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글에 이어서..


 바닥에 풀들이 깔려있지만, 배수가 원할하지 않아 진흙 뻘의 거대한 야외 클럽이 되어 있었다. 작년 펜타포트와 아니 비교할수 없었는데, 전반적인 환경은 펜타가 심플하고 깔끔했던거 같다. 무대가 더 크고 소리도 여기가 더 우렁차지만 왠지 공기가 탁하고 모기도 엄청 많았다. 그 많은 관중들 중에서 유독 나만 무는거 같은 억울한 기분. 경망스런 서양애들의 행동거지도 간혹 눈쌀이 가지만, 더욱 짜증나는건, 가끔 한국애들의 경망스런 영어 사용같은거, 뮤지션 빨리 등장하라고 "퍽킹 컴온"을 외친다거나..뭐 그러한 자잘한 것들. 힙합 좋아라 하는 한국 애들이 흑인인양 건들먹거리며 요 왔쓰업 맨..하는 꼴쌍사나운 장면과 별 다를게 없다. 여기에 온 서양인들은 아마도 80퍼센트 이상은 전국 초중고 학교의 원어민 교사이거나 학원 선생 일텐데, 취해서 노는 꼬락서니가 참 한심한 놈들을 보다보니 저런것들한테 울며겨자먹기로 영어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성조기를 망토 마냥 두루고 다니는 한국 여자애를 사진 찍었어야 하는데, 자전거 타고 오면서 얼굴에 바른 썬크림이 땀과 비에 씻겨 자꾸 눈으로 들어와서, 뭔가를 집중해서 보는거를 포기했다. 

 

 간혹 내가 이런식으로 생각을 피력하면, '보수적이시네요' 란 반응을 보이는데, 나는 정치적 의미의 보수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상식선.을 추구하는 보수는 당연히 지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상념하에 잔디 뻘을 거닐다. 옆 무대에서 자정 넘어 시작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공연을 기다렸다. 거의 맨 앞에서 셋팅 된 장비를 보아하니. 입이 떡 벌어졌다. 



 드럼 오른쪽으로 보이는 리더 케빈 쉴즈의 앰프 들의 종류와 가짓수가 기타 가게의 한쪽벽을 통째로 가져온듯 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이 좋아한다고 해서 찾아 듣게 된 밴드 인데, 91년작 러브리스 란 앨범과 바로 전 앨범으로 일약 슈게이징 장르의 거물이 되었다. 노이즈의 미학을 여실히 보여주는 음악인데, 무대위에서 고개숙여 신발만 응시하며 연주하는 스타일에서 비롯한 장르 이름에서 유추하다싶이 대중적이기 보단 노이즈의 아방가르드한 예술 실험 같은 음악이다. 자주 듣진 않지만 이 음반의 오묘한 매력을 동경하던 차에, 올초 내한공연에 가고 싶었으나 놓치고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던 것 이었다. 


 라이브 위주로 감상평을 쓰자면, 음반과는 달리, 훨씬 매니악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사전 경고로 음량이 무척이나 클 것이며, 청각이나 심장에 무리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올초 내한공연에선 사전에 귀마개를 나눠주었다고 하니, 얼마나 소리가 크길래란 의문의 와중에,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걱정할 정도로 크진 않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더 커진것 같다.  


 앞에 있어서 뒤 쪽 반응을 잘 몰랐는데 처음에 관중들이 많이 몰렸다가. 이들의 노이즈의 예술에 식겁하고? 절반 이상이 빠졌다고 한다. 물론 내가 피아를 싫어하는 것 보다 더 크게 실망하고 경악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노래를 한다기 보다, 소리로 추상 미술을 하는 듯, 마치 잭슨 폴록이나 마크 로스코, 드쿠닝의 추상 회화를 음악으로 구현하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심상이 든다. 그러니 보컬의 멜로디나 가사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음반에서 보다 보컬이 거대한 기타 사운드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살짝 그 늬앙스만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부유하는 악기가 되어 미세하리 만치 영향을 준 것이다. 


 대부분,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진짜..이게 뭥미?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소리의 예술 체험은 공연 중간에, 노이즈의 끝판왕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3~4분 이상,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계속 냈다. 거대한 우주선이 내는듯한 소리랄까. 일렉기타가 내는 노이즈의 진수성찬을 경험했다. 매번 곡이 끝날때마다 기타를 바꿨는데, 죄다. 펜더 재즈마스터나.재규어,간혹 머스탱. 아마도 곡마다, 변칙 튜닝이 많아서 그렇게 기타 쇼핑몰 진용을 보여준것 같다. 

 이들의 공연은 기타를 좋아하는 내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데, 음악을 더 큰 차원의 소리의 예술로 인식하게 되었다. 존 케이지의 혁신적 사고 방식도 떠올라 지고, 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그들의 무대는 결코 뻔하디 뻔한 심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다채로운 마음의 반향을 거대하고 부유하는듯 반복적인 노이즈를 통해 느끼게 했다. 



 그 후 세번째 크기의 무대에서 국내 밴드 로만티카 란 밴드의 공연을 보았다. 관객이 거의 없었지만, 연주는 열심이 했다. 대부분 모과이 같은 보컬이 없는 연주 음악이었는데, 자연스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경우와 비교가 됐다. 로만티카는 그들만의 색깔을 좀 더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음악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다시 두번째 무대에서 홀로그램 필름 이란 국내 밴드의 공연을 보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 관객이 정말 없었다. 난 멀찌감치 뒤에서 낚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 팀이 애처로워 보였다. 자기들한테는 이 무대에 선다는게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며 꽤나 상기돼있었는데, 비가 오는 와중에 관객은 처량할 정도로 없었고, 열심히는 했으나 뭐랄까. 실력 혹은 경험 부족이 드러나 보였다. 특히 보컬이 다듬어지지 않았다. 고음에서 저음으로 급격한 음정 변화때, 저음 소리가 발성이 안 되거나..하던데, 라이브 경험 부족 같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대학 동아리 밴드 같았다. 


 새벽이고 비도 부슬부슬 오는 와중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철 첫 차를 타기 위해 3시 반에 자전에 올랐다. 자전거 타고 올 때를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졸음 때문에 휘청거리기도 하고, 어둠이 깔린 까마득한 시화 방조제는 막막함만 심어 주었다. 가로등이 꺼져있는 구간을 지날땐, 꽤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그걸 달래기 위해 말도 안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동이 트고 가로등이 훅 꺼질때, 오이도 역에 도착했다. 다리를 보니 무수히 모기에게 흡혈당한 흔적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엄청난 소리를 몸으로 느끼는 와중, 내 다리는 모기들의 만찬이 되었던 것이다. 거긴 모기들의 적십자 였다.ㅜ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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