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이라 불리는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 새로운 울림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한번의 감상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이가 듦어감에 따라 새롭게 보인다. 예전에 보았던 작품도 완전히 새롭게 재인식되는 경험. 걸작은 계속 말을 건다. 그런 작품과의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다. 미래의 언젠가 이 영화를 보며, 20살 무렵 처음 봤을때, 몽환적으로 졸다 말다 반복했던 어느 나른한 토요일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과정에 어떤 인식 차원이 변해왔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묵시록..은 계속 진화 한다. 


 비디오 테잎으로 처음 보았을땐, 2시간여 분량이고, 꽤 지루한 영화였다. 그러나 3시간 20분여의 리덕스 판이 나오고 다시 보았을 땐, 이 영화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었다. 

 대부 1,2로 성공을 이뤘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영문학의 명작이라 불리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Heart of Darkness'(1902) 각색해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원작 이상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의 뼈대는 단순하지만, 커츠 대령을 만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들 속에 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철학적인 상념을 불러오게 한다. 원작은 모더니즘 초기 식민지 야욕의 서구의 광기어린 탐욕과 비이성을 그려내었다면, 지옥의 묵시록은 1975년 종전한지 얼마 안된 베트남 전쟁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한 반전영화의 명작으로 여기는것 이상으로 평가받는 요소는 전쟁의 비판의식을 넘어, 인간이 가진 선과 악, 전쟁의 의미, 일상의 광기와, 자유에 대한 생각등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원제목속의 Now의 의미가, 계속 현재의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우의 의미가 지옥인지. 어떤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삶의 관점과 태도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씬은 대단히 유명하다. 영상과 사운드의 편집 효과와, 음악의 조화는 아주 함축적으로 광기어린 인간내면의 몽환성을 그려내었다. 60년대 후반 히피즘과 싸이키델릭 음악의 대표적인 밴드 도어스의 노래 'The End'가 시작되며, 슬로우 모션으로 정글의 모습이 드러나고, 흙먼지가 불며 UH1헬기가 기우뚱하게 날아간다, 정글에 엄청난 화염이 일고, 뒤집힌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얼굴이 중첩된다. 슬로우 모션과. 디졸브의 이중,삼중 효과는 음악과 함께 혼돈으로 치닫는다. 천정위에 돌아가는 선풍기의 소리와 헬리콥터의 소리가 비슷하게 오락가락 중첩되며 실제와 전쟁의 환상이 오간다. 몽롱한 영상과 음악이 점차 먹먹한 선풍기 소리에서 창밖의 뚜렷한 헬기소리로 변하고, 주인공은 호텔 창문의 블라인드를 제쳐 거리를 바라보며, 독백으로 '사이공'이라 말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나면. 노래의 제목 같이.. 끝과 처음이 구분이 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Horror..Horror 하며 죽는 커츠 대령의 미친 모습과, 처음 윌라드 대위의 정신 분열적 모습은 다르지 않다. 선풍기 팬이 돌아가는 모습과 소리.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 헬기의 로터 소리는 지옥에 갇혀 돌고 도는 어떤 공포를 말하는 듯 하다.  


 이 오프닝씬은 영상 편집과 사운드 디자인, 음악과 영상의 조합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교과서로 불린다. 위에서 말했듯 전체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처음의 이 씬을 생각하고, 제목의 의미와 호러..호러의 불쾌한 여운까지 생각한다면, 한편의 장대한 시를 보고 들은 느낌이 난다. 생의 소름의 시..


 영화의 제작 과정은 이 영화의 내용과 별 다를게 없이 묵시록 적 이었나 보다. 필리핀 정부의 지원하에 촬영이 진행됐는데, 일정대로 헬기와 조종사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촬영 기간이 장기간 지속되었고, 주연 배우. 마틴 쉰의 심장 발작과, 무더운 날씨에 지쳐가며 신경 쇠약까지 왔다고 한다. 한마디로..점점 전쟁의 광기에 미쳐가는 영화속 이야기가 현실의 촬영 환경 또한 실제로 그러한 극악의 상황으로 전개 되었다고 한다. 강력한 태풍이 와. 촬영 장비 세트를 다 날려버리기도 하고, 코폴라 감독은 당시 금액으로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자기 집을 담보로 빛을 져가며 충당했다고 한다. 영화 제작의 내부적 갈등이. 영화 내용과 주제와 일치한다는 점이 신화적으로 들린다. 코폴라 감독은 이 영화에 너무 진을 쏟은 나머지 그 후에 별다른 작품이 없었다. 


 

 미국이 전쟁을 하는 방식대로 촬영을 했고, 그러한 환경속에서 지옥을 맛보는 배우와 스탭들의 노고가 영화 보는 내내 양가 감정으로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물량의 전쟁의 스펙터클 속에서 오락을 느끼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끔직한 살육의 풍경에 몸서리쳐진다. 초반부의 헬기 기동부대가 평화로운 베트콩 마을을 폭격하는 씬은 게임을 하듯 닥치는 대로 폭탄과 총알을 쏟아붓는 장관?을 보여준다. 히틀러가 찬양했던 바그너의 행진곡 풍의 음악은 정말 그런 일방적인 전쟁의 모습에 위풍당당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미국의 무지막지함은 실제 F5 전투기 편대가 네이팜 탄을 투하해 엄청난 화염을 토해내는 장면으로 화룡정점을 이룬다. 미친 전쟁에 대한 감독의 화려한 응답같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실제 베트남 전쟁은 말도 안되는 거짓의 어거지로 이루어진 참상이었다. 그런 수치스러운 전쟁에 우리나라 군인 30여만명이 파병되었고, 사망자 수를 공식적인 자료로 밝히진 않지만 대략 8만여 명의 국군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의 활약상이? 악명 높다. 언젠가 친구가 참전군인이었던 택시 기사의 무용담을 듣고 이야기 했는데, 토가 나올정도로 인간의 탈을 쓴 동물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런 살육을 아무렇지 않게 추억으로 토해내고 정당화하는 미친놈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그런 더러운 피를 흘린 대가로 이 나라가 경제 부흥을 일구었단 역사도 수치스럽다. 


 1975년에 종전했으니까 이 영화는 종전하고 거의 바로 제작된 셈이다. 60년대 후반의 여러 사회 변혁기를 거치면서, 전쟁을 거친 개인의 묵시록적인 내면성은 시대의 초상으로 대중들에게 섬뜩한 자각을 심어주게 한다. 전쟁을 바라보는 인간의 양가 감정. 파괴에의 욕망과 삶의 일상성의 욕망이 충돌한다. 후반부 커츠의 왕국에 아무렇지않게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과 천진한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은 이성의 판단이 모호해지고, 원주민의 제의식에 바쳐져 도끼로 죽음을 맞는 물소와 커츠 대령의 죽음은 윤리를 넘어서는 신성한 감마저 든다. 현실에 남겨져 지옥의 굴레를 돌고 도는 삶의 모습은 다시 처음의 오프닝으로 되돌아가 몽롱한 의식으로 되풀이 된다.   


 걸출한 전쟁 영웅이 밀림으로 들어가 적과 아군의 구분이 사라진 곳에서 왕노릇하며 널부러진 살육의 배경속에서 진정한 자유에 대한 철학적 상념을 뱉어낸다. 미친놈이지만 우리 또한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런 걸출한 인물을 맞닥뜨린 윌라드 대위. 과연 그는 임무대로 그를 처단하고 전쟁의 광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처음과 마찬가지로. 도어스의 '디 엔드'가 주술적으로 흐른다. 



 

 (코폴라 감독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쓸 때는 어떤 착각으로 죽은지 알았네요.)

P.S.  코폴라 감독이 죽었을때, 엠비씨에서 이 영화(리덕스 판)을 더빙해서 방영하는 걸 찜질방에서 잠시 본적이 있다. 이 위대한 감독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리 심야라지만. 3시간이 넘는 걸. 더빙 까지 해 줬으니. 도어스의 음악적인 리더 였던.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 옹이 몇일 전에 돌아갔다고 한다. 영화학도 였던 짐 모리슨의 끼 를 알아보고 중용해, 시대의 전설을 만들었고, 싸이키델릭 음악의 큰 발자취를 남긴, 호탕한 지성인 이었던 사람이었다. 짐 모리슨에 비한다면 참 오래 살았다... 위대한 예술가님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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