중 보다도..훨씬..감정적 쾌감이 크다.. 그 어떤 초인 캐릭터 보다도 원빈은 강하고 아름답다.. 영화적으로 몇몇 단점(아쉬움)은 다 무시된다. 너무 감성적으로 빠져들었기에..나 또한 원빈을 볼 때 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일을 사는놈은 오늘만 사는 나에게 죽는다..
 넌 누구냐? 옆집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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